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어머니 / 전효숙
어머니는 이불을 깁는다
기억의 일기
실꾸러미를 바늘에 끼우고
밤의 뜨거운 바람을
마른 나무 가지처럼 식힌다
맨 가슴 밑바닥으로
뚝뚝 시간은 지고
화롯가에 자리한
어머니의 손은
말없는 대화
새벽의 바람을 깁는다
어머니의 손끝에
내 하얀 마음이 내려앉고
헝겊으로 이어지는
바람소리
어머니
내게도 실과 바늘을 주세요
어머니의 옷깃에
얼룩진 설움을 깁겠어요
나는
어머니의 주름살로
빛의 헝겊을 만든
한새벽
먼 먼 향수를 깁는다
[장려상] 노동기 / 서길남
시나브로 어둠이 풀리는 새벽
조매로운 잠길에서 깨어나
커튼을 거두고 창문을 연다
굵은 손마디를 풀며
싱싱한 바람을 한껏 껴안고
심호흡을 한다
노동을 준비하는 새벽
땅도, 하늘도
후우후 심호흡을 한다
- 어머니, 저 동녁의 밝아옴도
이 땅의 남루한 가난을 벗기는
우리의 작업과같은 의미일까요-
살아있음을 묵묵히 노동으로 확인하고
살아있음을 묵묵히 노동으로 빛내며
삶을 찬란히 이끌어가는 노동자들
여명을 등에 업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으며
일터로 간다
회색빛 작업복의 푸르른 꿈도
날개를 편다
- 어머니, 황토밭에, 저 은빛 강물에
눈부시게 쏟아지던 핵살이
노동하는 우리들을 어루만져 줍니다-
창문을 열듯 상쾌하게
시작하는 우리의 작업
목수는 싱싱한 대패날로 삶을 다듬고
여공은 희망의 실을 잇고
정비공은 기계를 고치고
미싱공은 돌돌돌 삶을 튼튼하게 박고
...... 모두들
쉬지않고
흐르는 시냇물처럼
끝없이 일어난 의욕으로 작업을 한다
- 어머니, 늘 보드란 흙에 쏟았던
어머님의 그 정성을 본받아
묵묵히 일하며 보람을 느낍니다-
비록 가난하나
마음은 가난하지 않은 노동자
월세방 알전구 아래서 가족과 함께
빛나는 사랑의 실로 정을 수 놓는다
찌든 생활을 한탄하지 않고
견디며 살아온 아내의 손을
깊은 밤, 꼬옥 잡아주며
희망의 내일을 이야기 한다
- 어머니, 보드란 흙에 씨앗을 묻고
싹을 틔워 열매를 맺어온 어머니
우리의 노동도 머지않아 열매를 맺겠지요-
일상을 밝게 채색해가는 노동자여!
쓰러지고 쓰러져도
결코 삶의 중량을 비우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노동자여,
회색 작업복 속의 푸르른
푸르른 꿈이 내래를 편다
짙은 어둠도 걷히고
새벽의 문이 활짝 열린다
노동자여!
[장려상] 생의 감각 / 이태근
하루씩
하루만큼씩
나는 생을 터득하였다
아침마다 날 팽개쳐 달아난 세월을 쫓아
하루종일 허둥대었다
우연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 필연을 가장한
나의 삶은 양파껍질 마냥 겹겹이
포개져 있었다. 터득한 생만큼씩
나에게 익숙했던 무지는 한꺼풀씩
벗겨져 나가고 또다른 생면부지의
껍질이 생겨났다
나는 그 껍질을 일러
필연의 껍질이라 했고
그만한 예우로 일상생활 속에서
가장 큰 비중을 허락했다
보이지 않는 세월은
보이지 않는 만큼씩 흘렀고
생의 무게는 시계축 만큼씩 불어났다
그 무게로 인한 자신의 필연은
가파르지 않는 오르막 길에서
노상 헐떡 거렸다
흘러버린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필연과 ㅇ연의 곡절은 늘 이러하였다
누구 누구를 위해
생을 불어 넣을 수 없듯
어차피 생은 혼자 였었다
[장려상] 겨울밤 강가에서 / 이현희
이 높은 산에 산이 없읍니다
침묵으로 엉덩이 깔고 앉은 사람
천애의 낭떠러질 낚아 올리고
여기저기 불현듯 일어서서
묵직한 어둠만 들이대며
뼈와 뼈를 부비며는
아우성 소리 강물되어 일어섭니다
이 골짜기에달빛이 젖어 들지 않읍니다
하나 둘씩 겁많은 산새들
마실로 피신하고
무슨 이윤지 돌아 오지 않읍니다
길은 풀어 졌다간 묶이고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죽이는 그내 쇠고랑에 잡혀
아우성 칩니다
이 숲엔 아무도 보이지 않읍니다
분명히 사람의 숨소리만 들리고
어디에서나 보이던 들쥐가
어디에서나 앉아
하지만 귀머거리 된 나무의 그림자를
툭툭 건들어 보다가
가혹하게 얼어 붙어 버렸나 봅니다
다시 이 높은 산에 바람이 불고
침묵으로 엉덩이 깔고 앉은 사람
이제,
새벽을 낚아 올립니다
적막한 산야에서
[장려상] 환상의 오후 / 양은희
고향으로 돌아온 날 저녁
밤하늘에 깔린 엷은 안개에 달빛은 눈뜨고
움직임이 없는 숲은 저녁빛을 받으며
그림자를 물위에 던진 채
강물 위에는 잔물결 하나 일지 않았다
붉은 빛으로 물들은 하늘등 아래엔
오랫동안 들어온 동화가 황폐한 세상에서 그림지를 떨어뜨리고
나는 날마다 나의 덮개 안에서 지친 채로
마음의 평화도 없이 생명과 영혼만을 잡았다
하찮은 모든 것들이 무한한 사랑의 빛을 막고 있었고
하늘은 텅빈 채 이상한 다섯 개의 개울이 흐르고
만월이 생명없는 강의 고독을 뚫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었던 어리석음을 깨달은 지금
강둑으로 온통 외로움이 나리고 있었고
치자꽃 한아름 안은 여자의 마음은
위는 끝없이 푸르고 아래는 끝없이 하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