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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 스트라이크 / 김미향

 

아파트 20층 유리창은 새의 반환점,

인증 샷을 찍듯 여기저기 새의 낙관이 찍혀 있다

새의 시력은 사력을 다해도 원시안이어서

한 마리의 새가,

창문을 창공으로 오독한 것일까

새들이 머리로 유리창을 읽다 아예 산문散文이 돼버린다

저렇게 혼신을 다해 심독하는 몰입도 있다니,

마침표 하나를 찍기 위해

얼마나 꾹꾹 눌러 썼으면 부리가 다 구부러졌을까

창문에 부딪혀 길바닥에 부사副詞처럼 떨어져 있는 새들

공중의 사후를 본다

창가에 앉아 책갈피에 꽂아 둔 압화를 화분에 옮겨 심는다

이렇게 높은 데서 뿌리내리기도 힘든데 꽃이라고 피겠어?

라고 누군가 하는 말을 귓등으로 흘려보내는 사이

또 한 마리의 새가,

금이 간 공중의 틈으로 햇빛이 쏟아지고

화분에 물 대신 햇빛이 듬뿍 뿌려진다

새의 날개에 긁힌 자국이 햇빛에 선명하게 나 있다

새의 후생이 햇빛에 착상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또 한 마리의 새가,

유리창의 실핏줄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긴 처음이다

새의 붉은 울음을 필사하느라 구름이 잠깐 뒤뚱거린다

유리창에 새가 노크될 때마다 조의를 표하듯 펄럭이는 커튼

베란다 화초에 슬어 있는 햇빛을

새의 눈물을 닦아 주듯 수건으로 닦아내는 동안에도

또 한 마리의 새가,

창문을 열고 압화押花를 담담하게 날려보낸다

창밖엔 압조押鳥가 땅의 갈피에 차곡차곡 쌓인다

*윈도우 스트라이크 : 새가 투명한 창문 등에 부딪혀 죽는 현상

 

 

 

 

[당선소감]

언젠가부터 시 앞에 경건해지고자 마음 다독이기 시작했다. 행간에 힘을 주기보다는 붓끝에 힘을 주다가 행간을 비워 두던 날들이 많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늘 사유의 맨 첫 행인 나를 비워 두자 글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머리맡에 수북이 쌓여 있는 문장들을 하나하나 퍼즐 맞추듯 나열해 보는 일, 언젠가부터 그런 내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깨에 힘을 빼자 헐거웠던 행간이 채워지기 시작했지만 팽팽하지는 않았다. 호흡이 편안해져야 문장이 단단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썼다 지웠다 빈 여백을 한참 바라보기도 해본다.

티브이를 보면서 고층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새의 부고가 자막으로 흘러가는 동안 화면에는 새들의 화려한 일생이 상영되고 있었다. 공중엔 격벽과 직선과 곡선이 너무 많아서 하늘을 날 때 원하지 않아도 곡예를 해야 하는 새들의 우여곡절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지금 창밖을 날아가는 저 새들이 왔던 길을 찾아 되돌아올 수 있을까. 각박해지는 환경 속에서 삶이 힘겨워지는 만큼 더불어 상생해야 하는 땅과 바다와 하늘의 주주들의 고단한 궤적들. 사람과 환경이 함께 공존해야 하는 생태계를 지키는 데 어떤 심혈을 기울여야 할까.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위협받는 재앙에 대해 우리는 어떤 해답을 갖고 미래를 대비해야 할까도 생각해본다.

평택 생태시 문학상을 습작하면서 생태계의 위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주위에 산재한 훼손의 사유들을 백지에 꾹꾹 눌러 적으며 어떻게 그 간절함을 호소해야 할지, 고발과 자책보다는 치유와 설득에 더 절실함을 가지고 써내려간 시들. 습작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한참 부족한 사유에 관심을 가져주신 평택문인협회 생태시 문학상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생태시 문학상 수상자로서 좀 더 진정성 있게 환경을 생각하고자 한다.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도 늘 문학에 대한 열정을 함께 해 준 문학동인들, 가족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글 앞에 늘 진지한 자세로 스스로를 지켜보며 정진하겠다.

 

 

 

 

[심사평]

39년 만의 늦장마라고 한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잦다. 바람과 우박을 동반한 집중폭우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강이나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폐사한 어패류들과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농경지가 극심한 가뭄을 여실히 보여주었는데 작년에는 큰비로 곳곳이 수해를 입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상이변이 잦다. 지구의 온난화에 따른 생태환경의 변화와 자연환경 훼손과 무분별한 개발 등 문제점들이 대두되는 가운데 생태시에 대한 문인들의 관심과 열정도 뜨겁다.

 

나무와 바다를 주제로 다룬 작품이 많다.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바람과 해류의 순환으로 한 곳에 모이게 되어 쓰레기 섬이 형성되었다. 북태평양 바다 위의 거대한 쓰레기 섬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는 우려 섞인 목소리와 해양 오염으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된 고래들의 수난사를 다룬 작품이 다수 있었다.

 

예년에 비해 응모자가 많아 두 차례의 예심과 본심을 걸쳤고 당선자를 결정하는데 신중을 기했다. 논의 끝에 김미향의 〈윈도우 스트라이크〉선정했다. 새가 아파트 20층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상황을 밀도 있게 그린 작품이다. ‘창문을 창공으로 오독한 새가 마침표를 찍기 위해 얼마나 꾹꾹 눌러썼으면 부리가 다 구부러졌을까? 새의 눈물을 닦아주듯 수건으로 닦아내는 동안에도 또 한 마리의 새가, 새의 붉은 울음을 필사하느라 구름이 잠깐 뒤뚱거렸다’ 는 표현에서 보듯 방음벽이나 유리창에 부딪혀 죽음을 맞는 새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섬세한 필치와 이미지로 잘 그려냈다. 함께 응모한 〈남방큰돌고래의 눈물〉〈新젤리피시〉도 당선작에 못지않은 수작이다.

 

마지막까지 거론되었던 작품으로 〈신데렐라 샤우팅〉은 ‘시베리아에는 시베리아 호랑이가 없어요.’ 하는 목소리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 〈우리가 실개천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 동안〉은 실개천으로 흘러드는 폐수로 인해 오염되는 하천과 죽어가는 물고기의 죽음을 잔잔하게 그려냈다. 〈GPGP〉는 하와이 북동쪽에 있는 쓰레기 섬으로 인해 해양 생태계가 위기에 처하고 인간의 삶이 흔들리고 결국은 하나뿐인 지구를 살릴 거야? 말 거야? 하는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생태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수준 높은 작품이 많아서 심사자들을 기쁘게 한다. 생태환경에 대한 문제의식 제기와 지구 변화에 따른 위기의식, 자연환경 파괴로 인한 일상의 위협 등 생태시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주제가 선명하고 언어를 응축하는 힘과 사물과의 교류가 뛰어난 작품을 선정했다.

 

제9회 생태시문학상을 차지한 김미향님께 축하를,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지구 생태계에 대한 관심과 뜨거운 열정으로 훌륭한 작품을 보내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심사위원 성백원, 배두순 김영자 김복순 한인숙 진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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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의 고래 / 서기묵

 

오존층의 처녀성을 잃은 빙하가 녹는다 눈물이 자라는 고통이 하얀 핏줄에 스며들어 균열을 퍼트린다

은산철벽이 무너진다 사방으로 흰 핏방울을 튀기며 흩어지는 조각들. 만삭인 빙산에서 물의 한 살인 포유류로 태어나 사생아로 묶인 탯줄을 끊는다

유빙에 청색 반점이 찍힌 흰 고래가 지느러미를 펼친다 바다에 잠긴 폐 속에 공기를 채우는 호흡법으로 생을 연다 그린란드 해(海)에서 새로운 세계로 뛰는 심장을 띄워나간다

해수면에 떠오른 가련한 등이 눈부신 은빛을 반사한다 만 년에서 생년월일을 사주로 풀어 꿈꾸는 아름다운 미래

해류에 얽힌 미로에서 초음파로 점자를 읽듯 바다의 서사를 엮어간다 한 치 눈앞을 가로막는 수압을 가르며 자맥질한 몸을 수평선 위로 솟구친다

심연을 끌어올린 눈길에 태양의 흑점이 번진 하늘이 캄캄하게 덮친다 파랑을 일으키며 팽창한 허파를 휘파람으로 풀어놓는 선율에 플라스틱이 검은 음표로 걸려든다 숨길을 따라 빨려드는 쓰레기들. 내장에 내생의 그림자가 쌓여간다

얼음에 울음을 삼킨 목숨이 물거품으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빙점에서 녹아내리는 눈물로 바다의 수위가 높아진다 점점 뜨거워지는 피부로 시나브로 줄어드는 부피. 부력에 가벼워진 몸으로 북극해를 유령처럼 유랑한다

직사광선에 살결이 부서진다 생명을 다 살아내지 못하고 멈추는 심장. 빙하의 혈통인 흰 고래가 흘리는 한 방울 눈물로 물살에 마지막 얼굴을 묻는다

고래좌가 눈꺼풀을 감겨주는 영혼으로

 

 

 

[당선 소감]

 

인간은 자연에 속한 존재입니다. 자연 속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오존층이 파괴되어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작금에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자연은 생명의 근원이지 자원의 대상이 아닙니다. 생태적인 근본을 망각한 생존의 욕망으로 자연을 무차별하게 남획한 결과 병든 지구의 역습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상기후로 인해 멸종되는 동식물 속에서 인간도 멀지 않은 때에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로 자연을 지배하고 고갈시키는 행태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청되는 급박한 시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시대적 소명 속에서 생태시 문학상을 제정한 것은 선지자적인 혜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사는 영흥도 전원주택의 현관까지 날아든 박새가 기쁜 소식을 타전하듯 부리로 문을 콕콕 쪼는 진기한 광경을 엿보았습니다. 이어 당선을 알리는 귀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떤 문학상보다 뜻깊은 수상이기에 벅찬 기쁨이 심장을 울렸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과 관계자 분들에게 깊이 머리를 숙여 감사를 올립니다.

 

 

 

 

[심사평]

 

자연생태계의 가치와 중요성은 아무리 부르짖어도 부족한 부분이다. 생명의 순환과 공존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함은 인간들이 지녀야 할 덕목 중의 덕목이다. 문명의 고속발달은 자연의 균형을 깨트리며 위기 상황으로까지 몰고가려 한다. 이런 때일수록 자연생태계의 보존과 유지에 한층 더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것이다. 8회 생태 문학상 공모전에도 많은 문학인들의 응모가 심사위원들을 기쁘게 했다. 생태문학이라는 한정된 조건 하에서도 저마다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그중에서도 빙하의 고래’ ‘점박이 물범’ ‘종의 기원을 찾아서’ 3편을 응모한 서기묵의 생태시가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이견 없이 대상으로 확정되었다. 3편 모두 높고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생태시의 가치를 더하게 해주었다. ‘오존층의 처녀성을 잃은 빙하가 녹아내리며 사생아로 태어난 흰 고래, 얼음에 울음을 삼킨 목숨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빙점에서 녹아내리는 눈물로 바다의 수위가 높아진다는 자연 파괴의 암담한 현실을 부각시키며 다 살아내지 못한 한 생명을 어루만지는 시적 화자의 따스한 마음은 얼마나 고귀하고 사랑스러운가? 자연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시 편수마다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어 공들여 쓴 필력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마지막까지 거론된 작품은 쇠뜨기 풀은 힘이 세다.’ ‘진위 하수처리장에서’ ‘우유니 사막의 수태고지의 세 분의 작품이 거론되었으나 대상에 버금가는 우수상의 범주에는 들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다음을 기대하며 당선자와 낙선자 모두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 심사위원: 우대식. 진춘석. 김영자. 배두순. 한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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