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대상] 허공버스 / 김대호

 

 

허공은 만원버스다

발 디딜 틈은 고사하고 숨쉬기도 힘들다

곗돈 떼인 여자가 친정 언니에게 무선 전화를 한다

말을 내보내는 동안에도 여자의 몸은 점점 뚱뚱해진다

머리에 파일로 저장된 분노는

압축이 풀리면서 온몸으로 번진다

여자의 입에서는 속기로도 받아적을 수 없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일부만 언니의 귀에 담기고 나머지는 허공을 탄다

다음 정거장에서

무단 질주하는 카 오디오의 고음이 승차한다

심지어 소리가 되지 못한, 그러나 충혈된 눈빛으로 읽을 수 있는

억울하고 치욕스럽고 한 맺힌 생각들 승차한다

잠자는 사람의 헛소리까지 보태진다

이제 허공버스는 멸균 안 된 말과 생각의 승객으로 인해 고약한 냄새까지 난다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바퀴가 펑크가 날 지경이다

중력도 없이

비어 있다고 믿었던 허공

죽은 다음에 내 혼의 거처가 될 것이라고 상상한 그곳,

무색무취의 노선을 오가는 버스는 지금 만원이다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nefing.com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의원장 이선두 의령군수)는 의령군 천강문학상 수상자를 결정했다고 6일 밝혔다.

 

군에 따르면 제10회 천강문학상 부문별 대상으로 소설 부문에는 박혜영(서울 은평구)<수취인 불명>, 시 부문 김대호(경북 김천시)<허공버스>, 시조에는 변현상(부산시 사하구)<뭐든지 다합니다>, 아동문학 부문에는 한광일(경기도 고양)<주황색 응원>, 그리고 수필 부문에 박금선(서울 관악구)<달팽이의 꿈>이 각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각 부문별 우수상은 소설 부문에는 김민주(서울 송파구)<아주 가는 실 한가닥>, 시 부문 배두순(경기도 평택시)<황금송아지>, 시조에는 이영신(강원도 강릉)<소머리 국밥>, 아동문학 부문에는 양정숙(광주광역시)<감나무 위 꿀단지>, 그리고 수필 부문에 김영미(경북 경주)<슬픔의 무게>가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4회 의령군 청소년 천강문학상 대상은 초등학교(저학년부) 부문 용덕초등학교 박예명 <매미>, 초등학교(고학년부) 부문 부림초등학교 박서희 <나리꽃>, 중등부 부문 신반중학교 이린의 <코피 스터디>, 고등부 부문 의령여자고등학교 김고궁의 <天地救軍,천지구군>이 영광을 차지했다.

 

특히 소설 대상을 수상한 <수취인 불명>은 우체국 직원인 주인공이 외국에서 실종된 남편을 찾기 위해 그 행적을 추적하는 소설로, 치밀하고 정교한 소설적 요소들이 만들어낸 빛나는 소설이라는 평을 받았다.

 

지난 61일부터 731일까지 2개월 동안 5개부문(, 시조, 소설, 수필 ,아동문학)에 걸쳐 공모한 천강문학상에 역대 최다 인원인 10075,111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고 밝혔다.

 

분야별로 보면 시에 2761930, 시조에 113791, 소설에 161272, 아동문학에 2541,512, 수필에 203606편이 접수되었고,

 

시상금은 소설 부문 대상 1000만원, 우수상 500만원, 시와 시조, 아동문학, 수필은 대상에 각 700만원, 우수상은 각 300만원이다.

 

한편 시상식은 홍의장군 곽재우 탄신일인 오는 26일 오후 2시 의령 군민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있을 예정이다.

 

728x90

 

 

[대상] 노을 격포 / 송의철

 

 

물거품 별처럼 이는

노을궁격포 해변에서

웃는 눈물방울 보네.

 

저 한 송이 석양화夕陽花 앞에서

떠나온 여인은 소리 지르고

고래등 같은 섬 노을 분만하는

인어는 자장자장 하네.

 

그때, 모래 젖 물고 칭얼대는

거품들 떠밀어 탁아하고

바다의 풍성함에

연연하는 바람에 사로잡혀

파도의 두상들 금관 쓰고 너울춤 추는데

모여드는 해변엔 반짝이는

거품과 거품뿐이네.

 

날마다 잉태하고 날마다 분만하는

그 마음

몹시 슬퍼서 웃는 눈물 속으로

연한 연미복 입은 금성이

석양화 꽃마차에 노을공주를

태워 떠나네.

 

그리고

눈물방울 속에서 달이 뜨고 마네.

별들은 자장자장 반짝여라

 

 

 

 

 

[우수상] 삐비꽃 / 박윤근

 

 

산기슭 중턱에 활자들이 뭉텅 빠져있다

기우는 오후 두 시의 각도에서 지워졌다

식물도감 빨간 볼펜으로 밑줄 친 그 속이다

손톱 밑으로 공복이 하얗게 말려들던 손,

보이지 않는다

 

직선으로 줄기를 뻗는 습성의 어느 풀은

종내 책등을 넘어 백태처럼 사라졌다

마음의 돌확에 여운이 길지 않았다

 

구멍에 빠진 저 풀

속지를 넘겨 줄때는 결이 민감해져

오래 변색되지 않는다

 

하지만 손이 멀어져 상처 난 마음

자간을 지나는 좀 벌레에게는

치명적인 먹잇감이었다

 

뻥 뚫린 주변에 자라던 개정 향 풀도

끝내 문장들을 잡아주지 못한 손끝이 파랗다

책갈피 사이로 무거운 생각

뼈로 압화 돼간다

 

향기 없는 꽃이 무슨 죄가 되었는지

입술의 빛깔 지우며 다른 식물의 일가가 된다

 

결의를 해지한 풀들

어둔 구멍에 웃자란다

 

오랜 도감의 서열이 바뀌고 있다

 

 

 

 

 

[우수상] 난 헌옷이다 / 이명예

 

 

철 지난 옷 정리하다가 지푸라기로 변해가는 흰나비를 보았다

아직 통통한 줄무늬 스커트 토라진 모자 단발머리 반바지

그들만의 숨이 거칠게 납작하게 빛을 내고

너덜너덜 실밥 깨진 곳은 어머니 시절엔 밥풀이었을

뿌리 뽑히면 아무것도 아닌

정리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다투어 줄을 선

한때는 산소 먹고 별을 읽는 싱싱한 혈관을 자랑했다

찢기고 그늘진 날개 운동하고 채식하면 건강한 시계 울리겠지

심장 헤치는 위험은 밟지 말아야 하지

난 흰나비 난 헌옷

침 튀면 발끈 기울어질 허나 손질하면 입을 수 있는

주름 꼬이면 어떤가! 자존심 아직 시퍼런데

시침질 박음질 다툼 서너 겹 준 나이

헌옷으로 입문했으면 당당해야한다

양질의 탯줄 손가락 구분하지 않는 사랑

나는 원본이다

시간의 태를 입고 혈색 좋은

난 헌옷이다.

 

 

 

 

 

[우수상] 하늘에 별 총총 / 김대호

 

 

길에 피가 묻어 있다

그것은 로드킬 당한 짐승이 마지막으로 내놓은 즐거운 날숨 같은 거

오랜 지병을 앓던 자가 드디어 결심을 한 흔적

피는 길에 착 달라붙어 있다

피 스스로 길을 집요하게 쥐고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길이 한꺼번에 각혈했을 때

그 압력이 너무 세서 먼 하늘에 가 박혔다

밤이 되면 각혈한 피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붉은 피가 너무 영롱하여 반짝인다

 

길에 묻은 것은 소심한 성격을 가진 피의 잔해

중력을 배반하고 드디어 별이 되지 못한,

소심한 성격 탓에 길을 꽉 쥐고 있는,

짐승의 시간을 살고 있는,

중력에서

원본에서

떨어지라고 바퀴가 짓뭉개도 힘을 빼지 않는다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nefing.com

 

 

 

[심사평]

 

치열한 예선의 문턱을 넘어 모두 31명의 작품들이 우리 앞으로 왔다. 이들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개성'이라 불러도 좋을, 분명한 시의 기초와 뼈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들은 신인으로서의 모험과 열정으로 전통과 충돌하기도 하고 각자 자기만의 언어로 개성을 찾아가는 불안을 노정하기도 하였다. 또한, 기성과 유행에 주눅들지 않으면서도 만만치 않은 시선으로 사물을 끌어당기는 능력도 엿보여 평자들을 설레게 하였다. 오랜 작품 읽기와 논의 끝에, 박윤근의 삐비꽃4, 이명예의 난 헌옷이다4, 김대호의 하늘에 별 총총4, 송의철의 노을 격포5편등, 4의 작품들을 주목하였다.

 

박윤근 씨의 삐비꽃4편은, 내면의 풍경을 반죽해내는 솜씨가 좋다. 특히, 식물도감속 삐비꽃을 현실로 불러내는 언어의 감각이 돋보인다. 삐비꽃을 통하여 그는 책갈피 같은 생활의 틈바구니에서 '뼈로 압화'해 가거나, 어쩔 수 없이 쓸쓸하게 '다른 식물의 일가'가 되어가는 삶의 공복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만한 시선으로 사물을 그렇게 깊고 오래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다. 다만, 그의 다른 작품들은 자주, 자기만의 중얼거림으로 모호한 세계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모호한 이미지는 그것이 시의 안이든 바깥이든 머물 곳이 없다.

 

이명예 씨의 난 헌옷이다4편은, 건조하지만 단단한 어조로 일상을 풀어낸다. 그의 시들은 크게 꾸미거나 과장하는 법이 없다. 마른 바람이 불어대는 하모니카 소리 같다. 그렇다고, 그런 감정의 틈입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그의 시들이 사물의 표피만을 건드리고 가는 게 아니다. 난 헌옷이다와 같이, 그의 시가 직관으로 빛날 때면, 자주, 정직하게, 삶의 속살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그의 다른 여러 시들은 단조로운 형식에 군말이 너무 흘러넘친다. 때로 말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김대호 씨의 하늘에 별 총총4편은, 새로운 서정이다. 분명, 그의 시의 형식은 새롭지는 않으나, 시의 화자들에게서는 시의 새벽을 걷는 설레임이 느껴진다. 투고된 작품들 대부분이 오랜 습작의 흔적이 역력하고 고루 안정된 기량과 시적 완성도도 갖추고 있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삶의 각혈로 각혈할 때의, '그 압력이 너무 세서 먼 하늘에 가 박힌'(하늘에 별 총총) 것이라는 감각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별처럼 반짝인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시의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이미 길들여진 매끄러운 말보다는 거칠고 성난 말로 몰아가야 하지 않을까?

 

송의철 씨의 노을 격포5편의 시들은, 재미와 익살로 푹, 익었다. 현고학생顯考學生, 노을 격포,등의 시에서 보이듯 말을 부리는 솜씨도 완숙에 가깝다. 신인답지 않게 능청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그의 시들이 거져 얻어지지는 않았을 터, '우주를 소쩍소쩍 읽거나', '우주의 노래를 비의 붓으로 소쩍소쩍 받아 적기까지', 그리고 '별들이 자장자장 반짝'이게 하기까지, 수많은 불면의 시들이 '노을 격포'를 밀물 썰물처럼 다녀가지 않았겠는가.

 

최종적으로 김대호 씨의 작품과 송의철 씨의 작품을 앞에 놓고 오래 망설이다, 결국, 송의철 씨의 작품을 대상으로 결정하였다. 두 분 중 누구라도 대상의 자격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시의 처마를 번쩍 들어 올리는 유쾌함이 있는 송의철 씨의 작품에 조금 더 애정을 주기로 하였다. 대상과 우수상에 선정된 네 분에게 축하의 말씀 드린다.

 

- 심사위원: 정현종 시인, 송찬호 시인

 

 

 

'국내 문학상 > 수주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3회 수주문학상  (0) 2011.09.29
[스크랩] 하늘에 별 총총/김대호  (0) 2011.06.17
제11회 수주문학상  (0) 2011.02.19
제10회 수주문학상  (0) 2011.02.19
제9회 수주문학상  (0) 2011.02.1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