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천로역정, 혹은 / 김정웅

 

 

지난 날 내 그대를

자욱한 눈물 없이 사랑함은

거처 없이 떠돌던 내 가난한 영혼이

[]을 빌어서 그런 저런

()들어 살던 집들같이

땀냄새 진한 까닭일지나 이제, 내 사랑은

겨드랑이 가볍고

살을 버려서 살을 얻음 같음이니

그 사이

모나고 답답했던 단칸방을 벗어나

욕심줄인 은단(銀丹)알 같은 집 한 채 찾아

아담히 홀로 먼저 이사함 같음이니

 

그곳, 푸르고 단단한

둥근 청기와가 없는 담장 너머

아직 싹트지 않은 별들이

까마득히 박혀 숨쉬는 그런 곳

 

그대여,

내 나가는 곳 지금은 모를지나

어린 날, 수학여행 떠나기 전날 그 신새벽처럼

그렇게 뜬 눈으로 가슴 설레이게 하는 곳,

 

유성(流星)이 옛 할아버지 흰 턱수염처럼

바람 없이도 이따금 길게 흩날리는

잊혔던 고향 동구(洞口) 밖 아득한 천공(天空),

기쁜 그곳, 너희들과 영 이별이 아니라

 

 

 

 

 

천로역정 혹은

 

nefing.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