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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식은 연탄 한장 / 주광혁

 

 

나에게도 연탄에 대한 추억이 있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새파란 젊은 놈이
그땐 그랬지 하는 것인데

고추가 쫄아들도록 추워서
옴짝거리기 죽어도 싫은 겨울밤
냉걸 같은 구들장이 밉살스러워, 이불장 속
아버지 밥그릇을 매만지기도 하고
굼벵이처럼 이불 위를 굴러도 보면
번개탄 냄새가 싸아하게 들이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꽃불이 핀 번개탄을
연탄 아궁이에 넣고,
새 연탄에 밑불이 옮겨 붙을 때쯤
가슴츠레 꿈자리를 만들어 주는
장판 위로 불쑥불쑥 솟아오르던 열대식물들
때론 한 사발의 동치미를 떠울리고는 잠이 깨고
꽉 찬 오줌보를 붙잡고 밖으로 나가
한 귀퉁이 식어가는 연탄에
확인하듯 오줌줄기를 쏘고
외롭고 쓸쓸한 겨울하늘을 보며 으스스 떨었던 것이다

지금, 다시 연탄이 감치는 까닭은
거울 앞에 서신 어머니의 센 머리오리 하나
유년의 겨울을 지피던 연탄불과 다를 게 없어서이다

쉽게 사랑을 말할 수 없지마는
그때 어머니에게 사랑은 한 장의 연탄 같은 것
조붓한 방안의 네 식구를 데우던 사랑을 생각하면
다 식은 연탄 한 장
기꺼이 외롭고 슬픈 별 하나 되는 것인데

나는 문득, 그 별이 유난히 높고 밝은 걸 깨닫고는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당선소감]

 

깊은 꿈을 꾸었다. 날은 밝다. 전화벨이 울린다. 곧바로 받아들었으나 끊긴다. 부재중 전화로 기록되고 다시 벨이 울린다. 루돌프 사슴코가 딸랑거린다. 그 다음부터 진짜 꿈이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꿈속에 있는 건가. 당선과 축하한다는 말, 어떤 관계를 지닌 말인데, 아주 먼 지방의 방언 같다. 생소하다.


뚜렷한 흔적도 없이 시는 나를 찾아왔다. 문득 바라보면 시인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자 하는 내가 있었다. 젊음이 준 나름의 아픔과 방황 속에서 시는 너 자신만을 생각하지 말라고 네 따뜻한 사람들을 떠올리라고 말해 주었다.


쑥스럽다. 기쁘면서도 두렵다. 난 아직도 습작의 길을 디디는 문학청년도 못 되는 것 같아서, 시가 내게 건넨 말 하나라도 제대로 따르며 썼는지 생각하면 부끄럽다. 그래서 갑작스레 찾아온 이 반가운 손님이 무척 까탈스럽게 느껴진다. 그저 시인의 마음으로 살며 쓰고 싶다. 누구나 가슴 속에 시인이 있다는 믿음도 여전하다. 난 습작생이다. 그 첫 마음을 잃지 않겠다.


축하를 받는 일보다 감사해야 할 일이 더 많다. 철없는 아들에게 언제나 벅찬 사랑 주시는 부모님, 지금껏 든든한 우정을 변치 않았던 친구들, 그리고 선후배님들과 과소모임 `글동접'' 식구들 모두에게 고마움과 기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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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결심에 오른 세편을 놓고 심사위원은 고심했다. 김기린의 `임마누엘 화원''의 여성적 개성과 양동숙의 `박씨의 끊어진 통화''외 4편의 주제의식이 못내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내 주광혁의 `다 식은 연탄 한장'에 기꺼이 합의했다.


언어를 다루는 솜씨의 세련됨과 내용의 감동이 위의 두편을 압도할 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좋은 시인 하나가 한국 문단에 이름을 더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 듯하다.

 

심사위원 주근옥·양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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