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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들 / 이성진

 

밤은 우주의 성격이다

 

누나들이 손을 잡고 걸어온다

학교 앞 문방구 창문 불이 꺼지고

백색 줄무늬 검은 나무들의 손을 잡고

바람 부는 방향으로 기린이 되어 걸어가면

남서풍이 북동향에서 불어온다

이것이 언덕의 학교로 들어가는 비밀번호

 

바람 부는 언덕을 따라

학교 운동장에서 폭죽놀이 하는 누나들

폭죽을 다 써버리면 누나들은 긴 머리카락을 잘라 창()을 만들고

운동장을 휘감은 검은 공중을 향해 던져버리면

하늘이 하얗게 찢어지고

누나들의 수줍은 보조개도 하얗게 탈색된다

운동장은 흑과 백만 남으면

누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우는 법을

새들에게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곳은 언덕의 학교 아래

이제 문방구도 사라지고 아무도 걷지 않는 골목

누나들은 검은색 가터벨트를 입고

가슴을 내놓으며 다리를 꼬고 앉아있다

동그랗게 말아 쥔 왼손의 동공 안에서 옛 애인이

웃고 울고 흑과 백이 떠오르다 가라앉는다

이 광경을 관음하는 문신사(文身士)

귀까지 찢어진 입을 씰룩거리며

전자회로를 바늘로 촘촘히 쪼고 신음소리가 완성되면

누나들의 늑골 속에 삽입된다 그러면

방 안의 절벽에서 밀봉됐던 우는 새들이 폐수로 흘러나오고

누나들의 눈빛은 반짝이지 않는다

혓바닥 속에 하나씩 박힌 피어싱 위로 있는 힘껏

목구멍을 넘어오는 마지막 계절풍을 불어보지만

난쟁이들은 기다렸다가 망치로 모조리 박살낸다

 

미처 흑 혹은 백이 되지 못하고

회색으로 살아버린 누나 K가 주변을 살핀다

라디오를 틀고 염산 같은 햇볕을 멀리서 쳐다보며

응달에 몸을 말리다가 누나의 머리채는

곧 근육 소년단에게 부여잡히고

문신사와 난쟁이들이 킥킥대며 구경한다

라디오와 영화 음악과 디제이와 스피커가

사각형의 다른 꼭짓점에 서서 보고만 있다

세상은 흑과 백인 줄 알았다며 누나 K는 울어보지만

절벽 쪽으로 질질 끌려가고

바위에 묶여 아래로 던져진다

 

누나 K가 즐겨 듣던 라디오가 까르르 소리를 내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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