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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산은 / 장석남

 

 

내 유산으로는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

장마 큰물이 덮었다가 이내 지쳐서는 다시 내보여주는,

은근히 세운 무릎 상부같이 드러나는

검은 징검돌 같은 걸로 하고 싶어

 

지금은,

불어난 물길을 먹먹히 바라보듯

섭섭함의 시간이지만

내 유산으로는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

꽃처럼 옮겨가는 목숨들의

발밑의 묵묵한 목숨

과도한 성냄이나 기쁨이 마셨더라도

이내 일고여덟 형제들 새까만 정수리처럼 솟아나와

모두들 건네주고 건네주는

징검돌의 은은한 부동(不動)

나의 유산은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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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봄빛이 난만합니다. 초록이 넘칩니다. 붉고 흰 꽃들이 차례로 피었다 갔고 들판엔 숨었던 새들의 울음이 다시 허공에 길을 내고 있습니다. 제 맘속에 상화 선생은‘가르마 같은 논길’을 끝도 없이 걸어가는 분으로 오랫동안 새겨져 있습니다. 가르마 같은 길이라니요. 그 정갈하고 사색적이며 또한 생산적인 길입니다. 그 길에서 호명하는 제 이름을 들으니 떨립니다. 그분이 살았던 시대를 떠올리고 그분이 살았던 공간을 떠올리고 그분의 목소리를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그분이 만났던 시와 사랑과 안타까움도 떠올립니다. 큰 영광이 없었던 일생인 듯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시와 마음이 봄빛처럼 살아서 해마다 이맘때면 빛납니다. 풀빛 짙어지는 이맘때 우리말을 아는 사람 치고 그분의 그 시를 떠올리지 않을 이는 아마 드물 듯싶습니다. 그분의 그 들판, 이제는 빼앗긴 들판이 아니라 봄빛 찬란한 들녘에서 그 정신의 메아리로 호명되는 제 이름은 초라합니다. 그러나 풀잎 한 잎에 맺힌 이슬 한 알로 그분의 영원한 들을 장식할 수 있다면 제 시력은 족하겠습니다. 관계된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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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올해 이상화시인상의 심사는 어렵지 않게 합의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해서 심사 자체가 수월했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당대를 표상할 만한 뛰어난 시집들이 많았고, 그 가운데서도 대구 경북 출신 시인들의 시집이 여럿이었다. 다만 이상화 시인의 이름에 걸맞은 상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대표성을 뛰어넘는 보편성에 이를 필요가 있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이것은 이상화 시인의 고향에 대한 역차별을 포함하는 것이었기에,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결정을 내려주신 두 분 심사위원들의 결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장석남의「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는 그대로 진경산수다. 진경산수이되, 돌 하나 얼룩 하나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무늬가 그려져 있는 인물화이기도 하다. 진정한 서정이란 앓는 몸을 지나쳐온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장석남의 시는 아프게, 아름답게, 아련하게 증언하고 있다. 저 세 개의‘아’자 돌림 부사야말로 이상화가「나의 침실로」에서 묘파해낸 것이 아니던가? 이상화 시인은 마돈나를 부르던 간절한 돈호법만으로도 사랑하는 이의 모습과 그와의 거리와 그를 기다리는 타는 마음을 그려냈다. 장석남의 시가 되살려내는 것도 바로 그런 흔적의 현현, 그리움의 에피파니 같은 것이다. 그것도 반드시 몸을 되울려 나오는 소리로. 집의 어디를 펼쳐 봐도 오감을 구현하는 감각들이 붐비고, 이 감각들의 병목현상으로 시가 풍요롭게 울린다. 이 풍요로움과 이상화 시인과의 만남을 환영한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도광의, 박정남, 권혁웅(글)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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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쓴 항일 민족시인 이상화를 추모하는 문학제 및 이상화시인상 시상식이 22일 오후 6시30분 중구 계산동 이상화고택 앞마당에서 열린다.

 

이상화 기념사업회(회장 박동준)는 이번 행사에는 대구 시민취타대의 장엄한 개막선언에 이어 시극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낭송, 추모 헌다례, 정은하 (사)영남민요'아리랑 보존회장의 일제강점기 1936년 최계란의 대구아리랑 공연, 뮤지컬 '이상화' 특별 축하공연 등이 잇따라 펼쳐진다.

 

제28회 이상화 시인상의 주인공은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를 출간한 장석남 시인이 선정됐다. 장 시인은 인천 출신으로 인하대 대학원 국문과를 나와,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등 7권의 시집을 냈다.

이날 행사에는 이상화 기념사업회와 최근 상호교류 협약을 체결한 전남 강진의 영랑 기념사업회(회장 김승식)을 비롯해 김선기 시문학파 기념관장 일행과 이상화 선생의 유족 이충희 씨가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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