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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넝쿨 손 / 이병룡


아내가 베란다에 심은

콩 넝쿨이

하루가 다르게 치오르다가

지지대의 끄트머리

허공에서 머뭇거린다

조금 굽어져요

휘청거리지 말아요

몸을 더 비비꼬아야 해요

삶이 채근하는 대로 올라온 끝점이

아찔한 낭떠러지다

실직의 단호한 명제앞에 멈춘 것이다

낭떠러지에 우두커니 걸터앉아

넝쿨 밑에 그려진 궤적을 내려다본다

넝쿵 아래는 아직도 소란스럽고

지붕 위에 다다른 햇볕은 뜨겁다

콩 터지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고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의 주인공들은

연거푸 머리카락을 쓸어내린다

아내의 씨줄 넝쿨손이

허공을 더듬고 있는 내 날줄을 엮어

넝쿨 사이사이의 간극을 메워준다

한치 앞도 못보고 제 안으로만

구부러져 가는 내 접힌 손을 끌어올린다

콩 줄기가 한 물결의 연리지로 솟아

가슴 넓은 콩잎을 널찍널찍하게 피우고 있다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절벽에서

허공의 틀을 헤쳐 나가는 저 가냘픈 넝쿨 손

삼십 년 전, 내게로 오려고

망설임 없이 봇짐을 싸던 바로 그 손이다







[우수상] 바느질 / 지연구


침을 묻혀 실 끝을 돌돌 말아 바늘귀에 넣느라

한 쪽 눈을 찡그려 가며

아내가 아이의 바지를 꿰매고 있다

침침한 눈을 비벼 가며 늦은 밤 까지

찢어진 바지와 함께 아내가 바느질 하는 건

여기저기 해지고 구멍 난 우리 집 살림살이

처음부터 찢어질 기미를 보이던 신접 살림살이부터

이미 찢어져 버린 아파트 대출금

구멍 난 아이들의 학자금

정리해고를 당하고 방황하던 시절

나의 외로움까지

아주 오래전부터 아내는

집안 살림살이들을 꿰매고 있었다

혼자 하는 아내의 바느질이 안쓰러웠는지

하얗게 센 머리에 바늘을 문질러 가며

몇 해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내 곁에 앉아 함께 바느질을 하고 계신다

어머니가 뾰족한 바늘 되어 옷감을 뚫고 앞으로 나가면

아내는 실이 되어 그 뒤를

촘촘히 밟으며 따라가고 있다

이 만큼 살아가는 우리 집 형편도

어머니께 배운

집안을 꿰매고 다듬는

아내의 바느질 솜씨 덕분이다

바느질을 끝낸 어머니가

아내의 주름진 손에 바늘을 들려주며 조용히 웃으신다

어머니와 밀애를 들킨 듯

헛기침을 하며 방문을 여는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두 뺨이 발그레 하다


아내는 우리 집을 세우고

꿰매는 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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