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 박제천
항아리를 보면 붕어 불러들이던 된장항아리 생각난다
항아리를 보면
잡은 붕어 내보이던 투명한 달항아리 생각난다
항아리를 보면
그 안에 들어가 숨죽이고 잠자던 관항아리 생각난다
그러다 문득 비를 생각하면,
항아리 또한 비가 된다
개여울 속 하늘 속 땅 속 어느 곳이든
내가 만든 비들은 하나같이
항아리같은 추억,
항아리같은 사랑,
항아리같은 죽음을 만든다
그런 항아리 가득 볼펜을 꽂아놓고
나는 문득 비의 자서전, 항아리의 자서전을 구상한다
청개구리가 된 부처를 받아들이는 비의 일생,
살도 정도 불에게 내어주고,
사리와 뼈만 남은 부처를
그 안에 쉬게 하는 사리 항아리의 일생
그러다 문득, 붕어라고 쓰면 붕어가 뛰어 나오고
된장이라고 쓰면 된장내 구수해지는 입체 볼펜으로
항아리 하나를 그린다,
그 안에 전생의 메모리칩이 내장된
내 항아리 하나를 하늘에 띄워놓고 흥얼거린다
달아 달아 천년만년 나랑 놀던 달아
[심사평] 그의 시는 치열한 정신적 고투의 산물
박제천은 1966년 「현대문학」에 「벽시계」 등의 시가 추천되어 등단한 이후 지난 30여 년간 일관되게 자신의 시적 세계를 확장 심화시켜 왔다.
그의 시는 치열한 정신적 고투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감각이나 감정이 아닌 이 정신의 싸움은 서양 정신과 동양 정신의 대결을 통하여 깊고 넓은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게 만든다.
그의 시를 불교적 돈오의 경지나 도가적 허무의 융화로 보는 것은 그의 시에 깊이 스며 있는 동양적 사유와 시 정신에 주목한 결과이다.
그의 시는 자기 내면과의 고통스러운 싸움을 통해 쟁취된 것이다. 그의 시는 일상에 탐닉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는 자아가 드러내는 깊은 시성과 진실의 각성을 목표로 한다.
그의 시는 깊은 사색을 담고 있으며, 상상력의 자유자재한 구사를 특징으로 한다. 다만 지나치게 관념의 유희에 기울 때 그것이 현실의 방기나 시적 상상의 이완으로 이어질 체험을 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교적 상상과 노장적 사유를 현대적 감각으로 변용시켜 활달한 상상으로 펼쳐 보인 그의 시적 세계는 우리 현대시사 하나의 장관으로 기록될 것이다.
- 심사위원 최동호 고려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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