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소 / 김륭
1.
소(牛)를 키운다. 아파트 거실에서
밤마다 정육점 갈고리에 매달리는 꿈이라도 꾸는 건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몸서리치는
소.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딸아이가
소를 등지고 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다.
우우 눈(目)으로 우는
소.
운동장만한 아파트가 고향집 외양간보다 불편한지
워워, 틈만 나면 슬그머니 집을 나가는 소.
지하 주차장이나 놀이터를 갈아엎어 아내 얼굴에 똥칠을 하는
우리 집 소는 뿔이 없다.
서울로 끌려오면서 팔아치운 논밭뙈기 그리운 날이면
사거리 맥도널드 체인점 앞에 모락모락 소똥 퍼질러 놓는다.
그때마다 난리가 난다.
어이구, 못살아 내가 못살아! 제발 집안에 편히 계세요
아내에게 사랑받는 우리집 소는 음매음매
자주 아프지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등골 빠질 만큼 실컷 부려먹은 소, 당장 도살장으로 모셔야하지만
아내는 애완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2.
아버지 참 눈치도 없다.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아내가
헬스클럽에서 돌아왔는지 모르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거실 소파에 소똥 퍼질러 놓고 있다.
꽃등심 / 김륭
보증 잘못서는 바람에 집 날리고
아내와 갈라선 후,
보증금 삼백에 월 십만 원 반 지하 단칸셋방에서
노란냄비 하나 품고 살다
슬리퍼 질질 끌고 나서는 문밖, 늦은 봄 햇살이 킬킬
꽃들에게 문병問病이나 가잔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팔짱낀 거리 동해횟집 지나 사거리 신선정육점 앞에서
울컥, 몸이 물처럼 맑아져 토해내는
붉은 잎사귀!
심장이 칼을 물었다
꽃피우지 못한 생生의 등뼈 깊숙이
음매음매 소 한 마리 살고 있다는 동영상 메시지가 떴다
병명病名 없이 게워내는 선홍빛 각혈인줄 알았더니
칼질 급한 영혼의 비곗덩어리인줄 알았더니
쫄깃쫄깃하다
설움이란, 혓바닥 자근자근 깨물고 맛보는
내 삶의 꽃등심!
도대체 몇 근이나 될까?
어둔 목구멍 가득 숯불 피워놓고
히죽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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