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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에서 길을 찾다 / 이상원

- 서시1 

 

 

어머니,

 

그늘이 쌀찌는 걸 이제 알았습니다.

제 몸보다 더 큰 부피로 이끼를 먹고

 

묵은 시간은 이 새벽.

 

푸른 설움처럼 토사곽란을 하고 있지요.

차가운 문갑 안에 식은 묵처럼 고여 있는

 

구운몽과 서포집

, 서포만필과 사씨남정기

이렇듯 눈 시린 고서 몇 질의 두께로

잊혀진 세월은 고스란히 말을 걸고,

 

쇠구들 얼어붙은 연지에

입김 불어 모지라진 붓끝으로

송연먹 찍어 이 글을 올립니다.

 

남해 적소에서,

서포집 근처 호젓한 고전의 숲을 거닐다가

 

불효 소자, 만중은

 

우리 조선의 한글로 몇 자 적어

겨우내 쟁여놓은 설익은 그리움일망정

부패하지 않을 소금의 정신으로 녹고자

단정하게 앉아 이 글을 씁니다.

 

이제 봄이 턱에 와 닿았습니다.

 

매화가,

 

줄 풍류 타며

다랭이논보다 가쁘게 숨 헐떡이며

가천마을까지 기어오르고

 

마침내 여기 유배지.

 

인적 드문 노도의 초옥에 당도하여

 

가늘게 문풍지 두드리며

남은 숨 고르다가

 

분분 휘날리며.

 

느리게 진양조 가락에 실어

아슬하게 시대를 노래하며

거문고 타고 있어요.

 

늙으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몸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께서 가난과 맞바꾼

서른 서책 몇 질의 무게로도

갚지 못할 불효가 넘쳐

남해 물결보다 세차게 넘실대고

 

꽝꽝한 냉수 한 사발로 때로

세상을 향한 분노도 삭여보지만

어쩔 도리 없이 성난

파도에 유리안치되어,

 

소자, 영락없이

적소에 매인 몸입니다.

남루한 그늘이 새벽 햇살에 반짝이며

눈동자를 씻을 무렵 시퍼런 비늘보다 더

싱싱한 아침을 두레박으로 건져 올리는 지금.

 

수평선에 걸려 탯줄을 감은 해가,

 

질식하도록

저토록 아프게 떠오르는 줄도

비로소 여기 유형의 외진 곳에서 알 뿐입니다.

 

 

 

 

서포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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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열린 김만중 문학상 시상식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문학인들의 축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된 김만중 문학상은 시, 소설, 평론 부문에서 456명이 응모해 2627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남해군은 공정한 심사를 위해 분야별로 4명의 심사위원을 두어, 예심통과 작품을 공개 토론하는 방식을 통해 대상 1명과 분야별 금상, 은상 각각 1명의 당선작과 당선자를 발표했다.

 

1일 오후 430분께 진행된 시상식에는 정현태 남해군수를 비롯해 최채민 군의회의장 등 200여 명의 군민이 참석해 수상자들을 축하했다.

 

이날 시 부문 출품작인 이상원 씨의 '서포에서 길을 찾다'가 대상을 수상했고 소설 부문 금상에 이후경 씨의 '저녁의 편도나무' 은상에 이춘실 씨의 '빨간눈이새'가 수상했다. 또 시 부문은 금상에 박후기 씨의 '유배자청', 은상에 최헌명 씨의 시조 '웃음에 관한 고찰'이 수상했다.

 

평론 부문은 금상 당선작을 내지 못했으며, 손정란 씨의 '이별한 자의 길 찾기'가 은상을 차지했다.

 

정현태 남해군수는 인사말을 통해 "저는 제2회 유배문학관 수상작을 보름전에 읽었다.특히 대상작인 이상원 선생의 장편서사시는 격조높고 큰 감동을 주는 작품이었다" "바른 문학을 통해 이 시대가 바른정신으로 제 갈길을 가서 후세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해군은 11 1일 남해유배문학관 개관 1주년 기념식에 맞춰 시상식을 가질예정이며 대상 수상자에게는 5천만원의 상금이 주어집니다.  3개분야의 금상과 은상 수상자에게는 각각 1천만원과 5백만원의 상금이 지급된다.

 

김만중 문학상은 서포(西浦) 김만중 선생의 작품 세계와 국문정신을 기리며, 유배(流配)문학을 전승ㆍ보전하려고 남해군에서 지난해에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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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그네 / 하수현

 

 

 

 

 

 

 

 

 

 

 

 

 

 

 

 

 

제1회 김만중문학상 수상작품집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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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높은 작품 수준, 작품상 취지 잘 살린 것으로 평가

 

남해군이 우리나라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김만중 선생의 작품 세계와 국문정신을 높이 기리며, 유배문학을 전승.보전하고 한국 문학발전에 기여코자 공모한 제1회 김만중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지난 5월 18일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9월 17일까지 4개월간 공모해 510명 2763편이 공모돼 전국 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가운데, 문호성(부산 동구) 씨의 장편소설 '육도경(六島經)'이 대상을 차지해 5000만 원의 상금을 받게 됐다. 금상은 시, 소설, 수필, 희곡, 아동문학, 유배문학특별상 분야로 나눠 10명이 선정됐다.

 

금상 수상작을 분야별로 보면 △시, 하수현(포항) 씨의 '겨울나그네', 공광규(경기 고양시) 씨의 '지족해협에서'△소설, 유연희(부산 금정구) 씨의 '날짜 변경선', 정희성(인천) 씨의 '백지에 대한 지질학적 탐구' △수필, 송명화(부산 동래구) 씨의 '화선(火仙)' △희곡, 이원희(서울 은평구) 씨의 '줄탁', 이주영(서울 용산구) 씨의 '그녀의 손가락' △아동문학, 김은중(경기 고양시) 씨의 '도둑왕이 도둑맞은 것', 이우식(충북 제천시) 씨의 '실뜨기 놀이' △유배문학특별상, 임세한(경기 남양주) 씨의 '초옥(草屋)가는 길'이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제1회 문학상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많은 문인들의 참여와 전반적으로 작품 수준이 높아 심사위원들이 여러번 의논을 거쳐 수상작을 선정했다"며 , "서포 김만중 선생의 작품세계와 국문정신의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문학상의 취지에 맞는 작품을 선정코자 고심했다"며 전체적인 총평을 전했다.

 

현기영 심사위원장은 "이 사회에 미만한 파시즘의 폭력에 강렬한 허무주의로 맞서고 있는 장편소설 '육도경'은 응모작품들 중에 군계일학의 압도적인 매력을 내뿜고 있다"며, "육도경은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에서 제목의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생각되는 바, 모두 여섯 개의 상징적인 섬을 통과하며, 각 섬마다 지닌 개인적 혹은 시대적 폭력에 맞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인간성을 말살 당하는가, 아니면 내적인 성장을 통해서 폭력을 극복해 가는가에 대한 대답을 추구한 작품이다"고 심사평을 전했다.

 

또 "심사위원은 바로 그러한 치열하고도 치밀한 작가정신이야말로 서포 김만중 선생이 남해까지 유배 당한 채 오랜 고독과 정신적 방황 속에서 이루어낸 빛나는 작품세계와도 어깨를 겨누어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믿는다. 또한 그러한 육도경의 작가정신이야말로 우리 문학에 유배문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어서, 우리 문학에 또 하나의 매력적이면서도 소중한 어떤 가능성을 여는데 크게 보탬이 되리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대상 수상자 문호성 씨는 "왜곡된 시공 속에 은밀히 숨어 있는 폭력들을 과녁 삼아 이 글을 썼으며, 부끄러운 시도를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시상은 오는 11월 1일 남해유배문학관 개관에 맞추어 남해유배문학관 특설무대에서 오후 5시에 열린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5000만 원의 상금이 주어지며, 소설과 유배문학특별상은 상패와 상금 500만 원, 시, 수필, 희곡, 아동문학은 상패와 상금 300만 원이 각각 수여된다.

 

한편, 군은 12월경 수상작품들을 책으로 엮어 새롭게 출발하는 제1회 김만중 문학상의 품격을 높이고, 문학상과 유배문학관의 정신을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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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해협에서 / 공광규

- 유배일기 1

 

 

갯가 푸조나무 아래서 가을단풍을 등불삼아

향교에서 빌려온 <주자어류>를 읽다가 내려놓고

통무를 넣고 끓인 물메기국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해안을 한참 걸어가 만난 곳이 지족해협이라던가

연을 날리는 아이들과

굴과 게와 조개와 멍게를 건지고

갈치와 전어와 쭈꾸미를 잡는 노인들을 만나

이곳 풍물을 묻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갈대를 엮어 올린 낮은 지붕에는

삶은 멸치들이 은하수처럼 반짝거렸는데

떼 지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용과 같더군요

아하, 이곳에서는 멸치를 미르치라 부른다는데

미르라고 부르는 용의 새끼가 미르치 아닐는지요

미르라고 부르는 은하수 또한

이곳 바다에서 올라간 미르치의 떼가 아닐는지요

참나무 말뚝을 박은 죽방렴 아래에서는

남정네들이 흙탕물에 고인 멸치를 퍼 담고 있었습니다.

흙탕물 바가지에 담긴 멸치들을 보면서

인간의 영욕이라는 것이 밀물 썰물과 다르지 않고

정쟁政爭에서 화를 당하는 것은 빠른 물살을 만나

죽방렴에 갇히는 재앙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삶기고 말라가는 지붕 위의 멸치와 다름이 없는 이 몸은

남해의 물을 다 기울여도 씻지못한 누명이거늘*

오늘 밤, 밝은 스승과 어진 벗이 그리울 뿐입니다.

 

* <사씨남정기> 구절에서 인용

 

 

 

 

담장을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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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부문에서 본심에 오른 작품은 응모자 30인에 의한 226편이었다. 김만중 문학상 첫 공모인데도 불구하고 수준은 매우 높았다. 30인의 작품 중 아무것이나 잡고 당선작으로 하고 의미를 붙이면 그대로 이해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심사위원 두 사람이 집어든 작품들은 묘하게도 지향점이 일치했다. 아무리 자별난 묘사를 하고 내면 풍경 추적에 열심이어도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점이 무엇인가, 그 말하고자 하는 점을 시인이 통제하면서 마침내 말하고자 하는 바에 이르렀는가 하는 데 초점이 주어져 있었다. 그런 쪽에서 <서포 서한>, <움직이는 달>, <옷들>, <돌이 꽃 피는 순서>, <겨울 나그네>, <지족 해협에서> 등의 작품들이 관심의 표적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은 두 편은 <겨울 나그네> <지족 해협에서>( 6편 포함)였다.

 

<겨울 나그네>는 갈앉은 차분한 음성으로 순례하는 영혼의 장면들을 장시로 풀어갔다. 떠도는 의식, 이미지, 급할 것 없는 삶의 사연이나 단편들이 시인의 언술에 엮여져 있어 머물지 않는 순례의 길, 그 도정이 밝혀지고 있었다. 이 시에서 독자는 말한다는 것은 그 말 때문에 신뢰할 수 있음을 체험해낼 수 있을 것이다.

 

<지족 해협에서> 6편을 낸 응모자는 김만중을 소재로 한 7편의 유배일기를 썼다. 그러니까 일정 의도를 놓고 시를 써나갔다는 점에서 응모자의 평소 능력이 가장 잘 드러난 시편이라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합격점을 얻은 셈이다. 이 시를 쓰기 위해 지족해협이나 다랑이논이나 이재 선생 묘소, 노도, 망운산 등지를 돌면서 취재하고 사색한 그 노력이 십분 드러나고 있는데 말하자면 발로 쓴 시로서의 현장성이 돋보이는 것이었다. 특별히 각 편 주제의 안배도 눈여겨 둘 만했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살펴본 대로 시부문 당선작으로 <겨울 나그네> <지족해협에서> 6편을 일찌감치 골라놓고, 이들 작품을 쓴 응모자가 기성인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름이 밝혀져 기성이라면 망운산 높이로 든든할 것이고, 신인이라면 노도 앞바다 물결처럼 신선할 것이라 그렇게 기대되는 것이었다.

 

심사위원 : 강희근(경상대 명예교수),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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