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가뭄에 꾸는 꿈 / 김주관
가끔 마루 밑으로 추락하는 꿈을 꾸었다.
고샅을 살피는 돌배 감잎이 배들배들한 유월, 헛광 시렁에는 구렁이가 들곤 했는데 마늘쫑 끝대는 탱탱도 하여라, 꼬부라진 불쏘시개 되어 화덕 아래 지글거리는 날, 머리카락과 실파가 닭나무 살처럼 풀어져 진이 빠지면 돌덩이 되어버린 된장을 풀어서 아욱국 끓여 골목길에 뿌리는 거라는데. 설핏한 해거름에 나타난 긴 그림자, 미끈덕한 몸에서는 소름이 착착 목덜미에 감기고, 날숨이 막히고 숨통이 조여와 서늘하기도 했어라. 구슬처럼 박혀있는 고요한 심지, 내 눈에 가쁜 섬광이 꽂힐 때 댓싸리나무 그늘아래에 몸뚱아리를 숨긴 구렁이는 허연 옷 한꺼풀 벗어 말리는 중이었던가. 오솔길 휘적거리며 안골밭둠덩에서 왔으리라. 뻐꾹새 울음은 느릿느릿 콩포기에 내려 앉고 정적은 땡볕에 푹 익다.
밭고랑에 축 늘어진 유방을 말아 올릴 소낙비 기다리다 뒤늦게 벗는 허물이련만 땅강아지처럼 흙에 붙어사는 우리 엄마의 베적삼 냄새를 기억하고 십리 길 꽁무니 따라와 비단 옷 한 벌 갈아입으면 아, 하늘은 붉기도 했어라. 둠벙에서는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잠짓이 미지근한 오후의 수면을 데우고 얼굴이 까만 나는 마루 밑으로 굴러떨어져 가위눌린 심장을 쑥으로 문지르고, 엄마는 지킴이 우는 소리 들으려 자주색 하늘에다 대고 가없는 주술을 풀다. 날름날름 낮잠 끝에 찾아온 꿈이 내 머리맡에 깊숙한 또아리를 틀면, 얇은 헛껍데기 위에서 수파리들은 液을 찾고 붉은 해는 서산에서 마른 丸을 태우고.
[우수상] 간고등어를 구우며 / 박수호
남해 따뜻하고 맑은 물에 살찌우고
동해 푸른 물로 사랑 키웠네
내 생 또한 만남과 배신, 이별로 황량함이 가득했네
거친 바다 숨소리에 놀라지 않고
같이 몸을 섞어 깊어지고
들리지도 않는 소리도 듣게 될 때까지는
모진 세월 흘렀지
한때 깊은 산사 선방 뜨락의 고적과 여유를 즐기고 싶었으니
봄 바다 따스한 햇볕 아래 子罕編(자한편)을 읽다가
그 높은 뭍에 올랐네
어차피 가야 한다면
희미한 흔적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면서도
뒤척이다 바다 쪽으로 돌아누우면
바다의 해소 기침 소리
자꾸 등을 파고들었어
이제 안동 유가에 불려 나가
양반의 풍모를 배워
이름 얻었으니 「안동 간 고등어」라네
무엇이 되려 하였는지는 묻지 마시게
소금에 절여져 한결 깊어진 내 눈빛을 보게 되리
언젠가 나는 내 몸을 떠나고
몸은 나를 버릴 것인 즉
그대 식탁에 오르면
거두어 주시게
저녁 밥상에 놓여 있는 내가 얻은 이름 하나
[우수상] 달팽이 / 최선민
집 한 찌를 제 알몸으로 간단하게 채우고 있는 이것은
어쩌면 이 넓은 벌판과 마을에 있는 모든 것을
통째로 조금도 바꾸고 싶지 않은 살림으로 가졌는지 모른다.
개울, 마당, 뒤울안 어디에나 이미 와 있는
늦은 듯한 시간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보려고
뭐든 제자리에 가만둔 채
자칫 그르쳐질 수밖에 없는 집
수선화 한 포기가 피어나기에도 비좁은 집은
갖고 있기 쉬운 몸 하나만으로
빈틈 없이 채우고 있는 걸 보면.
때로는 집만 동그랗게 세워져 있을 뿐
발걸음 소리는커녕 물 만지는 소리도 나지 않고
울타리의 막대기까지도 더듬이가 되어
이슬 숭얼숭얼 꿰고
쫑긋 서 있는 걸 보면.
여길 못 떠나는 나는 꾹 참고 내색조차 않는 것의 속말이 되어 있을까
하루 종일 이곳저곳 물 따라 흘러 다니다가도
느닷없이 나 새파랗게 풀잎에 치밀고
마르지 않으려고 떨며 우거지고
가슴 조이며 돌에까지 숨죽여 있고.
[우수상] 햇살 소포를 받다 / 서상규
꽃자리의 주소를 찾기 위해
총기 밝은 눈썰미로 물집이 잡히도록
햇살소포가 어지간히 에돌았나보다
솟대처럼 까치가 이정표 노릇을 하던
한옥 기와로 잎새 엮은 은행나무집 번지에
수직으로 솟은 새 건물의 지형도
사각의 덫을 드리운 그늘 속
눈썹 젖은 영산홍 한 그루가
옹색한 몸피로 하늘은 우러르고 있다
박쥐문양이 도안된 우표에
한철 빗줄기의 물결무늬와
단풍빛깔 물든 바람결
얼음 켜 돋아난 소인이 찍혀있다
지난봄에 보낸 소포를 받는다
별빛 도드라진 연필심 자국이 빼뚤빼뚤한
천사의 발신지 주소에
틀니를 드러낸 그믐달 미소가 정겨운
낯선 이름 석 자의 살빛 그리움
하늘자락으로 겹겹이 포장된
무량한 속 마음결을 풀어나간다
물관이 차오르는 두레박질에
연둣빛 잎새의 눈물샘이 부풀려진다
마지막 한 꺼풀 수평선을 벗겨내자
태양이 떠오르듯
어머니가 바리바리 싸서 보낸 빛 사태
살아생전 해독하지 못했던
사랑의 암호문 상형문자가
교감의 절정으로 또박또박 읽힌다
피돌기로 반지는 햇빛서체 한 자 한 자
애벌레가 탈피하듯 속눈썹 경련에
꽃잎 날개가 화르르 펼쳐진다
부천시 수주문학상 운영위원회는 15일 오후 2시 부천시청 회의실에서 제6회 수주문학상 시상식을 가졌다.
수주문학상은 부천 출신으로 시인이며 수필가인 수주 변영로((樹州 卞榮魯,1898∼1961) 선생을 기리기 위해 부천시가 1999년 제정한 것으로 전국에서 367명이 응모한 2603편의 작품 가운데 대상은 ‘가뭄에 꾸는 꿈’(김주관). 우수상은‘간고등어를 구우며’(박수호).‘햇살소포를 받다’(서상규).‘달팽이’(최선민) 등이 각각 선정됐다. 대상은 500만원, 우수상은 100만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대상과 함께 상금 5백만원을 받은 김주관씨는 “곰삭혀 우려내지 못한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히고 “앞으로 수주문학상에 값하는 시를 써 갈것”이라는 당선 소감을 말했다.
심사위원 김명인(고려대 교수)은 “예심을 거쳐 온 적지 않은 작품들 중에서 고른 수준의 시편을 만날 수 있었으나 단숨에 선자를 사로잡는 응모시를 발견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고 밝히고 “전체적인 작품들이 시를 가슴으로 받아 안거나 서정적 밀도를 감염(感染)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정서적 긴장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고 평했다.
김주관 씨의 <가뭄에 꾸는 꿈>은 “섬세한 시어와 걸맞는 시상의 배치로 요요하고 적막한 초여름 한낮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 시가 아름다운 것은 잔상처럼 추억 속에 남아있음을 우리 모두의 서정을 되살려 내기 때문일 것이다.”
박수호 씨의 <간고등어를 구우며>는 “일상의 경험을 견고한 시의 형식으로 구축해 내는 데 성공하고 있어서 오랜 습작의 연조를 느끼게 만든다. 그럼에도 어딘지 낮익은 정서가 되풀이되는 듯한 인상은 작가가 한 번쯤은 스스로를 냉정하게 되돌아볼 개신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서상규 씨의 <햇살 소포를 받다>는 “작은 발견을 데둘러 말하고 그것을 밝은 시상 속으로 거침없이 포개는 수법이 신선하게 읽혀졌다. 그러나 속도의 가벼움은 흔히 감성에 빠져들기도 하는 법, 장점을 살리되 말에 무게를 실어주고 부피를 갖추게 만드는 일이 작가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최선민 씨의 <달팽이>는 “견고한 사유의 힘이 돋보인다. 작가의 남다른 관찰과 사색의 결과 이리라. 체험의 무게를 시에 실어 놓고 그 맥락을 얽어내는 방법을 제대로 체득한다면 선이 굵고 뚜렷한 시적 개성을 확보해 내리라 믿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