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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꽃이 지다 / 오영애

 

 

흰꽃이 진다 한꺼번에 진다 비를 맞으며 서서 수십 톤씩 진다 무더기무더기 진다 바야흐로 진다 가슴이 하나 진다 통곡하듯 진다 둥둥 떠서 진다 꽃상여로 진다 절뚝절뚝 진다 맨땅위에 진다 색 없이 진다 화 없이 진다 자식 없이 진다 원수 없이 진다 수의(壽衣) 없이 진다 실로 꽃 곁에 가까이 울며 서 있는 장바구니 든 나도 진다

 

 

 

 

 

[당선소감] 시는 삶의 구원이자 치유였다

 

뛸 듯이 기쁩니다. 무변창공을 훨훨 날아오를 것만도 같이 기쁩니다. 무거운 마음의 짐을 이제야 벗어버리는 듯한 홀가분한 이 기분 생에 최곱니다. 스스로에게 보상을 줍니다. 무량으로 기쁩니다.

 

뼛속까지 다 비워버리고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시조새의 날갯짓이 이런 것인가 봅니다. 몸속으로 파고듭니다. 좀체 떠날 수 없었던 슬픔 덩어리들이 한꺼번에 깨지고 부서지고 여과 없이 떠나갑니다. 화석으로 옹이 박혀 점점 더 깊이 화인 자국을 남기고 결집해 있던 시의 응어리들이 가차 없이 떠나가고 있습니다. 십수 년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곪을 대로 곪은 상처투성이, 그야말로 구제불능인 신춘폐인으로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수렁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조차 없는 몸과 마음으로 지쳐 가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며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힘을 주었던 것은 문학에 대한 열정, 즉 위대한 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도 같습니다. 제게 시는 삶의 구원이자 치유였으니까요.

 

이제 시의 꽃을 피우는 봄이 왔습니다. 마음껏 시의 밭을 누비며 황량했던 마음을 갈고닦으며 경작해 보이겠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던 전날 밤 꿈속에서 본 영롱한 빛깔의 시 무지개를 하늘에 걸겠습니다. 한림대 김은자 교수님 감사합니다. 오태환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 식구들 감사합니다. k.k.k 문우님들 감사합니다. 끝으로 경남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 너무도 감사합니다.

 

지상으로 내려오는 첫눈을 두 손으로 받습니다. 공손히 받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심사평] 오롯한 말솜씨와 창조적 가락

 

시처럼 짜맞춘 시, 시로 보이기 위해 안달하는 시, 쓰는 사람 스스로도 재미 없을 그런 시를 읽는 일은 피곤하다. 해묵은 사회적 낭비. 기성 양복을 입은 듯한 말씨만 번잡스럽다. 이즈음 평균 취향이 그렇다며 넘기고 말기에는 씁쓸할 따름. 신춘문예 당선을 겨냥한 신인이라면 자기 목소리를 갖고자 고심한 흔적 정도는 보여야 하는 게 아닌가. 마지막까지 남은 세 편을 두고 뽑는 이는 그 점을 먼저 살폈다.

 

김혜경의 진화론은 변기에 앉는 삶에서 거미의 생태를 유추한 시다. 자신도 발 대신 다리돋아날 듯쓰리다는 마무리까지 무리가 없다. 그러나 다른 거미 글감 시들과 나뉠 만한 확연한 울림은 얻지 못했다. 김혜강의 는 제목 그대로 비에 대한 풍정시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엮은 직조술이 참신했다. 그럼에도 비를 빌린 땅과 하늘의 교감을 옥황상제와 몸 섞는 소리라 한 데서 평범에 머물고 말았다.

 

오영애의 흰꽃이 지다는 앞선 둘에 견주어 신춘문예용 시에서 멀다. 단형에다 담긴 속살 또한 막연하다. 감상적이기까지 하다. 짜임도 ㄱ이 진다는 월의 엮음과 되풀이로 한결같다. 그것을 받치는 몸말은 명사형에 갇혀 감각적 표현성을 지니지 못했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창조적이다. 자기 가락을 지녔다. 자신이 겪은 바를 자기 목소리로 뱉는 힘이 시인 되는 첫 조건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다.

 

게다가 말솜씨까지 오롯하다. 이 시는 삶의 막연한 속살로 길게 이어진 앞과 장바구니 든 나를 내세운 짧고 구체적인 마무리 월, 두 매듭으로 짜였다. 그런데 둘 사이 단층이 지닌 뜻은 크다. 앞 매듭에 넘치는 감상이 삶의 깊이로 뒤바뀌는 놀라운 비약을 뒤 매듭이 마련한다. 한 여자가 겪은 아픈 간난을 단형의 가락으로 울림 크게 살려 낸 절창 흰꽃이 지다’. 오 오 시인, 멀고 멀 창작의 길에서 독야청청 피고 피기를.

 

- 심사위원 : 박태일·김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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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호텔 602호 / 이재성

 

 

독한 럼주병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하급선원들이 돌아온 바다와

떠나갈 바다를 위해서 건배를 하는 사이

호텔 602호는 마스트를 세우고 바다 위에 떠있다.

아니 이미 항진 중인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허무, 낡은 시집의 행간, 해무는 같은 색이다.

점점 깊어지는 밤의 해무

수시로 무적이 길게 혹은 짧게 울리고

J는 아직 조타륜을 잡고 자신의 바다를 항해 중일 것이다. 조타실의 문을 열자

바다 속에서는 해독할 수 없는 안개가 타전되고

나는 이미 길을 잃은 한 척의 운명

해도를 펼쳐 북극성의 좌표를 찾는다.

J도 이 바다를 떠나 희망봉을 찾아 갔을 것이다.

스무 살, 바다를 잡을 때마다

늘 빈 손바닥이었다.

지금도 바다는 나에게 오리무중이다.

늙은 고양이가 친숙한 비린내를 풍기며

안개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안녕, 이 하룻밤도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안녕, 나도 사라질 것이다.

J가 누워 있던 침대엔

낡은 바다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이번 항해가 길어질지 모른다.

어쩌면 무사히 귀항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드리드 항에서 이 호텔은

항해사들로 이미 만원이다.

하지만 이 호텔에는 602호는 없다.

 

 

 

 

 

누군가 스물다섯 살의 바다를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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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소중한 한마디 초심

 

파도 위를 방랑하는 선원들은 마음의 등대를 찾고 있다. 외눈박이 희망의 불빛을 따라 외딴섬처럼 떠다닌다. 하늘길이 열리는 시간, 마지막 별빛마저 낮별로 사라지는 순간, 등대의 편지는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순항을 염원하는 불빛이 선원들의 코끝을 적시면 뱃머리는 가볍게 당신 곁으로 향하고 남은 자들의 바다는 밤이 오길 기다린다. 파도는 잔잔하게 등대를 바라본다. 또다시 떠오르는 태양 앞에선 언제나 등대는 바다를 끌어안는다.

 

꿈속 일렁이던 하늘을 바라보면, 통통 튕기던 기타소리 아스라이 울리던 바다, 톡톡 노크를 하면 희망의 불빛을 볼 수 있을까, 하늘길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기다리던 등대의 편지. 펼쳐보면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한마디가 있었다. ‘초심(初心)’

 

경남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항상 든든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부모님, 꿈의 시창작교실을 열어 주신 경남대학교 조기조 처장님, 김정대 원장님, 함께 공부하는 자카의 친구들, 국어국문학과 교수님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믿음직한 일명 ‘9명의 꿈에 배고픈 아이들과 저의 소중한 인연들이 있어 제가 이 자리에 선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희망의 불빛을 가지고 초심 잃지 않겠습니다.

 

 

 

 

[심사평] 몰입, 반전의 시적 매력 뛰어나

 

신춘문예 시 부문 투고자가 지난해에 비해 많았다. 전국에서 많은 작품이 투고됐다. 엄격한 예심을 통해 본심에 올라온 작품도 14편이나 되었다. 소재도 다양하고 시의 맛들도 독특했지만 최종심에 4편 ‘어떤 습격’, ‘장미와 칸나 사이’, ‘록클라이밍’, ‘마드리드호텔 602호’가 남았다.

 

‘어떤 습격’은 노모와 아들이 은행나무를 털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은행나무에서 새를 발견하고 ‘내가 해마다 가을이면 털어낸 것들 모두가/새들의 노란 울음이었나’까지 이끌어 내는 힘이 돋보였다. 하지만 그 힘을 만들기 위해 시가 가진 산문성이 강한 것이 흠이었다.

 

‘장미와 칸나 사이’는 잘 쓰인 시다. 시를 만들어 내는 기술도 남달랐다. 같이 응모한 시들도 잘 다듬어진 시였다. 단지 기존의 문예지에서 읽을 수 있는 익숙함에 심사위원들의 우려가 있었다. 신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패기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록클라이밍’과 ‘마드리드호텔 602호’는 같은 수준의 시였다. 어느 것을 당선작을 뽑아도 좋았다. 당선작을 뽑는 것이 ‘진검승부’였다.

 

‘록클라이밍’은 힘과 절제가 뛰어났다. 그러면서도 빠르게 읽히는 속도가 있었다. 암벽타기를 인생에 비유해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날카로웠다. ‘추락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벽을 오른다’는 명제는 누구에게나 쉽게 감동으로 이어지는 시였다.

 

‘마드리드호텔 602호’는 오랜만에 만나는 신춘문예 풍의 시다. 28행의 비교적 긴 시인 데도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만만찮았다. 한 번 읽으면 끝까지 읽게 하는 환상적인 시적 매력에, 바다에 대한 이해력도 뛰어났다. 마드리드호텔 602호에서 시작되는 바다 이야기가 마지막에 가서 ‘하지만 이 호텔에는 602호가 없다’는 반전이 시의 맛을 진하게 느끼게 했다.

 

심사위원들은 숙독과 합평을 통해 ‘마드리드호텔 602호’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진검승부를 겨룬 ‘록클라이밍’의 투고자에게는 내년에도 좋은 시로 만날 수 있길 바란다는 격려를 보낸다.

 

- 심사위원 : 이광석·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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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氏의 구둣방 / 이미화

 

 

발 끝에 달을 달고 저녁 강을 건너고 있는 허氏

구름처럼 떠돌았으므로 그의 생은

한쪽만 유난히 닳은 구두처럼 삐뚜름하다

그의 구두처럼 다 허물어져가는

옥봉동 산 1번지 아파트에

조등처럼 별이 걸릴 때 저녁하늘은

가난한 마을의 착한 지붕을 건너가면서

지상의 가장 낮은 바닥부터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

이동전화기 판매점에 다니는 착한 처녀의

구두 뒷굽을 갈아 끼우던 허氏의 남루한 저녁에

잠깐 화사한 웃음이 번진다

이동식 컨테이너 박스에 맞춘 그의 굽은 등 뒤로

따각 따각 처녀의 발걸음이 이동전화기 전화 연결음으로 터진다

중심을 놓고 뒷굽을 맞춘 구두가 흔들린다 

일용할 하루의 노동이 땀 내음 밴 구둣방을 넘보기도 하지만

늘 기우뚱 한쪽으로만 기우는 그의 세상에서

수선 중인 구두는

기운 없는 그의 한 쪽 무릎에서 완성되는 절망이 키운 꿈이다

다시 언제 그의 세상이 흔들릴지 모르지만 이미 구두 뒤축이나

밑창만으로 키워 놓은

환한 세상이 그에게선 자라고 있다

하나 둘 찾아와 박힌 별들의 뒷자리로 들던 그가

창문에 걸린 어둠을 후다닥 걷어내고

달빛 속에서 주춤거린다

볼이 넓고 우직한 신발 속 그의 한쪽 발이

나머지 발의 오늘을 타전한다

 

 

 

 

치통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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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또 다른 변이를 꿈꾸며

 

그와 나의 공통점은 한쪽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늘 삐뚜름하다는 것이며, 차이점은 늘 그는 웃고 나는 운다는 것이다. 구두의 굽이 덜거덕거리면 지금까지 걸어온 구두의 길을 들고 그에게 달려가곤 했었다. 그때마다 그는 구름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을 뒷굽에 끼우고 유난히 빛나는 별을 붙여 주며 나의 슬픔을 동여매어 주었다. 단단히 뭉쳐진 슬픔이 변종이 되어 나를 울렸다. 그럴 때마다 시가 마려웠다. 가끔씩은 시를 짓이겨 강가에 풀기도 했었다. 검은 보자기에 나의 생을 던져 놓고 여행을 떠난 적도 많았다.

 

눈이 잘 오지 않는 분지의 도시에서 낯선 아침을 맞이하는 날, 어제는 함박눈이 앞산을 가렸다. 함박눈이 다 져 갈 즈음 마침내 당선 통보를 받았다. 내 안에 다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속으로는 펑펑, 알 수 없는 회한의 격랑이 소용돌이쳤다. 분명 울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웃고 있었다. 실실, 웃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분지의 도시에서 1박을 이룬 아침이었다.

 

당선 소식은 울음이 변이되어 나를 웃음으로 가두어버렸다. 그냥 내버려뒀다. 나는 천천히 보자기를 풀어 삶의 연결고리를 풀고 내 이름 석 자를 날려 보냈다. 사유에 갇혀 무겁던 나에게 날개를 달아 주려 한다. 당선은 또 다른 나의 변이 과정이 될 것이기에.

 

겹겹으로, 그리고 천성적으로 슬픔을 달고 다니는 내게 웃을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주신 분이 계시다. 세상의 변방에 선 넓으면서도 낮고, 커다랗고도 여리며, 작고 아픈 것들을 배려하는 맘, 그런 연애의 대상을 찾아 가슴 절절히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시고 시보다 하루의 양식이 다급했을 때 뜨거운 격려로 다잡아 주신 김경 지도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시의 정신을 일깨워주신 박종현 선생님, 김용락 선생님, 창신대 문창과 이상옥 교수님께도 감사 말씀을 드린다. 함께 어둠을 찢고 시의 종자를 찾으러 다니던 시 읽는 앉은 자리 문우들, 낮은 곳을 동행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마루문학 동인들, 작고 여린 변방을 찾아다니며 시를 노래했던 그림내시낭송회 팀들, 감사드리고 싶은 분들이 함박눈처럼 쏟아진다.

 

칠순을 넘기셔도 결코 텃밭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어머니, 아버지 올해는 남은 배추만 봐도 눈물이 난다 하셨죠. 이젠 스스로 김장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은비, 은빈, 진녕아. 시와 일을 포기하지 않는 엄마로 인해 마음자리 많이 비우게 해서 미안해.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분들의 이름들에 뼛속까지 감사의 맘이 젖는다. 보답하는 길은 열심히 습작하고 노래하는 것임을 명심하려 한다. 여리고 낮은 것들이 삐뚜름하게라도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부지런히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려 한다. 시를 보듬을 수 있도록 부족한 글에 따뜻한 손을 얹어 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심사평] 시적 긴장 아쉽지만 가능성에 기대

 

지난해보다 응모 작품은 줄었지만 작품 수준은 뛰어났다는 것이 올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의 중평이었다. 예심에서 본심으로 올려 보낸 작품 중에서 오르골’ ‘몽골숙희’ ‘허씨의 구둣방3편의 시를 최종심에 두고 심사자의 숙독과 토론이 있었다.

 

오르골은 맑고 아름다운 시다. 시 속에서 오르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 서정적 특성에 비해 주제가 약한 것이 흠이었다. 남들이 쉽게 공감하는 주제가 아니라 신춘문예 당선작이 가지는 독특성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몽골숙희는 다문화시대를 대변하는 개성 있는 주제의 시다. 그 시선도 건강하다. 그러나 시를 끌고 가는 변주가 평범하다. 평면적인 구성이 아닌 좀 더 입체적인 구성이 앞으로의 시 창작에도 필요할 것 같다.

 

허씨의 구둣방을 두고 심사자 간의 이견이 컸다. 시를 두고 장시간의 토론도 있었다. ‘허씨의 구둣방은 따뜻한 시고, 세상으로 보내는 시적인 메시지가 희망적이다. 그러나 시적인 긴장이 다소 늘어지는 것이 문제였다. 함께 투고한 시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사를 죄는 듯한 압축이 필요했다.

 

심사자들은 올 시 부문에 당선자 없음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그러나 1년에 한 번의 기회가 돌아오는 신춘의 자리인 만큼 다른 시들에 비해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 허씨의 구둣방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자는 난산 심사 끝에 시인으로 출발하는 만큼 앞으로 경남신문 신춘문예가 배출한 한국 시단의 좋은 시인, 치열한 시인으로 빛나길 바란다. 본심에 오른 분들과 하늘에 상현달이 뜬다’ ‘꽃무릇’ ‘보따리 판타지’ ‘장수풍뎅이 우화기의 투고자들에게도 격려를 보낸다.

 

- 심사위원 : 정일근·김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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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압 / 이병승


한여름 땡볕에 달궈진 옥상 바닥
시원한 물을 뿌려주려고
잠가 둔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거침없이 몸을 흔드는 고무호스
긴 잠에서 깨어난 뱀처럼

시뻘건 각혈과 마른기침이 노래로 변하고
늘어졌던 마음의 통로에 생수의 강이 콸콸 흐른다
사방에 뿌려대는 열정의 땀방울들
더 이상 짓눌린 눈물이 아니다
무지개를 띄워라 거침없이 신나는 춤사위

꼼짝 말라고 두 발로 밟아보지만
그럴수록 더욱 딴딴해지는 오기의 몸짓
그 정도 힘으론 날 못 누르지
흐물흐물 늘어진 생은 끝났다는 저 팽창의 힘
자기를 채워 흘러넘치는 나눔의 통로

채워라, 터질 듯이 채워라
내압이 강하면 강할수록 외려 솟구쳐
신명나게 춤추는 고무호스
건너 집 옥상 화단, 벽에 매달린 넝쿨까지 살리고
스스로 뜨거워 목마른 해도 적신다.

 

 

 

까닭 없이도 끄떡없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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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생의 에너지를 채우는 노래 

성탄절 날 하루 종일 글을 썼다. 눈도 오지 않았고, 전화도 오지 않았다. 간절히 바라는 것들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하던 대로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호흡처럼. 그리고 지쳐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밤 11시30분. 그 사이에 모르는 번호가 찍혀 있었다. 찾아보니 경남신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당선통보 전화를 받을 때까지 밤을 꼬박 샜다.

여기, 하나의 문이 살짝 열렸다.

끝없이 펼쳐진 이 경이로운 길 앞에서 나는 나에게 묻는다. 너에게 글쓰기는 뭐니? 나는 거창하게 대답한다. 신이 새겨 놓은 암호를 푸는 작업이지. 인간 마음의 숨은 지도를 읽는 일이지. 그 아픔의 갈래를 위로하는 따스한 속삭임이지. 해독불가의 세상을 살아갈 힘이지. 그리고 또, 시는 생의 에너지를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노래….

가다가 멈추더라도 간만큼은 내 길이다. 나는 뭍으로 나온 고래. 진정한 자유란 어떤 장벽이 앞을 가로막을지 알 수 없는 곳에서조차 그 호기심만으로도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 자유의지로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래, 갈 수 있을 만큼 가보라고 어깨를 툭툭 쳐준 경남신문사와 두 분 심사위원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시의 스승이신 오철수 선생님과 아모르파티 문우님들, 고맙습니다. 어머니, 인생과 예술을 가르쳐 주신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께도 기쁜 소식을 전한다.





[심사평]  표현 구성 완성도 높아 

본선에는 총 6명의 작품이 올라왔다. 모두 당선작으로 뽑아도 무난한 것들로 예년에 비해 열정과 패기가 돋보여 우리 심사위원들은 안심하였다. 작품 명은 ‘내압’, ‘흰 자전거’, ‘나무 배꼽’, ‘솟대’, ‘내밀한 풍경’, ‘포도넝쿨이 덮은 집’ 등이다. 당선작 선정 기준은 당대적 삶에 대한 인식과 시를 통한 가치 실현의 의지, 그리고 이를 얼마만큼 형상적으로 완성해 내는가의 문학적 완성도에 두었다. 

먼저 ‘포도넝쿨이 덮은 집’은 우선 감성이 풍부하고 동시대인의 심리적 고뇌를 상징적으로 잘 형상화하고 있는 점이 주목되었으나, 생의 고뇌와 포도넝쿨이 덮은 집의 연관성이 부족하고, 일정 부분 상상력에서의 비약 부분이 어색한 구조로 짜여져 있음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내밀한 풍경’은 어머니를 시적 제재로 하여 실존적 생의 의미를 형상적으로 탐색한 것이 돋보인 작품이었으나, 너무 수사적 표현에 치중한 점과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일부 설명적 진술이 눈에 거슬린 대목으로 평가되었다. ‘솟대’는 상상력의 자유로움과 시적 형상성이 뛰어난 점이 높이 평가되었으나, 너무 표현의 수사에 치우쳐 의미 형성이 모호하고 당대적 삶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나무 배꼽’은 복숭아 나무와 할머니의 추억이 연관돼 아주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시적 풍부성과 완성도를 갖추었다고 평가되었으나, 그 시적 내용의 전개가 너무 개인적인 차원으로 흐른 점, 표현의 묘미를 살리기 위한 수사가 오히려 시적 의미 형성을 방해한 점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었다. 

남은 ‘흰 자전거’와 ‘내압’이 최종 두 작품으로 남아 심사위원들의 결정을 어렵게 했다. 두 작품 모두 만만치 않은 시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당대적 삶에 대한 인식과 시를 통한 생의 의미를 밝히려는 의지가 역력히 보였기 때문이다. 상당한 논의 끝에 우리는 ‘내압’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흰 자전거’가 감성적이고 상상력도 풍부하고 현실적 삶의 고난도 잘 반영하고 있지만 시적 전개에서 아직까지 형상적 포착보다 설명적 어조가 눈에 띄는 것이 흠결로 작용했다. 이에 비해 ‘내압’은 우선 생의 의미와 사물의 본질에 대한 탐색이 상당한 깊이를 가지고 있고, 이것이 또 당시대적 삶의 의미로 환기되도록 하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시적 표현과 구성 면에서 상당한 수련을 느끼게 하는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는 점이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게 하였다. 당선을 축하한다. 더욱 정진하여 훌륭한 시인이 되길 기대한다.

 

- 심사위원 : 신달자·김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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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 / 김일호

 

 

대추가 댕강거린다

부르터 울기 전에 내려놓으라는 말씀

사다리에 올라 볼이 탱탱한 편종에다

탐스런 눈을 맞춘다

햇살 살점에다 손을 대자

여름 내내 소리를 키운 종루가 먼저 부르르 떤다

뙤약볕과 별들이 촘촘히 박아 넣은

경전을 하나씩 받아 적으며

휘어진 하늘, 초록 귀때기 한 가지를 잡아 당겨

아직 새파란 소리 한 번

울려 보려는데

종일 텅 빈 가을을 들고 있던 바지랑대

들고 나오신, 가는 귀 먹은 어머니

너 그래 갖고 무슨 소린들 들리겠냐는 듯

꼬부라진 허리 곧추 세워 타종을 한다

한꺼번에 쏟아져 골목 흥건한

어머니 귀 뚫고 나온 저 소리

소쿠리 가득 담겨 들어간 대추

처마 끝 물구나무 서서

풍경 소리 댕강댕강

한 철을 날아간다

 

 

 

 

구름을 배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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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부지러한 날갯짓으로 보답

 

새의 꼬리가 까맣게 점이 될 때까지 바라봤다. 바람이 데리고 가는 낙엽의 신발 끄는 소리에 귀를 세우고 잠 못 드는 밤이 오랜 습관이 되었다.

 

그랬다. 무엇이랄 것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생각에 골몰했던 나에게 답을 건네준 것은 쉰이 넘어서였다.

 

새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바람이 감나무 잎에 무엇을 쓰고 가는지 누군가 가르쳐 주었고 서투르게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새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미칠 때쯤 새와 한 몸이 되지 못해 괴로워하는 내 미흡한 시에 낙점을 찍어주신 심사위원님께 엎드려 감사드린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시로 보답하라는 말씀으로 새기고 부지런히 날갯짓을 하겠다는 다짐을 드린다. 까막눈이었던 내게 시라는 영혼의 씨앗을 심어주신 이근식 선생님, 내가 나아가야 할 시의 지평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손목 잡고 이끌어 주시는 경주대학교 손진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항상 곁에서 격려하며 함께 공부하고 있는 아내 김광희 시인과 시가 뭔지는 모르지만 노환에 힘드신 부모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어 우선 좋다. 또 자기 일인 듯 기뻐해주며 함께 시밭을 일궈온 문우들 모두와 기쁨을 같이하고 싶다.

 

 

 

 

[심사평] 청각적 은유 산뜻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등단 제도인 신춘문예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숱한 문학 지망생들의 땀과 열정이 배어 있는 소중한 원고를 정성을 들여가면서 하나씩 검토했다.

 

최종심에 올려진 작품은 모두 다섯 편이었다. ‘순장 소년’과 ‘하포· 1’은 우선 독특한 글감이어서 눈길이 갔다. 호흡이나 짜임새, 또한 조사법(措辭法)에 있어서도 안정감과 신뢰를 담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의 흐름이 느리고, 표현의 긴장감은 부족하고, 사유의 내적 깊이도 적어 보였다. ‘입관’은 삶과 죽음의 화해로운 인간미를 다사롭게 제시하고 있지만 귀하지 아니한 시적 정조 속에 매몰되어 있는 감이 있다. 기저가 되는 듯한 정서의 세계인 ‘그리움’이란 시어가 세 차례 되풀이되고 있는 것도 그것을 도리어 희석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물 위의 지은 집’과 ‘대추나무’가 남았다. ‘물 위의 지은 집’은 작자의 역량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호흡의 길고 짧음을 서로 어울리게 잘 다루고 있다. 뭔가 새로움을 환기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행간에 감추어진 감수성도 있다. 그러나 모호하거나 진부한 어휘 선택, 눈을 거슬리게 하는 외래어들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더욱이 마지막 행이 결정적인 결함이라는 데 심사위원 모두가 동의했다.

 

‘대추나무’는 수작의 절대 조건에 적합하다기보다 결함이 비교적 적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몇몇의 사소한 결함을 수정한다면 신춘문예 당선시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시의 공력(功力)을 짐작케 하는 긴축적인 느낌도 당선작으로 미는 데 일조했다. 대추를 편종으로 은유한 것은 작위적인 것의 소산인 동시에, 사물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제시한 청각적인 은유의 가능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이 당선작이 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귀결이다. 당선자의 정진과 건필을 빌면서, 더 혹독한 자기 수련이 있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 이광석(시인)·박태일(시인·경남대 교수)·송희복(평론가·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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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밖에는 봄 / 유행두 

 

 

지구 끝에서 아내가 붕어빵을 굽고 있다. 파닥거리는 지느러미에서 비늘이 떨어진다. 지구를 한참이나 돌다 온 듯한. 퇴계 선생 지폐 위에 가볍게 흩어진다. 산달 아내. 배가 부푼다.

중환자실. 어머니는 링거병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한 알씩 세고 계신다. 끼니 때마다 
가는 호스 타고 내려가는 미음. 포르말린 먼지 반짝. 휠체어 힐끔 훔쳐보신다.

-저녁마다 어둠이 먼저 눕던 달셋방. 도란도란 웃음을 젓가락질하던 밥상에서 
어머니와 아내가 번갈아 등을 토닥거리고

몇 개월 전 신문처럼 할 일 잃고 누운 내 옆에서 아내는 낮은 기도 소리를 쥐어준다. 
가끔씩 지구는 벌떡벌떡 몸을 세워 링거병을 흔들고 아내를 병실 바닥까지 내려 앉히지만 아내는 언제나 가지런히 웃는다.

모둠발을 해 본다. 날개가 돋은 휠체어. 
휠체어가 대기권을 향해 바퀴를 힘차게 굴린다. 지구가 뒤로 밀리고 있다.

 

 

 

 

태양의 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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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못잊을 삶의 소리들

 

파란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의 마을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검은 눈동자 때문에 어릴 적부터 많은 놀림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마을 사람들처럼. 자기도 파란 눈동자를 가지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청년이 될 때까지도 그의 눈동자 색깔은 파란 눈동자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청년이 된 그가 해외에 선교사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 때서야 청년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왜 자기에게 검은 눈동자를 주셨는지를. 그가 선교사로 간 지역 사람들의 눈동자가 모두 검은 눈동자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 길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지만. 이 가까운 곳에 먼 길을 둘러 돌아 왔습니다. 둘러오면서 들었던 삶의 많은 소리들. 좁은 길모퉁이에서 보았던 모난 돌들.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에 밟혀 쓰러졌어도 생명을 잃지 않고 숨 쉬고 있던 풀들. 잊지 않겠습니다.

 

잘못하고 살았던 일이 많습니다. 生死의 경계를 넘나드는 어머님을 간호하느라 고생하시는 형님께 자주 찾아뵙지 못한 핑계거리가 생겼습니다. 나를 비켜가지 않는 가난한 밥상의 밥을 맛있게 먹어준 가족들 고맙습니다. 좋은 시를 건지기 위해 밤새도록 새벽을 낚아 올리던 시산맥 영남지회 분들.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난시 동인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묵묵하게 믿어주신 이병관 선생님 고맙습니다. 경남대학교 박태일 교수님 존경합니다. 천장에서 앵앵거리는 파리에게 푸념이나 하고 있을 저에게 손을 잡아 일으켜주신 심사위원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참 게으른 한 해를 보냈습니다. 내년에는 올해처럼 살지 않겠습니다.

 

 

 

 

[심사평] 이미지 이끄는 힘 탁월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지동설’ ‘서풍 불던 날’ ‘라디오 여왕’ ‘접시 시계를 타고 있는 소설가 P씨’ ‘석포역에서’ 그리고 ‘문 밖에는 봄’이었다.

 

그중 ‘지동설’은 도시를 사막으로 보는 구상이 낯익은 것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잃었고. ‘석포역에서’는 안정된 화술에도 불구하고 감추고 있는 뜻이 약하다는 점이 드러나 있고. ‘라디오 여왕’은 포즈를 취하는 화자의 입장이 깊이를 드러내지 못했고. ‘서풍 불던 날’은 서술적인 리듬에서 얻어질 수 있는 어떤 원형적인 이미지가 살아나지 못 했다.

 

그렇게 제외하고 ‘문 밖에는 봄’이 남게 되었다.


이 시는 이미지가 투명하고 할 말이 뚜렸하고 구조가 대단하다. 
아내가 빵을 굽고.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누워있고. ‘나’는 실직해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화목한 가정으로 거듭나 있다.


테마는 아주 상식적이지만 이야기와 이미지를 끌고가는 솜씨가 섬세하면서 탄력이 있다. 끝 연에서 ‘날개가 돋은 휠체어’에 화자의 의도가 집약되어 있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문 밖에는 봄’을 당선작으로 하는 데 합의했다. 당선자는 이 밖에도 그의 능력이 일회성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대성을 바란다.

 

- 심사위원 : 이광석. 강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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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의 교차로 / 한인숙


상여를 보낸다
초겨울. 언 슬픔이 기억의 행렬을 짓고 있다
한 세월 이정표도 없는 길
소리꾼의 요령소리가 산역으로 향하는 몇 구비 능선을 넘어서고
흑백의 한 생이 울음에 섞인다
상여꾼의 후렴소리를 더듬던 누군가
알 수 없는 기억에 찔린 듯 추위 한 자락을 움켜쥐고
한동안은 눈물도 상처도 없는 길이
북망의 깊이를 더듬적거린다

슬픔의 실마리가 풀리고 있다
노잣돈을 뒤척이는 햇빛도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도
교차로를 통과시키고서야 안식의 길로 접어들 것이고
인연들 또한 죽음을 통과하고서야 눈물의 깊이를 알 것이다

졸고 있던 새 한마리
꽃상여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 움찔. 날아오른다

 

 

 

 

자작나무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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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행간 속속 파고든 그리움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다. 함박눈 속을 한참이고 걸었다. 나를 끌고 가는 상념을 따라. 구름의 방향을 따라 내 안 웃자란 풍경들을 잘라냈다.

 

방금 놓친 생각들 저쪽에서 새 한 마리 낮게 날아올랐다. 시아버님의 상여를 따라나서는 길. 예고 없던 마지막 축제가 진행되었고 한 삶이 죽음에 이르고서야 가벼워지는 길임을….

 

아버님의 마지막 길을 시로 풀어내면서 많은 가슴앓이를 했다. 내 안의 아픔들과 못내 삭여졌을 마음들이 시의 행간과 행간 속속들이 그리움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마음속에 집 하나를 마련해놓고 시로 채우려 한다. 현대시가 갖춰야 할 덕목들을 늘 일깨워주시는 박경원 선생님과 함께 시의 주춧돌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리려 한다.

 

아직은 서툰 대패질과 못질이 문학의 꽃으로 피어나도록 갈고 다듬을 것이다. 주부문학이 아닌 현대문학의 수사들을 움켜쥐고 지붕도 헤이고 문패도 달면서 서두르지 않는 참 문학의 길을 가고 싶다.

 

이 길에 늘 내 편이 되어준 사랑하는 남편과 가족들 그리고 시원문학. 차령문학 동인들과 문학을 사랑하는 주변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박경원 선생님의 선비정신과 올곧은 문학인으로서의 모습을 존경합니다. 제게 집짓기의 터전을 마련해주신 경남신문과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콩나물은 헤비메탈을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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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죽음 통해 생의 의미 관조

오늘날의 사회는 삶의 효용성을 측량하는 잣대에 의해 시가 거의 강박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제목의 표현이라면.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나 할까? 이 같은 사회에서 그래도 아직 시인지망생이 많다는 행복한 아이러니는 한 해의 첫날 지상(紙上)에 장식되는 신춘 등용문을 통해 실로 신선하게 확인되는 것이다. 우리 심사위원은 낱낱의 애착과 열정이 그대로 배어 있는 수많은 작품을 읽은 후 압축된 십수 편의 시를 최종 결선에 올렸다.

‘홍시’. ‘어머니. 사과를 드릴게요’ 등의 시를 보낸 분의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생활 감정의 심연에 숨어있는 미시 담론의 소중한 경험들을 제재로 유연한 흐름의 시상(詩想)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뚜렷한 장점이었다. 그러나 작품 수준이 전반적으로 고르면서도 돌출성이 없어 아쉬웠다. ‘망치 소리를 기다리며’는 수작의 조건을 갖추었으면서도 다소간 마무리가 덜 된 듯한. 완성도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어 당선작으로 강하게 밀 수가 없었다. ‘버스정류장’ 등의 시를 보낸 분의 작품 기법은 영상 이미지를 실험적으로 재현하는 것이어서 참신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지복(至福)을 기약하기에는 시기상조인 듯하다. 그밖에도 ‘내(內)동 629번지’와 ‘손가락이 그리운 사람들’ 등이 당선작으로 논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십이월의 교차로’는 죽음의 세계가 비추어낸 일상의 단면을 객관적인 거리에서 담담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작품이다. “인연들 또한 죽음을 통과시키고서야 눈물의 깊이를 알 것이다.” 이 잠언적인 표현에서 보듯이. 흑과 백. 기억과 망각. 이승과 저승. 끝내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경계에서 생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그 눈길은 관조의 시선이기도 하다.

시는 대중적으로 읽힐 수 있으면서 내용이 분명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 언어의 감각만으로 좋은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의 은밀한 세계에 칩거하기보다는. 시란. 공명과 반향이 아니어선 안된다. 이러저러한 맥락에서 ‘십이월의 교차로’를 주저없이 선(選)하는 데. 우리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당선자의 건필과 문운을 기원한다.

 

- 심사위원 : 엄국현, 송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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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가 있는 오후 / 남화정

 

 

아이들을 하교시킨 학교 혼자 풍향계를 돌린다 빨갛고 하얀 네 개의 숟가락이 바람을 퍼먹으며 잘도 돈다 먹성으로 치면야 담장 너머 까치들만 하리 감홍시 진즉 다 털어먹고서 양푼만한 알전구에 들러붙어 퍼벅 입이 터지는 뜨거운 밥숟가락질의 새들, 너흰 알는지 多産의 복 하나는 타고났던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굴뚝 아득히 탯줄 묻어 지킨 고향 재 되어 풀풀 흩날릴 위기를

 

이곳은 채소 하나, 나무 한 그루 맘대로 캘 수 없는 택지개발시범지구, 초겨울 볕을 등마다 지고 아, 모포처럼 비닐을 펴 유골을 줍던 사내들 어떻게 되었을까 풍향계 너머 기와집들 감나무들, 아직은 파헤쳐지지 않는 들녘과 학교만이 유적이 되어 떠도는, 해체된 숲속에서 붉게 살갗이 패인 산들이 피를 쏟고 있다 잘가라 새여 나무여 낼 아침도 재재거리며 교문 들어설 삼천 아우들 위해 풍향계, 바람 한 하늘 남겨두는 것 잊지 않는다

 

 

 

 

[당선소감] 눈감는 순간까지 시 경작

 

당선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쁨을 올려드렸다. 한낱 옹동그라지고 가시투성이 사막의 싯딤나무가 법궤가 되었듯, 그분은 파산된 내 영혼만 보수시키시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내가 되어 사는 시들을 빗고 깎고 계셨기에.

 

()라는 병을 앓은지 십수 년. 정말 육신에도 고치지 못할 병 하나 와서 생을 넘어뜨렸지만 절망할 수 없었다. 시가 있었기에 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병마저 고마웠던 지난가을이었다. 할머니가, 고모가, 몸 같던 벗이 한 계절 건너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갔지만 울 수 없었다. 뱃속 아득히서 끄덕끄덕 몸 뒤채는 유리뱀, 산이고 강이고 유리뱀 따라 다만 걷고 있으면 되었다.

 

사람을 넘어 돌밭, 나무, , 벌레, 까마귀, , 구름...

 

시가 된 내 모든 벗들아, 고맙단다. 내 슬픔의 근원인 아버지, 당신이 흙을 놓지 않듯 눈 감는 순간까지 저도 제 시들을 경작하고 있겠습니다. 이른 아침 전봇대만큼 키가 큰 짐보퉁이를 이고 시장으로 향하는 어머니, 당신이 바로 시()입니다. 시와 삶의 경계에서 허덕일 때, 뜨거운 채찍 아끼지 않으셨던 여러 선생님, 문우들 감사합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참아주고 견뎌준 남편과 딸, 피붙이들과 이 기쁨 함께 하며, 졸시 선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경남신문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맛깔스런 시어... 단단한 미덕 갖춰

 

공단세탁소·삼월, 튀밥 같은·제비꽃·늦은 점심·풍경·풍향계가 있는 오후, 모두 여섯 분의 여섯 편이 뽑는 이들 손에 마지막으로 남았다.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어도 될만했다. 시를 끌어올리는 눈길이나 다듬어낸 솜씨에서 남다른 노력의 흔적이 역력하다.

 

공단세탁소는 도시 근교의 세탁소 풍경을 빌려 고단한 삶을 위한 긴 헌사를 마련했다. 시를 끌어가는 집중력은 볼 만했으나, 발상법에서는 새로움이 덜했다. 게다가 시인의 의도가 너무 시의 앞쪽으로 드러나 버렸다.

 

덕지덕지 파리똥처럼/배설된 꿈이라는 첫머리부터 마무리까지 덕지덕지 올라붙어 있는 군더더기를 가지치기 할 수 있는 한 단계 높은 통어력이 아쉬웠다.

 

삼월, 튀밥 같은삼월의 속살이/소란스럽게 터지고있는 아파트 담장 풍경에 대한 시인의 따뜻한 눈길이 잘 살아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 발상의 즐거움을 오롯이 읽는이의 즐거움으로 되살려주는 집중된 힘이 모자랐다.

 

제비꽃도 아쉬움이 남기는 마찬가지다. 버려진 시골집 섬돌을 안고 핀 제비꽃에 대한 상상적 긴장이 시 뒤쪽으로 가면서 풀려버렸다. 마음은 기다림 짙은 잉크빛과 같이 서툰 시줄들 탓이다.

 

이들에 견주어 늦은 점심·풍경·풍향계가 있는 오후는 소품에 가까운 간결함을 미덕으로 지녔다. 군더더기가 적은 만큼 시에 손쉽게 다가서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 없이 그 나름의 진지한 집중력이 돋보였다. 풍경이 맨 먼저 당선권에서 밀려났다. 시줄을 더 가다듬어 거듭되고 있는 꾸밈말을 잘 펴 내렸더라면 아름다운 한 편의 수작을 얻을 뻔했다.

 

늦은 점심풍향계가 있는 오후를 두고 마지막으로 고심했다. 풍향계가 있는 오후에 견주어 늦은 점심이 더 젊고 참신한 쪽이다. 늦은 점심을 둘러앉아 먹는가난한 이웃에 대한 눈길이 집요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라는 두 낱말의 변주로 한 편의 시를 끌고 나간 솜씨는 쉬 얻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거적자리에 둘러앉은 늦은 점심은 둘러앉은 사람들을 마구 퍼먹는다라는 마지막 시줄의 언어 전도도 맛깔스럽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말의 재미를 넘어서는 통찰력이 모자랐다. 감동이 덜할 수밖에 없다.

 

풍향계가 있는 오후늦은 점심에 견주어 낡은 옷을 입고 있는 듯 싶다. 그러나 그 속은 보다 구체적이고 단단한 미덕을 갖추었다. 택지개발시범지구로 대표되는 삶에 대한 눈길이 섬세하다. 오랜 시력을 무리 없이 녹여냈다. 장차 좋은 시인이 될 재목임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는 작품인 셈이다. 따라서 풍향계가 있는 오후를 당선작으로 민다. 부디 겉멋에 빠지지 말고 삶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을 힘껏 키워 나가기 바란다.

 

- 심사위원 : 박태일(시인·경남대 교수), 유재천(문학평론가·경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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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위의 탑 / 이영자

 


달동네 언덕바지 구멍가게에서 LG25시 편의점까지
떡볶기집 지나 맥도널드 빠리바케트 건너 뛰고 붕어빵집까지
딸아이는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중입니다

자, 지금
어디론가 내처 달리는 당신 호주머니 속의 짤랑거림
그것은 동전마다 아름아름 굴리고 온 바퀴들의 볼멘 혓바닥
바퀴 사이로 휘감겼던 눈빛들이
뜨겁게 조였다 헐거워지는 소리 잠겨 있지요

울퉁불퉁 바퀴가 되기 전
한 잎의 해였고 한 잎의 달이었고
해와 달이 구름에게 먹힌 날의 막 구워낸 한 입 빵이었던
동전의 길

빵을 사먹을까? 돼지저금통에 넣을까?
고민에 빠진 딸아이와 뜨거운 이마 맞대고
자, 이제 날아올라 볼까요

까마득히
어머니 먹지 않고 입지 않고 쌓아올린 동전 위의 탑까지
팔랑팔랑

날아올라 가만히 손바닥 펴면
매질처럼 따가운 햇살의 가지 위로 벙긋벙긋 피어오른
딸아이 얼굴 한 잎 붕어빵 한 입

눈앞이 아찔합니다
더 이상 굴러 떨어질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당선소감] 시를 쓰기 위해 나는 감자가 된다 

 

나는 식인종은 싫다 시를 쓰기 위해 나는, 감자를 먹을 때는 감자가 되고 고구마 먹을 때는 당연히 고구마가 된다. 닭고기 먹을 때는 닭이 되어 닭똥 같은 눈물 뚝뚝 흘리기도 하고, 소고 기 먹을 때는 소가 되어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개고기 먹을 때는 개처럼 컹컹 짖어보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직 사람이 아니다.내가 사람이 되려면 사람을 먹어본 적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 전생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때문에 나는 사람 같은 시를 쓸 수 없으며 설령 쓴다고 하더라도 시라고 인정해 줄 사람이 없을 건 뻔하다. 결국 나는 시를 포기하거나 사람을 포기하거나 둘중 한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것보단 사람 하나쯤을 먹어보는게 쉽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젯밤이었다.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사실은 어젯밤부터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굴 희생양으로 삼아야 할지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려보았고, 전화번호 수첩을 앞에 놓고 고민에 빠지기도 했고, 어둔 거리로 나서 사방을 두리번 거려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경남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시가 아니라 사람에게 쫓겨 짐승이 보낸 작품인데도 읽어낼줄 아는 분들이 계셨나보다. 이건 무슨 소식인가? 내가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증거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도대체 누구인가. 내가 잡아먹은 사람은? 당신인가? 무지 아픈 나날들이었다. 





[심사평] 삶의 구체성 위에 생각의 깊이 갖춰 

 

마지막까지 뽑는이들 손에 남은 작품은 모두 다섯 사람이 내놓은 여섯 편이었다.「내 마음의 호수」, 「휴식 같은 풍경」, 「고친다」, 「하얀 바다」 그리고 「동전 위의 탑」과 「청동 물고기」가 그것이다. 선에 오른 작품은 어느 것 없이 남다른 훈련을 거친 것들이어서 제 나름의 됨됨이가 빛났다. 그러나 신인다운 패기가 모자란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눈에 확 뜨이는 작품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휴식 같은 풍경」, 「고친다」, 「하얀 바다」는 모두 교과서 같은 품격을 지닌 작품이다.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엷다. 특히 「하얀 바다」는 아버지가 겪었을 법한 종이 재생공장의 노동 체험과 그것을 바라보는 자식의 눈길이 잘 갈무리된 작품이어서, 발상이 신선했다.그러나 동어반복에 가까운 말씨는 시의 울림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작품이 지닐 바 완결성에 대한 고심이 앞으로 승패를 가를 것이다.거기에 견주어 「내 마음의 호수」는 오히려 거칠고 들뜬 숨길이 뽑는이들 눈에 들었다.거침없는 시상 전개와 경쾌한 걸음걸이는 다른 이와 뚜렷이 나뉘는 가능성이었다.그러나 『내 마음에 작은 호수가 있어/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사람들 사이로/ 걸어갈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걷지』로 시작되는 첫머리의 긴장이 마무리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작품이 가볍다는 느낌을 밀쳐내기에 시의 뼈대가 약했던 셈이다.「동전 위의 탑」과 「청동 물고기」는 한 사람이 낸 작품이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 작품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흠이 적었다.

「동전 위의 탑」이 나날살이 속에서 겪은 바를 섬세하게 그리고자 한데 골몰한 작품이라면,「청동 물고기」는 매우 급박한 숨길에다 산사 물고기 풍경에서 얻을 수 있는 바 연상의 자유로움을 극대화하고자 한 것이다.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읽기를 가로막는 비약이 눈에 거슬렸다. 자연스레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이 「동전 위의 탑」이었다. 삶의 구체성에 든든하게 뿌리 내린 위에다 생각의 깊이를 갖추고자 한 몸가짐은 이즈음 신인들이 쉬 놓치고 있었던 덕목이다.

『떼굴떼굴』과 같이 다섯 차례에 걸쳐 거듭한 첩어에다 시의 흐름을 내맡겨버린 안이함도 엿보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차 건강한 생활시로 나아갈 자질을 이 작품은 숨기지 않았다. 당선자는 물론, 모든 응모자의 정진을 빈다.

 

- 심사위원 : 양왕용. 박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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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봄날에 대한 변명 / 이영옥


낯익은 집들이 서 있던 자리에
새로운 길이 뚫리고, 누군가 가꾸어 둔
열무밭의 어린 풋것들만
까치발을 들고 봄볕을 쬐고 있다
지붕은 두터운 먼지를 눌러 쓰고
지붕아래 사는 사람들은
이제 서로의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떠난 자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알고있는
오래된 우물만 스스로 제 수위를 줄여 나갔다
붉은 페인트로 철거 날짜가 적힌
금간 담벼락으로 메마른 슬픔이 타고 오르면
기억의 일부가 빠져 나가버린 이 골목에는
먼지 앉은 저녁 햇살이 낮게 지나간다
넓혀진 길의 폭만큼
삶의 자리를 양보해 주었지만
포크레인은 무르익기 시작한 봄을
몇 시간만에 잘게 부수어 버렸다
지붕 위에 혼자 남아있던 검은 얼굴의 폐타이어가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을 공연히 헛 돌리고
타워 크레인에 걸려있던 햇살이
누구의 집이었던
쓸쓸한 마당 한 귀퉁이에 툭 떨어지면
윗채가 뜯긴 자리에
무성한 푸성귀처럼 어둠이 자라나고
등뒤에서는 해가 지는지
신도시에 서있는
건물 유리창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사라진 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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