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의 왕오천축국전 / 손택수
지상엔 수없이 왔으나 처음 당도한 여름 끝의 노을이 걸려 있습니다
모래바람 날리는 저물녘 해변의 산보는 당신의 왕오천축국전, 내디딘 대지에 한 발 한 발 기도를 드리듯이 걷습니다
불안하게 술렁이는 허공을 더듬거리면서 더디게 모아지는 발들, 한참을 머물렀다 또 한 걸음을 뗄 때
그 숨 막히는 보행은 차라리 구도가 아닙니까
반쪽 몸에 내린 빙하기가 반쪽 몸의 봄을 더 간절하게 합니다
쇄빙선처럼 길을 트는 가쁜 한 걸음 속에서
몸의 밑바닥은 의식의 가장 높은 고원,
불어가는 바람이 해저에서 막 융기하는 산맥의 바위처럼
굽이치는 당신의 이마를 환하게 쓸고 갑니다
단 몇 미터를 걷는 데 평생이 걸린다면
몇 미터의 대륙이 품에 안은 수십억 년을 가뿐히 뛰어넘는 것,
마비된 근육과 혈관 너머로 추방당한 복류천 맥박 소리를 향해 걸어가는 것
깨어진 모래 한 알이 무릎걸음으로 해변을 동행할 때
더듬거리는 걸음과 걸음 사이의 침묵이 제 유창한 보행을 망설이게 합니다
지상에 말랑한 첫발을 내딛는 아기의 경이처럼
지팡이를 짚을 때마다 탁, 탁, 터져 나오는 탄성
한 번도 온 적 없는 여름 끝 저물녘의 왕오천축국전
일만 번의 여름을 살며 스스로 풍경이 된 이름이 파도에 잠기고 있습니다
제13회 노작문학상에 손택수 시인의 시 '저물녘의 왕오천축국전' 등 5편이 선정됐다고 상 운영위원회가 16일 밝혔다.
노작문학상은 일제강점기에 〈나는 왕이로소이다〉 등 민족적 작품을 남긴 노작(露雀) 홍사용 시인을 기리기 위하여 제정되었으며, 2002년에 제1회 수상자를 냈다.
홍사용의 고향인 경기도 화성시 문화계 인사들이 주도해 설립한 '노작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홍신선)가 주관하고 화성시가 후원한다. 매년 1회씩 수상자를 선정하여 후원한다.
운영위원회는 "손택수 시인의 시는 탄탄한 작품의 틀과 사물들에 대한 감각적 해석이 돋보이며 상상력의 폭과 높이가 광활하다"고 평했다.
시상식은 노작문학제 기간인 10월 19일 경기 화성시 노작문학관에서 열린다. 상금은 2천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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