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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 날리는 마당 / 김운영(김용희)

 

 

눈발 날리는 마당을
보고 있으면요
마른 저녁도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마는데요
발목 잃어버린 눈발은요
땅에 닿지도 못하구요
약한 한숨처럼 담벼락 위
아버지의 여윈 어깨 위
에도 말이지요 관절
절룩거리면서 아버지 뒤란으로
가시더니요 불쏘시개 송구나무
가마솥 물 끓이는데요
등겨같은 닭털이 공중에
몇 날아다녔나요?
오래오래 눈발이 아버지
빈 어깨에 배꽃처럼 쌓이면요
오래오래 가마솥 연기
마음의 暴政(장작불) 몸 밖으로
서서히 증발되고 있으면요
아버지 사발에 담아
안방에 어머니에게요
아버지 붉은 동맥 모세혈관 풀어
어머니에게 비는
견고한 용서
닭백숙의 용서를 말이지요
살과 뼈 허물어지는 解産처럼
맑은 국물 눈물 말이지요
어머니가 밤새 소리없이
우시는 날에는요 다음날
말없는 닭백숙 한 그릇
눈발 날리는 마당에서 말이지요.

 

 

 

 

[당선소감] “먼 길을 돌아 詩의 섬으로 귀환”

음모에 빠졌다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당선되었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아무래도 큰일이 생기고야 말았다는 두려움이, 이제 어찌해볼 수 없는 공모의 한 가운데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불길한 예감이 한동안 마음을 짓눌렀다.

시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공포와의 대면이었던가. 시를 짓지 않기 위해 너무나 많은 길들을 우회했다. 잘도 피해왔다. 시 근처에 집 짓고 시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면서 한 평생을 그냥 그렇게 살려 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다시 이 섬으로 돌아오게 되었단 말인가. 온갖 전쟁과 모험 속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귀환한 오디세우스처럼. 내 몸에는 시가 할켜놓은 단 한 개의 생채기도 남아 있지 않다.

시 쓰기를 위해 뜬 눈을 새운 저 절망의 밤조차도 등록되어 있지 않다. 내 몸은 문학이론으로 적절하게 소독되고 논리로 증류되어 있을 뿐이다. 사이보그처럼. 내 혈관 속에 아직도 20대에 갇혀 있던 그 시의 피들이 웅웅대고 있단 말인가. 오 맙소사. 당선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실어증에 걸려 버리고 말았으니.

그러니 음모는 성공한 것이 아닌가. 이제 나에게 남아 있는 어떤 언어도 없다. 혀가 잘린 것 같은 겨울 아침, 나는 새로 시작할 것이다.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숙여 깊이 감사를 드린다. 그 두려운 시쓰기에 대해 크나큰 용기를 주신 것이다. 무엇보다 시적 감수성을 키워주신 모교 은사 김현자 선생님, 이어령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언제나 늦된 나에게 다시 시를 써보라고 권한 어느 선생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인생에서 또 하나의 매듭점을 맺게 해주셨다.

고통과 희망이 묘약처럼 입 안에서 함께 섞이고 있다. 열심히 써서 그 모든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

 

 

 

 

맛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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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 서해안과 호남지방에는 보름 가깝게 계속 눈이 내려 교통이 두절되었을 뿐만 아니라 비닐하우스와 축사가 무너져 내렸고, 출하를 앞둔 양식장에서는 얼어 죽은 물고기들이 참혹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거기에, 황우석 교수 사건마저 가세해 2005년 12월은 나라 전체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하지만 새해 첫 날 자신의 작품이 신문 한 면을 가득 채울 것을 바라고 문학의 외길을 정진해온 문학도들의 열정은 해가 갈수록 더욱 뜨겁고 웅숭깊어지는 것 같다. 그것은 불교신문 신춘문예 응모자가 작년에 비해 1.5배 정도 증가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는다. 좀더 자세히 살피면, 시와 시조부문에 270명, 단편소설 부문 55명, 동화 부문 88명, 그리고 평론부문 7명이 응모했다.

물론 이러한 숫자는 중앙일간지의 신춘문예 응모자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신춘문예의 연륜이 중앙일간지의 그것에 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불교신문의 특성을 고려할 때,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대한 일반 독자의 관심이 점차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응모자 수가 늘어난 것에 비례해 작품의 수준도 예전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 각 부문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것은 우리 문학의 저변이 그만큼 넓고 깊어졌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어서 무척 반가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응모작들이 다루는 제재나 주제 또한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에 대한 집요한 탐구와 세계의 현상에 대한 추적, 혹은 내적 자아를 찾아가는 철저한 구도적 자세 등 우리 문학의 일반적 특징과 유관한 것들이 많이 보였다.

심사위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불교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제재와 주제를 불교 정신에 무리하게 적용하려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었다. 불교 정신을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스며들어야지 의식적으로 도드라지게 하려면 오히려 문학성이 훼손될 위험이 많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시와 단편소설, 동화 부문 당선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응모자 가운데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우리 문학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기도 하다. 한 심사위원은 우스개 소리로, “이런 추세가 한 십 년 계속되면 ‘오랜만에 남성 작가가 탄생했다’는 기사가 나올 것”이라고 하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시조 부문에서도 좋은 작품이 보였으나 시와 시조 가운데 한 작품만을 선정해야 했기 때문에 아쉽게 당선작에서 제외되기도 했고, 동화 부문에서는 최근 입적하신 큰 스님의 일화를 연상시키는 제재와 낙산사 대들보로 만들어진 악기를 제재로 한 작품이 눈에 띄었다. 단편소설은 불교적 제재나 주제를 다룬 작품이 많았는데, 작위성이 강하고 구성이 다소 산만한 것이 흠이었다. 평론 부문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당선자를 내지 못하였으나, 수준은 상당히 진보한 것이었다는 평이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것은 개인에게 커다란 영광이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하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가차없이 잊혀지고 도태당하는 것이 문단의 현실이기도 하다. 당선자 세 분께 축하의 인사와 함께, 앞으로 더욱 정진하셔서 우리 문학을 빛내는 큰 작가와 시인이 되기를 간곡히 희망한다.

 

심사위원 장영우 문학평론가.동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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