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 사피엔스 / 금희숙
유모차는 미리 늙어갑니다
똑같은 장난감을 만지면 계속 넘어지고
인공위성의 속도로 걸음마를 배워야 하는데요
반짝거리는 액정을 젖병처럼 빨면
손바닥만큼 엄마가 웃고 있어요
터치로 선생님을 밀어내고
클릭으로 친구를 선물하고
종소리는 아무래도 허용하지 않아요
아무리 껴안아도 따뜻해지지 않는 방
매일 손잡이를 돌려도 나를 찾을 수 없어요
불안은 얼마나 뚱뚱해지는지
모자를 벗어도 표정은 똑같습니다
우리는 날개 없이도 새가 되고
오늘보다 더 빨리 오늘이 쓰러집니다
울음은 턱받이에서 말라가고
눈동자는 쉽게 예민해집니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를 믿지마세요
여전히 풍선은 위험하니까요
이제 옹알이는 퇴화하고
우리는 기계보다 먼저 완벽합니다
[당선소감] "천천히 행복해지는 일, 오늘을 즐기겠습니다"
뜻밖의 전화는 이런 것이었다. 똑같은 하루, 단지 오늘이 크리스마스 라는 것 외에는 라디오 채널을 바꾸지 않듯 일상은 그대로였다. 늦은 김장을 준비했다. 배추에 속을 채우고 허리가 아플 즈음 휴대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덤덤하게 전화를 했다. 축하합니다. … 그 다음 대화는 뒤죽박죽 그저 놀라고 고마웠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을 되풀이했던 질문, 진정으로 나에게 흥분된 적 있었던가! 갈수록 높아지고 어두워지는 간격 그리고 터널 같은 절벽 앞에서 아찔했던 갈등과 혼란을 번복했다. 웃는 일이 계단처럼 힘들었다. 언제부터인지 하루가 지치고 분명 걷고 있었는데 뒤돌아보면 다시 어제였다. 한 발을 내디디면 두 걸음 뒷걸음질 치고 숨 가쁘게 넘겨도 제자리걸음이었다. 종종거리는 나를 거울처럼 마주했다. 자꾸 무엇인가를 까먹고 놓치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잘살고 있는 것인가? 매일 묻고 또 물었다. 시작했으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약속이 나를 점점 지치게 했다. 그 무렵, 도서관에서 아기들에게 정기적으로 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시작했다. 전공과 무관한 직장을 다녔고, 내 아이들에게 못 해줬던 미안함에 시작한 책놀이 활동. 봉사하는 동안 포노 사피엔스를 자주 마주쳤다. 앞서가야 인정받는 현실 앞에서 걱정과 함께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끈이 되어 준 문전성시 동아리, 시의 공간을 안내해 준 임정일 선생님, 그리고 안방 같은 곰시 동인, 한결같은 달숨 가족, 좋은 시를 쓰라고 조언을 해주신 김산 시인님, 중대 문예창작전문가 과정 지도 교수님과 문우님, 모두 고마운 나의 스승이자 은인이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다고 집안일에 소홀해도 묵묵히 기다려준 사랑하는 남편과 듬직한 아들, 고마운 딸에게 오늘의 선물을 함께 한다.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변화해 가는 신인류의 모습 경쾌하게 표현"
본심에 올라온 열두 분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시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의 고독과 상처, 상실과 죽음이야 시의 오랜 주제이지만, 올해 투고작들에서는 유난히 어떤 활력이나 전망을 찾을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런 안타까움 속에서 마지막까지 숙고의 대상이 된 시들은 '어떤 계단' '테트리스' '수중기도' '포노 사피엔스' 등이었다. 그 중 두 작품을 놓고 장단점을 비교하며 좀 더 토론이 이어졌다.
'어떤 계단' 외 2편은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집중력이 돋보였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그의 시들은 안전해 보이는 계단이 감추고 있는 위험이나 지방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을 묘사함으로써 문명의 그림자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그러나 타당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동어반복이 많고 시어가 산만하다는 점에서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포노 사피엔스' 외 2편은 간결한 언어의 배치와 행간의 여백을 통해 시적 함축성은 높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의 시들은 서정적인 톤을 유지하면서도 스마트폰에 의해 변화해가는 신인류의 모습이나 현대인의 단절된 관계와 불안의 심리를 경쾌하고 리드미컬하게 보여줌으로써 자기만의 '명랑한 우울'을 창조해낸다. 다만, 포노 사피엔스에 대한 평면적인 나열을 넘어 좀 더 심층적인 인식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도 '미안해요 아스피린' '공공 터널' 등 다른 투고작들의 수준이 고른 편이어서 믿음이 갔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나희덕, 홍정선
'신춘문예 > 영남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년 영남일보 문학상 / 손연후 (0) | 2022.02.06 |
---|---|
2021년 영남일보 문학상 / 설현민 (0) | 2021.01.01 |
2019년 영남일보 문학상 / 서진배 (0) | 2019.02.03 |
2018년 영남일보 문학상 / 이서연 (0) | 2018.01.12 |
2017년 영남일보 문학상 / 김한규 (0) | 2018.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