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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깨밭에서 / 유재하
깨 쏟아진다는 말
눈물 쏟는다는 말이더군요
낫질마다 죽창 날카로운 끝을 보이는 깨나무도 실은
건드리면 울음을 털어 내는 새색시 닮아놔서
댓걸음 베다보면 시엄니 앉고 나간 자리처럼 땅 위엔
며느리의 못다한 말들이 깨알처럼 흩뿌려져 있더군요
비바람에 흔들리던 풍경같이 홀가운 알껍질들
손닿을 때마다 부르르 떠는 줄만 알았는데
저들끼리 묶일 땐 쓸데없이 앙탈부리는 것들 먼저
떨어내는 법을 깨닫게 해 주더군요
이렇게 깨밭에서 깨를 걷다보면 조잘거리며 입방아 찧는 녀석들!
모두 땅으로 떨어져 돌아가고
털리기 전까지 참지 못하는 녀석들!
손 미치지 못하는 길바닥으로 사라지게 되더군요
아까워라
몸조심 손조심하여 깨를 걷다보면
남는 것보다 버려야하는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와
깨 쏟아진다, 할 때마다
눈 속에 감춰두었던 깨기름을 짜내듯
눈물을 쏟는다, 해야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