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수업 / 신승철
못 배운 사람
혹은 잘난 사람
억울한 사람, 가난한 사람
분별을 잃고 헤매는 사람
돈 많다고, 힘 있다고
잘난 척하는 사람
평평해질 때까지
그대들이
내 마음속에서
나무처럼, 풀처럼
의자처럼
편안해질 때까지
이윽고 그대들이
이 의식 속에 모두 들어와
함께 하나의 삶이 되고
산과 들, 강물과 더불어
하늘 아래
그대들이 나와 함께
하나의 대지가 될 때까지
하나의 꿈으로 완성될 때까지
우리 모두는 함께 기다려야 한다네
왜냐하면 그대들이 바로 나인 까닭에
내가 바로 그대들인 까닭에
"홀로 가는 이 길이 결코 헛된 길은 아니다. 하지만 지구의 중력에 꼭 붙들려 매어 사는 인간으로서, 일상의 사사로움에 ‘사사로움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 사사로움 속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일로 가끔은 잠을 이룰 수가 없으니, 아직은 미완未完의 인생임을 알아서인 것이다." 신승철 시인의 시집 중 '기적수업'의 한 구절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신승철 시인이 시집 '기적수업'을 펴냈다.
이 시집엔 '기적수업' 외에 '병' '어둠 속에서' '오케이' '설산雪山에 올라' 등 불교의 감성과 기독교적 영성이 녹아 있는 총 5편이 실려 있다.
신승철 시인은 1953년 경기 강화에서 출생했으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연세의대 정신과 교수, 1987년 미국 텍사스 의대 정신보건과정 연구교수, 전 서울 가정법원 가사조정 위원(1997~2001)을 역임했다. 정신과 전문의, 신경과 전문의이며 1978년 혜산 박두진 선생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하여 시인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장영실 문화대상’을 수상했으며 ‘조선일보 신승철의 부부진단(1997. 3~1998. 4)’을 연재했다.
저서로는 학술서적 '연변 조선족 사회정신의학 연구', 에세이집 '한 정신과 의사의 노트' '남편인가 타인인가'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나를 감상하다', 역서 '비폭력의 기원-간디의 정신분석' '아직도 가야할 길' '사랑은 모든 것의 해답' 'TMS 통증치료 혁명'이 있다. 이밖에 시집으로 '너무 조용하다' '개미들을 위하여' '그대 아직 창가에 서서 오래도록 떠나지 못하고있네' '더 없이 평화로운 한때'가 있다.
혜산 박두진문학제운영위원회와 한국문인협회 경기 안성지부는 올해 박두진문학상 수상자로 신승철 시인을 선정했다고 지난달 22일 밝혔다.
혜산 박두진 문학상은 혜산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고향인 안성시 후원으로 2006년 제정됐다. 해마다 수상자는 발간된 시집 중에서 우수한 시적 성취와 활동을 보여준 시인 중 혜산의 시 정신과 시 세계를 반영해 예심에서 추천된 본상 후보 여섯 명 가운데 엄선한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신승철 시인의 《기적수업》은 박두진 선생이 근대사의 역사에 착근한 바 있는 장시(長詩) 전통을 확장적으로 계승하면서, 인간과 우주와 신성(神聖)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으로 매우 중요한 형이상학적 탐구의 결실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신승철 시인은 “무위(無爲)의 세상을 노래하면서, 갈수록 생각과 말과 행동이 더욱 단순해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시인의 말마따나 등단 40년을 맞고 있는 중진 시인은 수행자인 듯 영적 관조와 침잠 과정을 통해 시 세계의 완결성과 가능성을 모두 바라보게 한다.
심사위원단은 “혜산 선생의 지향과 유산이 창의적으로 섭렵되고 계승된 이 시집은 그의 오랜 시력(詩歷)에 상응하는 크나 격려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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