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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삼저수지 / 김재홍
십여 호 마을은
어깨를 늘어뜨린 미루나무의 가슴에서
깊은 속주름의 나이테를 키우고 있다
초저녁 붉은 달빛이
자갈길 지나 쉰 목소리로 달려오는
바람의 목 언저리에서 무너지고 나면
어둠에 발목 잠그는 양어장 불빛과
억새풀 안고 돌아서는 해진 투망이 보인다
줄기부터 마르는 팔월의 깨꽃은
참나무집 텃밭에서 정강이 드러내며
한밤의 갈퀴손이 되어 서있고
좌대를 빌어 밤낚시에 잠기는
낯선 이웃들의 큰 목소리를 좇아
등푸른 이끼들 기어오르는 스레트지붕의
오지랖에서
물길 솎아내는 노를 젓는다
한평 남짓한 목선의 뱃머리에서
오랫동안 잠겨있던 잔잔한 벼꽃이 피면
피를 뽑으며 무논에 힘을 주는 일이 아직은
수몰된 이웃들의 가쁜 숨소리에 잠겨도
손금 가득히 벼이랑의 꿈 길어 올리는
참붕어떼의 물방울 보며 노를 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