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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박기 / 전연옥(서울예전, 문예창작)

 

못질을 한다

저물녘 창틀에 걸린 우울을 바라보며

밤마다 허물어지는 이시대의 낡은 흙벽을 찾아

나는 또다시 망치를 찾아 들고

확신에 찬 못질을 해본다.

 

지붕을 울리고 기둥을 흔들며 들어가는 대못

더러는 허리를 구부리고 주저앉아

내 망치와 한 판 승부를 겨누려 하지만

손등을 타고 번지는 노동의 구릿빛 이 힘은

허공에 우뚝 선 또 하나의 흙벽에

길고 단단한 무쇠 못 하나를 깊이깊이 박고 있으니

 

내 너를 다시 일으켜 세워

흩어진 식구들의 허름한 작업복을 주워 걸고

한겨울 넘나드는 북풍을 막을 수 있다면

힘에 겨워 어깨가 결린다 해도

나의 망치질은 멈추지 않고

하늘에 하늘

그 위에 지붕까지 움직일 것이니

 

어둠이 긴 꼬리를 뒤척이며 다시 찾아 와

찬 방바닥 버려진 못들의 머리 맡으로

무허가 날림의 흙벽을 쓰러뜨려도

불멸의 내 강인한 의지는

부서진 마디 마디에 새 못을 치고

알몸으로 흔들리는 담벼락에

이 시대에 가장 튼튼한 못 하나를

정확하게 박을 것이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내게 온 작품은 모두 열여덟 사람의 작품이었다. 그 가운데서 다시 다음의 여섯 사람의 작품을 추렸다.

전 연옥 : 못박기 외 5편

정 일근 : 열일곱 살의 바다 외 5편

한 상권 : 한국문학사 외 2편

이 상연 : 소쩍새 울음외 5편

박 현경 : 비닐우산 외 3편

심 종철 : 눈 외 6편

 

「열일곱 살의 바다」(외)를 쓴 분은 말을 다루는 빼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유년화첩」같은 것은 이 분의 뛰어난 상상력을 느끼게 해준다. 결점이 있다면 말 재간이 너무 뛰어나다 보니 말 속에 삶의 모습이 빠지고 마는 것인데, 그 가장 나쁜 보기가 이 분이 앞에 내세우고 있는「열일곱 살의 바다」같은 작품이다.

시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지만,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이 표현하고 있는 사람의 삶의 모습이다. 이런데 유의하지 않는다면 이 분은 어느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못박기」(외)는 아주 건강한 생각에 바탕하고 있는 시들이다. 시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고, 자기 얘기가 아닌 남의 애기처럼 들리는 대목도 없지 않지만, 시의 바탕에 깔린 튼튼한 생각은 아주 값진 것이며, 이 분의 더 큰 가능성을 엿보게 해주는 것들이다.

「한국문학사」(외)에서는 「꿈 꾸는 섭」이 제일 뛰어났다. 이런 쪽으로 나가면 개성있는 시를 쓸 분으로 생각된다.

「소쩍새 울음」(외)은 너무 많이 들어본 가락이다. 뜻이 어디 있는가는 알겠지만 시는 뜻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개성있는 가락을 가지려는 노력을 해야할 것 같다.

「비닐우산」(외)는 재미난 소재를 시에 담을 줄 아는 분의 작품인 것 같다. 그러나 시를 너무 쉽게 쓴 흔적이 보인다. 투고 원고에 전혀 정성이 담겨 있지 않은데, 바로 그것은 시에도 그만큼 정성을 쏟고 있지만 않다는 얘기도 될 것이.

「눈」(외)는 너무 재기가 승한 작품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감동이 적다. 너무 말이 많은 것은 이 분의 시들이 가진 취약점들이다. 일부 기성시의 해로운 영향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정 일근의 「유년화첩」과 전 연옥의「못박기」를 놓고 당선작과 가작으로 서로 바꾸기로 여러 번 하다가 마침내 「못박기」를 당선작으로, 「유년화첩」을 가작으로 정했다. 두 작품은 서로 우열을 가릴 수가 없는 것들이었으나, 일단 재능보다 튼튼한 생각에 더 점수를 주기로 한 것이다.

 

신경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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