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길은 젖어 있다 / 김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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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줄을 토해낼 때마다 허공에 다리가 놓인다 격자무늬 그물 사이로 굵은 바람만 빠져나갈 뿐, 거미가 지나간 길은 축축하다
2
모두 마을을 떠난 후, 여뀌며 끈끈이주걱, 바랭이가 무성한 빈집엔 도둑고양이와 생쥐가 떠나고 없다 밤이면 달빛을 풀어 추녀와 젖은 굴뚝 사이 무당거미가 슬그머니 나와 집을 짓는다 연통의 온기가 식어가면서 거미들은 재빨리 세간과 주민등록을 옮기고 이 집의 새 가장이 된 것이다 이제 거미는 썩은 대들보 살집을 파고 들어가 이 집의 내력과 가훈을 갉아먹는다 이 집엔 원래 실직한 사내가 귀향해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내가 어느 날 아무도 몰래 밤 기차를 타버리고 그때부터 허물어진 집터를 배경으로 거미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집단 농장을 이루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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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것들을 배경으로 투명한 젖줄 풀어 길을 내는 저 무당거미의 삶, 여전히 팽팽하고 가파르다
재단법인 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에서 출연해 운영하는 '1500만원 고료 진주신문 가을문예'의 여덟번째 수상자가 가려졌다. '가을문예운영위원회'(위원장 박노정)는 다음과 같은 심사 결과를 내놓았다.
'진주신문 가을문예'는 1995년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남성문화재단에서 상금을 비롯한 일체의 운영기금을 출연해 오고 있다. 시와 소설에 걸쳐 단 한 명만 당선작을 뽑아, 각각 500만원과 10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해 오고 있다.
'진주신문 가을문예'는 매년 가을에 공모를 마감, 심사를 거쳐 운영한다. 매년 시는 수백명이 수천편씩, 소설도 수십명이 수백편을 응모해 명실상부 전국 최고 수준을 인정받아 왔다.
당선작 "거미의 길은 젖어 있다"는 "신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능숙한 솜씨로 우리 시의 평균적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심사위원들로부터 "투고한 거개의 작품들은 오랜 숙련의 손길이 느껴질 만큼 안정적이며, 수준이 고르다"면서, "무엇보다 묘사가 적확하고 이미지 또한 선명하다. 말을 매만지는 솜씨로 보아 이미 기성 시인 아닌가 싶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올해 시 부문 '가을문예' 본심은 원구식(월간 <현대시> 발행인 겸 주간)씨, 예심은 박노정(진주문인협회장) 정일근(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진영(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씨가 했다.
김승원씨는 안양 평촌고를 나와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이다. 2002년 '한국여성문학상' 시 부문에 입상하고, 2002 여수해양문학상 시부문 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김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뜻밖에 당선 소식을 받았다. 10월에 작품을 보내놓고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당선이라니 부끄럽고 설렌다"며, "이번 당선은 아름다운 글만 써온 저의 글쓰기에 대한 경고라 생각한다"고 당선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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