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 / 김지오(김임선)
그때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가 내 앞을 지나간다
혹시, 당신의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세요? 어머,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도둑 아니고 강도 아니에요 당신의 왼쪽 바지 주머니라 해도 상관은 없어요 당신의 왼쪽 심장이라 해도 상관없지요
혹시, 사탕 있으면 한 개 주실래요? 에이, 거짓말! 나는 당신의 주머니를 잘 알아요 한 번 만져 볼까요? 꽃뱀 아니구요 사기꾼 아니에요 그렇게 부끄러워 할 것 없어요 그럼 당신 손으로 당신 주머니에 손 한 번 넣어 보세요 어머, 그것 보세요 사탕이 남아 있다니 당신에게 애인이 없다는 증거예요
그것이 어떻게 당신의 주머니에 들어갔는지 당신은 모를 수 있어요 누구에게나 주머니에 사탕 한 개씩은 들어 있어요 사랑 말이에요 세균처럼 바이러스처럼 그 사탕 나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달콤한 것을 좋아해요 유난히,
망설이지 마세요 그 사탕 내게 주면 당신 주머니에는 또 다른 사탕 생길 거예요 사랑처럼 말이에요 경험해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일 맞아요
사탕 대신 꽃은 어때요?
어머, 꽃 피우는 당신 마법사였군요
꽃을 나눠 가진 우리
이제 달콤해집니다
[당선소감] “시험 낙방 꿈꾸고 당선… 신인의 마음으로 정진”
꿈을 기다렸다.
빨간 사과를 먹는 꿈, 흙탕물이 거세게 집안으로 들이닥치는 꿈이 아니라,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를 타고 내리막길을 곤두박질치는 꿈이 아니라, 잘 익은 감이나 따러 감나무에 올라가는 꿈, 기다리다가 운전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 꽉 막혀 시험장에는 도착도 못하고 시험에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는 꿈을 꾸고 당선 소식을 받았다.
시인은 정수리에 시의 뿔을 달고 태어나는 사람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시를 향한 욕망이 들끓을 때는 미움, 하는 마음으로 외면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왼눈이나 오른눈 어느 한쪽은 곁눈질을 하고 있었나 보다. 양파 싹을 키우며 장난삼아 사진 기록을 하다가 불현듯 동시 한 편을 썼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느닷없이 깨달음이 왔다. 이것이 시로구나. 그대, 시여! 이토록 오래 나를 기다려주었구나.
꿈이 내게로 왔다.
하루 종일 가슴이 떨리고 정신이 아득하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서러운 마음으로 찔끔 울었다. 잊히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다독이느라, 주눅 든 마음을 추스르며 버티느라 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다시 신인이다. 아니아니 이제 신인이다. 죽지 말고 더 오래 견디어 볼 핑계가 생긴 것이라 생각한다. 이중연애가 시작된 것이니만큼 더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상대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둘 다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내 머리 정수리에도 시의 뿔 하나 생겨나기를 바라며….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심사평] “대화체·소설 화법 활용한 발랄한 표현 신선”
응모작이 늘었다고 하지만 금년도 응모작의 수준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작품의 소재는 일상적인 삶의 체험이 주종을 이루었고 그 길이도 상대적으로 길었다. 압축과 긴장의 강도가 약하게 느껴지는 작품이 상당수 있었다. 실험적인 시편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엇비슷한 작품들이 보여주는 일상에의 침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심에 오른 26명의 응모작 중 노수옥, 곽광덕, 김지오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논의되었다.
노수옥의 ‘기묘한 병(甁)’은 질병과 물병의 한자어가 ‘병’자 발음이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흥미롭게 시작하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언어적 유희성이 짙어 내용이 다소 가볍게 읽힌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곽광덕의 ‘아직 키워드’는 가족의 이야기를 남북정상, 건강진단 등의 시사(時事)적 언어를 동원해 매우 인상적인 체험을 그려내고 있지만 피아골, 파르티잔 같은 시어들이 현장감을 심도 있게 살리지 못하여 시적 부담으로 다가왔다.
상당한 논의 끝에 김지오의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를 당선작으로 한 이유는 대화체, 소설화법을 활용한 내용 전개의 신선감 때문이었다.
자칫하면 외설스럽게 읽힐 수도 있는 한 남자의 호주머니 속 심벌을 화두로 내세워 사탕·사랑·꽃의 의미로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시적 능력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머, 꽃 피우는 당신, 마법사였군요” 같은 마지막 부분의 발랄한 표현이 이를 증명할 것으로 본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아깝게 탈락한 분들에게는 격려의 말씀을 전해드린다.
심사위원 최동호·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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