태평동 살구꽃 / 조경섭(조선의)
산소 불꽃이 분필 선을 따라가면
무쇠 철판이 힘없이 잘려나간다
쇠톱이나 전동공구로는 엄두도 나지 않는 두께
태평공업사에서는 태평하게 절단된다
야성의 속살 태우는 불꽃은 허공 속으로 소멸되고
고성을 지르며 흩어지는 쇳소리가
급류의 소용돌이 같은 귓바퀴를 돌아나와
철공소 바닥에 소복이 쌓였다
시간을 하나로 잇는 태초 이후의 빛은
프라나*의 온기를 식물성으로 분류했다
마른 줄기를 타고 올라와 꽃받침에 닿으면
온 동네 튀밥 튀기듯 꽃을 피웠다
모든 색조가 빅뱅의 어둠에서 방출되고
46억 년** 동안 빛에 대한 골똘한 명상이
꽃이라 불리는 독특한 별을 탄생시켰다
우주 귀퉁이에서조차 쉽게 들키는 분광은
눈앞에서 초신성이 되어 사라지고
지상에 불시착한 풀씨들은 꽃대궁을 뽑아 올렸다
어디론가 사라진 순간들이
텅 빈 어둠의 동공을 채우고 있다
철대문 틈새로 번쩍번쩍 불똥 튀는 태평공업사
분필 선의 뒤돌아본 흔적으로 길어진 골목이
구부러진 자세를 풀고 있다
아득할수록 더 명징한 빛의 씨앗들이
봄 하늘 꽉 차게 끌어안고 살구꽃 피었다
* 요가 언어로 기 또는 에너지
** 지구의 나이
(사)신석정 기념사업회(이사장 윤석정)가 주관하는 ‘제5회 신석정 촛불문학상’ 수상자로 조경섭 시인의 시 ‘태평동 살구꽃’이 뽑혔다.
신석정 촛불문학상 심사는 김규화, 유자효, 김주완, 이숭원 씨가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예심에서 올라온 10명의 후보 가운데 조경섭 시인의 ‘태평동 살구꽃’을 뽑았다. 이 작품은 시작 체제 갖춤이 매우 빼어났다. 시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조경섭 시인은 농민신문 신춘문예, 기독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김만중문학상, 거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조 시인은 “민족정신과 시 정신을 지키고 세우신 석정 시인의 문학상을 받게 돼 무한한 영광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석정 촛불문학상 상금은 500만 원이며 시상식은 석정문학제와 함께 10월 13일 오후 2시 부안 석정문학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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