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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뿌리의 강 / 김영선

 

 

먼 벌판으로 우리가 맨 처음 소망의 발을 내리던 생명의 자리, 그 나직한 지맥을 더듬어 이끼가 돋는 땅은 언제나 깊이 고여 있는 샘물, 크고 작은 분지마다 물비늘 같은 노을이 번진다.

 

푸른 대지의 우유빛 젖가슴에서 한 동이 길어 올리는 청아한 물줄기, 한 줄 돌돌돌 흐르는 땅에서 긴 동면의 몸을 풀고 씨앗이 움튼다. 비옥한 토지마다 우리들 내면의 넉넉한 꿈을 심으면서 작은, 아주 작은 염색체가 오밀조밀 모여 잠자는 강의 물살을 깨운다.

 

태양의 무리진 언덕에는 콸콸한 혈관의 소리가 들린다. 간밤에 내린 이슬에 축축이 젖은 지반에서 뜨거운 땀샘이 솟는다. 한 자락 미풍에 어린 새싹들이 파릇파릇 발돋움하며 끈끈한 강의 줄기를 이룬다.

 

후둑 후두둑 여름 소나기에 젖은 발을 씻으며 부리가 작은 새들이 지도의 능선을 건너고 한 번도 범람하지 않는 강의 허리를 보듬고 하나의 거대한 탑을 세워가는 나무여.

 

계절의 굵은 광맥을 더듬어 하얗게 무서리가 내릴 때까지 잎새의 마른 옷고름을 내리고 한 겹씩 그리움의 껍질이 쌓여갈 때 밤마다 깊은 예감으로 떠오르는 별들의 운동, 그 점성술의 대지는 콸콸할 생명의 강을 다스린다.

 

씨앗이 날린다. 먼 벌판으로 우리가 맨 처음 소망의 발을 옮기던 생명의 자리, 그 근원의 바닥을 찾아 깊은 세월의 강이 고인다. 먼 기다림의 끝까지 한 줌 흙이 되어 파릇파릇 돋아날 때까지 발목 깊이 내려앉은 대지의 꿈이여. 우리들 생명의 질긴 뿌리여.

 

아픈 내면의 외침으로 시린 나이테를 감으며 벌목되지 않는 뿌리는 먼 소망의 발길은 다시 푸른 새벽을 꿈꾸며 크고 작은 분지마다 한 알의 작은 씨앗을 묻는다.

 

 

 

[당선소감] 아버님, 당신께 달려가고 싶습니다

 

바람은 쉬고 있다. 매듭의 손가락으로 얼마만큼 뜨겁게 여름을 만질 수 있는가. 내 스스로의 열매를 가꾸기 위해 단 한 모금의 피를, 아니 단 하나의 언어를 밤을 세워 다듬고 있다. 이 여름의 끝에서 더욱 굵은 알맹이를 지우고 있는 하남벌에서

 

당선 소식을 들으며 맨 먼저 아버님 당신께 달려가고 싶습니다. 언제나 늘 걱정하시는 막내둥이가 꿈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대견해 보일 것입니다. 아버님 당신이 퇴원하신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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