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의 거간꾼 / 김윤희
내가 너의 무심한 갈증 편에 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발견했다
오늘 아침 내 손이 너에게 건넬 것은
오로지 건더기 없는 차디찬 맹물
뿐이니
손아귀에 옹이 지도록 물의 집
비틀어 잠긴 물의 문 노크하다 말고
부수어 내 손이 갇혀 입 다물고 참고 있는
한 모금 물 어렵사리 빼네
너의 앞에 내놓으니
간밤 긴급하고 험악한 갈증이 불타고
남은 너의 사막을 잘 받쳐 들고
아침의 오아시스 앞에
줄을 서라
그는 너를 알아볼 것이다
나는 물을 중개하는 특별한
자본이라곤 마련 없는 맨손의
거간꾼이 될 것이니
[심사평] “50년 시의 지평에 오로라처럼 섬광이”
이 땅의 모국어의 새벽을 깨운 공초 오상순 선생의 시 정신은 한 세기의 수난의 역사를 관통하고 오늘 한국 시를 경작하는 시인들의 머리와 가슴에서 샘솟는 시의 원천이 된다.
올해 제23회 공초문학상 수상자 김윤희 시인은 등단 50년이 넘도록 치열하게 사유의 천착, 언어의 탁마로 우리 시의 경지를 한 단계 높이는 시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 이제 그가 개간해 온 시의 지평에서 오로라처럼 섬광을 띠고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이 시집 ‘오아시스의 거간꾼’이다. 사막을 건너는 대상들이 낙타와 함께 모래밭에 쓰러져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환상으로 보는 것이 오아시스라 했던가. 거간꾼이라니? 시인은 이 시대의 불타는 갈증을 꺼 줄 오아시스를 우리에게 거간하고 싶은 것인가.
시 ‘오아시스의 거간꾼’이 던지는 화두는 저 공초가 일찍이 ‘산아 무너져라 그 밖 좀 내다보자/바다야 넘쳐라 심심치도 않느냐?’고 갈파했던 사자후에 대한 차운(次韻)으로 읽힌다.
‘오늘 아침 내 손이 너에게 건넬 것은/오로지 건더기 없는 차디찬 맹물/뿐이니’에서 ‘나는 물을 중개하는 특별한/자본이라곤 마련 없는 맨손의/거간꾼이 될 것이니’까지 김윤희 시인은 그저 뜻 모를 글자들로 시를 어지럽히는 이즈음 시단의 흐름에 대해 왜 모국어를 불필요하게 낭비해서는 안 되는가, 한 편 시가 그 시대를 넘어 사람의 생각과 삶에 어떤 새 아침을 열어주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김윤희 시인의 높고 넓은 시적 성과에 머리를 숙인다.
- 심사위원 신경림, 유안진,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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