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홍의장군의 노래 / 임승환
나의 이름을 칭송하지 마라
임진년에 나 홀로 붉었더냐
진달래 철쭉 영산홍 자산홍
모두 일어나 온 산이
불 탓 듯이, 내 이름 위로
의병들의 선혈이 붉게 젖었다
백철쭉도 배경으로 섞여 있어 더욱
선명했다 강물이
어찌 왜구들의 피만 흘러 붉었겠느냐
그들도 나와 함께 싸웠고
내 명령에 죽었으니
장수의 죄는 공보다 높다
내가 산꼭대기에 있었다고 내 이름만 드높이면
어찌 그들 곁에 눕겠는가
진달래 철쭉 영산홍 자산홍
충익사 오는 길에 꽃들이 피거든
들어보라 의병들의 울긋불긋한 노래를
노마드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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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최종심에 남은 작품은 임승환의 『홍의장군의 노래』 , 육남원의 『벽곡』 , 정와연의 『망치의 생각』 , 정연희의 『종이 한 장」 그리고 최분임의 『빈 목간을 읽다』 등 다섯 사람의 작품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최분임의 「빈 목간木簡을 읽다」,「맨드라미」 그리고 「부활초」를 대상으로, 그리고 임승환의 『홍의장군의 노래』를 우수상으로 선정하였다.
우선 대상을 받은 최분임의 시 『빈 목간을 읽다』를 살펴보면 시어의 표징성이 뛰어나고 시를 이끌어 가며 주제로 육박해 들어가는 집중력과 힘이 탁월하다고 보여진다.
(전략)...토기를 빚던 손을 빌린 나무둥치가/수신인 당신의 눈 코 입을 묻네요/빗살무늬 캐던 동물 뼈는 잠의 미간처럼 생각이 많아/기다림을 새기기 적당하죠/좀처럼 속내 드러내지 않는 보름달이/당신에게 대신 전할 목간木簡을 읽기 위해/더 밝은 높이에 눈동자를 띄우네요/산길을 향해 구부정하게 걷는 달빛/반짝, 허리가 펴지네요/거미줄처럼 널린 감정들이 강물의 명경明鏡속/뾰족한 빗살무늬로 비칠까 옹이는 지우고...(후략) 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능수능란한 언어의 마술사적 필치로 목간의 표징성을 감각적으로 살려내고 있다.
시인의 렌즈에 잡힌 목간은 빗살무늬토기를 빗던 어느 먼 선사의 것일 수도 있고, 당신에게 전할 나의 간절한 마음결일 수도 있다. 그러한 시적 소재와 모티프를 요리조리 끌고 다니며, 언어로 요리해 내는 솜씨가 훌륭한 셰프의 칼놀림에 견주어 부족함이 없다.
또한 최분임 씨의 다른 작품인 「부활초」에서 “간절하지 않는 생은 어디에도 없다/사막의 모가지는 아직 자라는 중이다”와 같은 결구에서 보여주고 있는 생명애의 약동과 부활의 소망이라는 주제가 무리한 의도 없이 자연스럽게 맺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상작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또한 그의 다른 작품 「맨드라미」도 수작으로 꼽힌다. 대상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직관력이 번득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느껴져 진정성 있는 좋은 시인으로 성장해 갈 수 있다는 믿음이 들어 최분임씨의 작품을 대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우수상으로 선정된 임승환의 「홍의장군의 노래」 등은 특히 시적 구성의 힘과 운율미 비장미가 대단히 곡진하게 표현되어 있어 진실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진정성의 미덕이 돋보였고, 나름대로 시를 완성해 내는 형상력이 우수하여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나의 이름을 칭송하지 마라/임진년에 나 홀로 붉었더냐/진달래 철쭉 영산홍 자산홍/모두 일어나 온 산이/불 탓 듯이, 내 이름 위로/의병들의 선혈이 붉게 젖었다.....”(후략)
임승환씨는 한 편의 시로 홍의장군 곽재우의 내적 고뇌를 나름대로 성의 있게 표현해 내고 있다. 홍의장군을 시적 화자로 끌어내어 전승을 자신의 공과로 돌리지 않고, 전장에서 함께 피 흘리며 싸우던 다른 의병들에게 오히려 공을 돌리는 인仁의 장수 곽재우를 과장하거나 영웅시 하지 않고 무리 없이 시적으로 살려내어 서사시로서의 묘미를 배가 시키고 있다. 다소 서사에 치우치다 보니 시의 미적장치와 긴장미가 덜하다는 약점이 노출이라는 아쉬움에 선자를 망설이게 했지만, 요즘 한국 시단에서 찾아보기 힘든 서사에 주목했다는 점과 시를 대해는 진정성이 느껴져 기꺼이 우수상 작품으로 선정하였다. 모쪼록 더욱 분발하여 우수상에 답하는 좋은 시를 보여주기 바란다.
입상작으로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나머지 응모작들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작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용솟음치고 있어 한국 시단의 밝은 미래를 예견해주었다는 점에서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입상자들의 무한한 발전을 바라며 천강문학상이 전국적인 응모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뛰어난 시인들의 등용문으로서 한국 시단에 크게 이바지해 가기를 소망한다.
- 본심 심사위원 김재홍(문학평론가, 백석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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