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담을 수 없는 여자 / 김관민
미안해요, 당신을 윤리책에 담으려 했어요
당신의 신발을 신발장에만 가두려 했으니
당신은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미안해요, 당신을 수학책에 담으려 했어요
당신의 모든 걸 계산하려고 했으니
당신은 얼마나 지루했을까요
미안해요, 당신을 국어책에 담으려 했어요
당신을 그렇고 그런 이야기 속에 살게 했으니
당신은 얼마나 심심했을까요
미안해요, 당신을 음악책에 담으려 했어요
당신의 눈에 들리지 않는 음표들만 늘어놓았으니
당신은 얼마나 짜증났을까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은 책에 담을 수 없는 여자인데
당신은 책이 아닌 이렇게 내 앞에 서 있는데
나는 그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거죠
오, 정말 미안해요
또다시 당신에게서 답을 구하려 했네요
[당선소감]
고맙습니다.
감사한 분들이 정말 많네요.
일일이 언급하면 진부하고 지루할 것 같아 줄입니다.
그래도 스승님이신 최승호 시인을 빼놓을 순 없겠죠.
정말,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훌륭한 선생님들이 심사해주시고 뽑아주셔서
영광입니다. 무엇보다.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즐겁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쓸데없는 장식 뺀 ‘돌직구’ 표현
시를 읽는 가장 큰 재미는 다른 데서는 들어보지 못한 말을 그 시에서 처음 듣는 데 있지 않나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인은 세상을 보는 남들과는 다른 눈과 귀와 손이 있어야 할 것이고, 거기서 남들과는 다른 어법이 나오게 되는 것이리라.
이번 응모작품은 그 양에 있어 전년보다 훨씬 많았고 수준도 결코 뒤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비슷비슷한 소리들이 많아 시를 읽는 재미가 반감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다음 작품들은 여러 면에서 심사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안개, 당신의 행방’(이주)은 우선 아름답다. 그윽한 수묵화 속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안개가 자욱한 숲길을 걷는 느낌도 주면서, 특히 뒷련에 이르러서는 사람 사는 일의 아득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빼어난 서정시로 읽어 틀림이 없겠지만, 자기만의 목소리나 어법이 모자란다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미안하다’(김동연)는 말하자면 환경시라 할 수 있겠는데, 호소력도 있고 표현에 무리는 없지만 너무 뻔한 소리다. 옳은 소리, 지당한 말씀이 다 좋은 시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잘 지내니?’(조영훈)는 발랄한 발상과 표현이 장점이다. 하지만 외국어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걸린다. 시 하면 일단 폼을 잡고 인상을 쓰고 보는 것도 가관으로 그런 점을 극복하고 있는 면은 살만하지만, 이 작자의 다른 시들은 어쩐지 좀 가볍다는 느낌을 준다.
‘책에 담을 수 없는 여자’(김관민)는 우선 어법이 특이하다. 이 점은 같은 작자의 ‘악성종양’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는데, 이런 어법은 우리 시에서 보기 어려웠던 터여서 신선한 느낌을 준다.
쓸데없는 장식 없이 핵심으로 돌진하는 시법도 시에 힘을 더해준다. 당선작의 수준이 된다고 생각되는 이상의 네 작품을 놓고 토의한 끝에 심사자들은 김관민의 ‘책에 담을 수 없는 여자’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그의 앞으로의 활약에 크게 기대를 건다.
심사위원 유종호 문학평론가와 신경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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