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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 / 이주송

 

 

바위 속에서

나뭇잎의 잎맥인 듯 빗살무늬인 듯

오래된 뼈가 걷고 있었다

참빗을 닮은 한 벌의 뼈

초식이었던 뿔공룡은 일억 일천만 년 동안

바위 속으로 스며든 빗물이나

몇 번의 지각이 이동하는 소리로 연명했다

살점과 내장과 표피를 버리고 온전한 바위가 되어

마지막을 증언하고 싶었을 거다

천적이 없는 단 하나의 계절 속에서 그 오랜 진화의 시간

단단한 근육과 푸른 이끼의 털을 갖고 싶었을 거다

그러다 광물의 구()속에서도 부화의 시간은 다가와

화석에게도 통점이 도졌을 거다

 

갯벌의 어패류들이 조금씩 달을 뜯어먹는 동안

공룡은 부리주둥이가 뭉툭해지도록

태초의 서식지를 감각했을 것이다

한 겹 두 겹 더위와 추위를 껴입고

돌가루를 되새김질 하며 온 몸에 밴 울음을

초원의 저물녘에 방류할 때를 기다리며

바위 속까지 헤엄치고 있는 신경배돌기를 방치했을 것이다

부러진 골반 뼈로 백악기의 유전자를 복원하고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의 낯선 이름을

뒤집어썼을 것이다

 

아직도 공룡은 진화중이다

크고 넓은 바위 속에는

부화를 꿈꾸는 공룡들이 은밀하게 살고 있다

 

* 2008년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에서 발견된 뿔공룡화석

 

 

 

 

​[당선소감]

​ 

현관문을 부수고갑자기 멧돼지 한 마리가 쳐들어왔습니다. 사납게 물어뜯는 멧돼지를 피할 수 없었고 온 몸이 피투성이 된 채 잠에서 깼습니다. 잔인했던 꿈속의 공포가 역설로 바뀌었습니다. 창문의 햇살이 반갑고 좋았습니다.

 

풀리지 않는 시를 붙잡고 무수한 단어를 대입해보던 중이었습니다. 적절한 시어를 찾지 못해 멍 때리며 앉아있던 차에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순간, 앞이 하얗고 아무 생각이 안 났습니다. 꿈속의 습격과 긴장처럼 아무리 도망치고 숨어도 결국엔 혼자서 견뎌야 할 언어가 시의 세계라 했던가요. 읽는 사람만이 단 한 줄이라도 쓸 수 있다는 교수님 말씀이 불현듯 지나갔습니다. 무조건 읽고 썼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이 감사한 순간입니다. 의미 있는 생태시문학상에 부족한 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평택문인협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자연과 사람의 공생에 관한 다각도의 시각을 키웠습니다. 한 발짝 더 전진하라는 응원으로 받아들이며 누가 되지 않도록 치열하게 걷겠습니다. 지칠 때마다 격려와 채찍으로 묵묵히 이끌어주신 선생님들, 냉철하고 기탄없는 합평시간을 즐거움으로 채워줬던 문우들 고맙습니다. 날마다 안부를 챙기는 친정엄마와 아낌없는 배려로 지켜봐 준 가족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심사평]

 

급변하는 지구촌 기후변화로 생태계 순환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자연과 인간이 공멸할 위기에 처해있다. 인간의 탐욕에 의하여 생태계 또한 질서를 상실하고 있으며 인간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 받고 있는 실정에서 우리는 당면한 현실적 문제의식을 갖고 창작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환경에 대한 의식을 환기하고 환경파괴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자 생태시 문학 공모전을 매년 실시하고 있으며 올해로 일곱 번째 공모전을 열었다.

 

환경에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이 응모해 왔고 생태시 문학상의 심사기준은 인간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 인간에 의한 사회 환경유린, 인간에 의한 인간 존엄성 상실 등 생태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현재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일깨워 주며 정서적인 힘을 지닌 작품을 선별해내는데 중점을 두었다.

 

생태시 문학상에 응모한 작품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고 생태시에 대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 많아 심사하면서 즐거웠고 생태문학에 대한 열정이 해마다 높아가고 있음에 우열을 가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예선을 거쳐 네 분의 작품을 본선에 올렸다. ‘귀를 매달다’ 외 2편은 담쟁이가 철길의 소음을 받아내며 자라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철가루 달라붙은 훈장 같은 잎을 달고 흔들리는 것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하늘로 길을 내기 위해 나무들이 비질을 한다 로 시작하는 ’메타세쿼이아 길‘도 심사위원들의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함께 보낸 두 작품의 뒷심이 부족했다. ’포경‘ 외 2편의 작품도 끝까지 거론이 되었으나 수상작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주송의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는 한반도 최초의 원시 뿔공룡으로 경기도 화성에서 발견돼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라 명명된 공룡을 주제로 밀도 있고 짜임새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사물의 구체성과 주제를 밀고 나가는 힘이 탁월했으며 개성적인 사유로 시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함께 응모한 작품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고 생태시의 특성을 잘 살려냈다는 심사자들의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제 7회 생태시 문학상 대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좋은 작품을 보내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 심사위원. 배두순. 진춘석. 우대식. 김영자. 한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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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공 / 조우리

 

 

자기부인을 위하여

부드러운 공을 매만진다

십자수처럼 정성들여 밀어내는 공의 몸짓

삶은 함부로 지면에 튀길 수 없으므로

나는 공을 주고받는 일에 아직 서툴다

안방에서 공을 꺼내 욕실과 베란다를 통과시켜

방문을 닫고 물방울을 주고받는다

이야기를 채집하고 있는 새들이

제 목구멍에 걸린 공을 생각하며 울고 있었다

완전히 깨져버리리라 찬란하게

다이너마이트처럼 바닥을 격렬히 치는

공의 헐벗음이 나의 뱁처럼 감정이입한다

패배를 인정하며 흰 수건을 던질 때

공은 비참하게 놓인 자신의 모습을

하수구에 마구 쏟아 붓는다

휘발유를 두르고 마치 불의 화신처럼

공중을 위협하며 날뛰고만 한다

그러니까 공은 친밀한 칼과 같았다

안과 밖이 경사진 모래시계

벽걸이 시계처럼 시간의 십자가 위에서

나의 육신이 공을 처형시켰다

공의 부락들, 공의 대, 공의 가치

그 바닥들이 만들어낸 공의 기본기

공은 죽음을 끌어안고 생명을 헐떡인다

누가 이 부풀어 오른 간을 피력했었나

용기는 공을 차분하게 만들고

나는 입을 다문 채 자존심만 채운다

주고 받는 것

주문에 억양을 흘리는 것

심장을 꺼내 보라를 놀래키는 것

공은 살아있고 공의 기저에 바다가 깔려 있었다

모든 공은 땅을 데리고 하늘로 날아간다

바다표범 한 마리 갯바위에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

죽음을 끌어안고 생명을 헐떡이는 공의 의미

 

 

 

 

 

[심사평]

 

평택문인협회가 생태시문학상을 창설하고 자연생태계의 가치와 보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사업에 앞장선 일이 벌써 6회째다. 회를 거듭할수록 응모자들이 늘어나고 작품 수준 또한 골고루 상승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개성이 뚜렷한 작품들을 내려놓을 때의 아쉬움도 컸다. 이는 단 한 편만을 뽑아야 하는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서 발생하는 아쉬움이다. 생태시문학상 심사는 철저한 점수제를 적용하고 수합하여 최종 고위점수로 당선자를 뽑는다. 실력과 투명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평택문인협회회원들은 응모할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최종 3명의 작품으로 경합을 벌였다. ‘부드러운 공2, ‘요정의 원2, ‘비오는 날4편이었다.

 

그중에서도 조우리의 부드러운 공의 높은 점수가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부드러운 공은 상상력을 형상화하는 기본기에 충실한 작품이다. 부드러운 공의 탄생과 공의 기저에 깔려 있는 바다와 바다표범을 끌어내는 솜씨가 장시(長詩)를 단숨에 읽어내게 하는 마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린 바다표범이 몽둥이 사냥을 당하고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상황을 차마 발설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시의 배후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인류가 오래전에 발명한 기술 중의 하나가 이다. 이 죽음을 끌어안고 생명을 헐떡이는 현실을 우리는 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6회 평택 생태시문학상에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낙선자에게는 재도전의 용기를 선사합니다.

 

- 심사위원: 배두순. 이정희. 이귀선. 진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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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괭이*소식 / 육종원(유종인)

 

 

제주 바닷가에 죽은 상괭이가 떠밀려왔다는 말에

나는 그 입꼬리가 올라간 미소만은 썩지 않게 해달라고

두 손도 모으지 않은 채 기도를 붙드는 것이다

 

살아서는 바다가 제 안방 아니 운동장 같았어도

죽어서는 아무려나 떠밀리는 타향 같은 바다

젖먹이, 그걸 그친 지 오래지만 그 눈웃음만큼은

그 젖빨던 입술로 가만히 번져내던 울음만큼은

아직도 싱싱한 마련인 듯 따개비 등짝을 들썩이게 하는 것,

무슨 일로 바다가

상괭이에게 급살(急煞)을 입혔나 곰곰히 헤아리듯

낮별들도 바닷가 하늘에

물음처럼 물끄러미 턱을 괴고 눈빛을 반짝였을 것이다

 

상괭이가 떠밀렸으나 상괭이 죽음은 아직 이르다

파래 미역 줍던 노파는 상괭이 등짝을 쓰다듬어

그 간절한 손길 아래 다시 지느러미가 움찔거렸으면

옆구리 썩어드는 자리엔

사월의 유채꽃 미소로 새살이 돋았으면

망막이 흐려진 그 눈동자는

늦봄의 천동소리에 맑게 다시 틔어오는 기척이었으면

바다가 아니면 이젠

뭍으로 지느러미가 다리를 내어 걸어 나올 미소여

 

제주 바닷가에 상괭이 주검이 눈에 띄었다는 말에

나는 그 천연의 미소만은 묻히지 않게 해달라고

그제사 두 손을 마저 모은 채

파도처럼 기도를 철썩이는 것이다

 

* 상괭이 : 쇠돌고랫과에 속하는 작은 고래.

 

 

 

[당선소감]

 

올해는 유독 가뭄이 길었네요. 길거리 대형 화분에 심겨진 꽃들이 누렇다 못해 하얗게 말라죽는데 제 손길은 미약합니다. 농경지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 속수무책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제 상상에서 수십 수백 마리의 하마(河馬)나 코끼리라도 얼러내고 싶어지네요. 메마른 논밭에 가서 한 1톤씩의 물을 즐거이 토해낼 수 있는 짐승들 말이지요.

 

물이 갖는 그 전지구적인 종요로움이 커지는 시대네요.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도 물부족 국가의 불명예스러운 대열에 들고 말았습니다. 그 넉넉하던 수려하던 물은 어디로 갔을까요.

 

우렁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선배의 말에서는 물에 대한 농투성이들의 광적인 집착이 종교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지렁이 침이라도 모아야 할 판에 장마가 온다니 반가운 일이지요. 물이 있으니 꽃과 열매와 길이 열리고, 선량한 만남도 당연히 면면히 이어져야 할 판입니다. 속악함을 순치(馴致)시키는 물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지요.

 

노담(老聃)선생의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진언(眞言)도 단순히 인문학적 철리(哲理)나 비유의 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물의 실용과 생명성에 대한 직시로도 읽힙니다. 모든 숨탄것들과 함께 메마르지 않고 서로 너나들이 상통하는 물의 성정이 생태계를 웅숭깊고 낙락하게 하는 마음, 그 냅뜰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생의 물길이 트이는 그 생각의 물소리는 곧 시()이자, 관용의 문화이며 포용의 너름새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공모는 생태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수는 재미, 그 아우라(aura)를 넓히는 발상과 애정으로, 그 기꺼운 생각을 마주하는 계기였습니다.

 

인간과 자연, 사회를 아우르는 생태계에 대한 남다른 탁견으로 제정된 문학상에 제 시편을 흔쾌히 밀어주신 심사위원님 여러분과 평택문인협회 관계자분, 평택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양철지붕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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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생태계의 생명에 대한 존재의 염원

 

태양계 행성 중에서도 생물이 살고 있는 곳은 지구뿐이고 그 이유는 지구가 햇빛, 공기, , 흙 등 생물이 살기에 알맞은 환경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지금 많은 생물의 멸종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기온상승에 의한 지구의 온난화로 생태계의 급속한 쇠퇴가 도래할 수도 있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동물사냥이나 자연을 파헤치는 등 인간으로 인한 자연 파괴 때문에 많은 생물들이 멸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생물의 멸종은 다른 생물의 멸종을 가져올 수 있어 모든 생명체들은 공존하며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역사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석학 아놀드 토인비는 환경 즉 숲과 물을 파괴한 문명은 거의 모두 멸망했다고 지적한다.

 

육종원(유종인)님의 시 상괭이*소식은 제주 바다에서 죽은 상괭이의 소식을 듣고 전해지는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듣게 된다. 그 기도 소리는 돌고래의 죽음을 통해 자연생태계 질서의 파괴가 불러오는 비극적인 세계와 단절하지 않고 새롭게 눈뜨려는 인식의 전환이다. 죽음으로 생명이 완전히 소멸되고 이 세계와 절연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불러오는 비극적인 자연환경이 아니라 돌고래의 미소로 새로운 생명성의 가치와 대자연의 우주적인 탄생을 염원하고 있다. 인간에 의한 환경파괴나 기후 변화에 의해 죽은 돌고래의 슬픔을 우주의 원리의 새로운 생명의 생성으로, 생명에 대한 존재를 영속시키고자 하고 있다. 다시는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국제멸종위기종인 죽은 돌고래의 소식을 듣지 말고, 바다에서 웃는 돌고래를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다.

 

5회 평택 생태시 문학상으로 육종원(유종인)상괭이*소식을 대상 당선작으로 뽑았다. 생태계의 새로운 질서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자연생태계의 환경보존과 그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평택시와 평택문인협회의 취지에 맞는 작품으로 생태계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구현시켰다 하겠다. 또한 당선자의 최종후보로 세 편의 작품이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크게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이밖에 다른 응모자들의 작품 수준도 만만찮아서 심사위원들은 심사숙고의 시간을 더 가지게 되었음을 밝힌다. 그중에서 상괭이*소식은 전원일치의 높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 최종심사까지 올라와 경합을 벌인 작품으로는 동백꽃” “들판에 나온 밀항고래. 모두 탄탄한 내공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 심사위원 김영자, 배두순, 성백원, 이귀선, 진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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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을 걷는 장화들 / 이병철

 

 

파랗고 맑은 냉기에도 코가 얼지 않는 우리는

언제나 싱싱한 뒤축으로 수평선을 걷는 장화들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수심(水深)이 깊어질수록 바다의 과거를 잘 기억하는

오래된 가죽장화, 유빙에다 이마를 닦아 물광을 내며

아열대의 꽃잎을 흉내 내는 크릴새우를 쫓아다닌다

우리는 발목도 없이 발가락도 없이 난류에서 한류로 행진한다

캄브리아 시절에 따뜻한 바다 위를 걸어가던 신들이

탁족(濯足)을 하려고 장화를 벗어 놓았는데

그게 그만 바다에 빠져 밍크고래들이 된 것을

나는 다 발설해버리고 말았으니,

우리는 구멍으로 물숨을 쉬는 끈 없는 장화들

옆구리에다 파도를 주먹밥으로 뭉쳐 매달고 다니면

장화를 바느질하려는 수선공들을 만나기도 한다

태양에 달군 뾰족한 쇠가 내리꽂혀도

유선형의 몸은 능글능글한 데가 있어 작살을 바다로 흘려버린다

물빛 발자국들을 한꺼번에 연안으로 몰고 가면서 우리는

가죽나팔을 길게 분다, 높고 고운 소리 너머로

깨진 유리 바다가 일어서도, 장화들은 끄떡없다는 듯이

 

 

 

 

오늘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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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평택 생태시 문학상’은 평택시와 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가 자연생태계의 환경보존과 그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취지로 비롯되었다.

 

심사기준은 인간에 의한 자연생태파괴, 환경파괴, 생명 순환질서 파괴, 인간존엄성 상실 상황에서 재생태계 질서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네 번째의 ‘생태시 문학상’을 심사하며 다섯 명(이귀선, 진춘석, 배두순, 김영자, 유병만)의 심사위원들은 즐거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맙고 유쾌한 일이었다. 응모자도 많고 전체적인 수준이 높아 한 편 한 편 탐독하는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다.

 

이번 공모전에는 모두 347명이 응모하였으며 예선과 본선, 두 번의 심사를 거쳐 최종 다섯 명의 작품을 두고 치열한 점수제를 운용하여 이병철 시인의 《수평선을 걷는 장화들》을 대상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이병철 시인의 작품들을 폭 넓은 상상력과 사유의 깊이를 신선하게 표현하여 생태시의 수준을 높이고 있음을 시사했다. 응모한 세 편의 작품이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를 얻어냈다. 활달하고 톡톡 튀는 이병철 시인의 무궁한 상상력과 표현력이 생태시의 폭을 한층 더 넓혀주고, 다양한 이미지의 변형은 재미까지 더해주고 있다.

 

최종심사까지 올라와 경합을 벌인 작품으로는 ‘잇구멍의 숲’, ‘요정의 원’, ‘몽고반점을 새긴 바위’등이다. 모두 탄탄한 내공을 가진 작품들이어서 내려놓기가 아쉬웠다. ‘평택 생태시 문학상’에 응모한 모두의 열정에 감사드리며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낙선자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심사위원 배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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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펄은 천민이다 / 서상규

 

 

그녀는 불가촉천민이다

육지에서 흘러온 것들을 곱게 삭혀

온몸을 차진 자궁으로 펼쳤다

사리와 조금에 들고 나는 순리로

펄의 기운을 받아 생명들이 윤회한다

바다가 산도(産道)를 여는

썰물로 진흙 펄이 드러나는 때

수억 구멍에서 탄생의 율동이 일어난다

이때 별빛들도 맑은 눈을 떠

갯것들과 동성동본으로 빛살을 반짝인다

만삭으로 차오른 달의 인력에 따라

다산으로 열고 닫히는 개펄

 

어느 날 심장과 심장을 맞댄

육지와 개펄 사이 방파제가 쌓이고

대대로 없던 이름이 새겨진다

뭍에서 흘러드는 유기물이 없으므로

펄이 질펀한 생리혈이 막혀

배란 없는 불임이 깊어진다

바다가 썰물로 옷고름을 풀어도

그녀의 가슴은 열리지 않는다

빈 자궁 속에서 게가 게거품을 물고

조개가 입을 딱 벌리고 아사한다

바다도 산란의 보금자리를 잃어

물고기들을 품고 오지 않는다

하늘에 족보를 둔 신분 낮은 혈통으로

천민(天民)이며 천민(賤民)일 때

그녀는 살아 있었다.

 

 

 

철새의 일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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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생명 순환의 상호작용을 직시한 관찰과 배려

 

인간은 왜 끊임없이 자연생태계 생명 순환의 질서를 무너뜨리는가? 물과 공기 작은 생명들의 연결 순환을 방해하면 언젠가는 공멸의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이에 인간은 공멸보다는 공존을 위하여 모든 자연생태계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시대적 사명감으로 시작한 평택 생태시 문학상이 벌써 제3회를 맞이하였다. 전국규모의 이 공모전에 응모한 사람들은 총325명으로 작 품수는 모두1075편이다. 응모자격을 두지 않고 기성 신인 모두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작금의 생태계를 함께 고민해보기로 하였으므로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여섯 명의 심사위원들은 예심과 본심의 과정을 거쳐 최종본심에 오른 여섯 명의 작품을 두고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여 당선작으로 서상규 시인의 개펄은 천민이다를 낙점했다.

 

당선작품의 기준으로는 평택 생태시가 지향하는 심사기준에 부합한 인간에 의한 자연생태 파괴, 환경파괴, 생명 순환질서 파괴, 인간 존엄성 상실 상황에서 재생태계 질서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생공존을 염려하는 시인들의 외침이 불꽃처럼 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두 번의 평택 생태시 문학상에서는 3명의 입선자를 뽑았으나 제3회부터는 당선자 1명으로 압축하였다. 이는 평택 생태시 문학상 당선작품에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당선작품 서상규 시인의 개펄은 천민이다를 살펴보면 생명 순환 이미지의 흐름이 유려하게 흘러가고 있다. 개펄을 불가촉천민의 천민으로 은유한 발상은 신선하다. 육지에서 흘러온 더러운 것들까지 받아들이고 삭혀내어 펄의 기운으로 새 생명을 잉태한 개펄, 자궁과 산도(産道)를 가진 여인에 비유하고 진행시키는, 어쩌면 낯익은 이야기일수도 있는 이야기를 낯선 표현으로 압도하고 있다. 질펀한 생리 혈이 막혀 배란 없는 불임이 깊어가는 개펄, 바다가 썰물로 옷고름을 풀어도 열리지 않는 시커먼 개펄의 가슴을 예리한 시선으로 찾아내어 염려하고 있다. 개펄은 모태다. 모태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포용과 사랑이 있다. 서상규 시인은 개펄 속에 굼틀거리는 생명의 메시지를 읽어내고 전달한다. 절실함과 애정이 깃들어 있다.

 

종종 회자되기도 하는 개펄이지만 서상규 시인의 개펄은 신선한 충격을 첨가한다. 이는 시인만의 독특하고 고고한 시적인식론을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하늘아래 모든 생명들은 모두 천민(天民)이며 천민(賤民)이라는 형이상학적 사유가 시 읽는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함께 보내온 녹조에 물든 강’ ‘산은 다상성이다역시 생태계 생명 순환의 중요성을 유려한 필치로 발려내고 있다. 세편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심사위원들의 낙점을 받아냈다.

 

최종 본심까지 올라온 작품은 재활용 근처에서의 문답’ ‘어떤 싸움에 대한 기록’ ‘바다의 밥상’ ‘두더지 반 지하 신혼 방’ ‘생쌀 씹기. 모두 만만찮은 기량을 보여주었다.

 

3평택 생태시 문학상에 응모한 모든 응모자들에게 감사드리며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위로를 보낸다.

 

- 심사위원: 권혁찬. 김영자. 배두순. 이귀선. 유병만. 진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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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논을 빨래하는 시간 / 김민철

 

 

어린 벼가 여전히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 것일까

벼의 아랫도리에 잡초가

얼룩처럼 누렇게 묻어 있다

 

그때 우렁이는 세재 가루가 되어 논을 빤다

 

빨판으로 반점이 생긴 잎을 꾹꾹 누르고 펴고

소용돌이를 닮은 껍질로 물을 돌리고

가장자리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아직은 아이처럼 햇살과 놀기 좋아하는

벼의 목덜미에 남은 땀 냄새를 맡았을까

물에서 막 피어난 잡초줄기마저 세척하여

어둠조차 푸르게 만드는 우렁이,

 

오늘도 벼는 매일매일 깨끗한 빛깔을 입고

논물 위에서 살랑살랑 뛰어노는데

 

종종 하루 종일 빨래가 쌓이는 시간이 싫었다

새똥이 가슴팍에 붙어 떨어지지 않고

먹구름이 손발까지 검게 물들면

고무장갑과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우렁이는 논두렁 밖으로 나가 울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허리 근육이 얇은 할머니를 생각하며

갈비뼈 하나를 잃은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우렁이는 온몸을 적시며 기어이 빨래를 끝낸다

 

못줄의 간격을 기억하고 있는 벼들이

뽀송뽀송한 갈색 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한다.

 

 

 

 

[우수상] 제비 떠난 뒤 / 김완수

 

      

회로처럼 뒤엉킨 도시 한 귀퉁이에 새들이 세 들어 살기 시작했다 눈길도 들어가기 빠듯한 초가(草家)에 한 쌍의 새는 찢긴 꽁지들을 다 들여놓지 못했다 집주인의 완고한 눈길은 임대차 계약처럼 강퍅했겠지 간신히 노숙의 한시름을 놓은 집 제비들은 헐거운 현실에서 퍼덕거리며 여름 한철 공중에 얹혀살았다 공동(共同)의 사각(死角)에서 모성을 품고 집주인의 푸대접도 품은 새들 어린것들은 젖은 날개를 접을 새 없던 어미 가슴을 연방 후벼 팠고 가파른 비행(飛行)에서 막 돌아온 아비는 어린것들에게 약자의 처세를 가르쳤다 가끔씩 들리는 악다구니로 초가에 금이 갈수록 어미와 아비는 헤뜨며 서럽게 부둥켰다 그러던 새들이 소리 없이 짐을 쌌다 집 턱밑까지 차오르던 텃세에 한 어린것이 추락하고 난 뒤 잠깐 풍장을 치르던 새들은 오던 길로 망명하듯 날아갔다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을지 모르나 천적의 마음까지 품으려 한 순례였기에 나는 이르게 떠난 새들의 빈자리가 눈에 밟혔다 다시는 못 볼 것 같아 켕기는 객식구 마음이었을까 나는 이제야 폐가처럼 퇴락해 가는 집 아래에 빗더서서 새들이 저릿하게 갔을 길을 따라가 본다 공한지 같은 하늘엔 지상(地上)의 전세난을 비웃듯 구름 한 점 끼어 있지 않다 새들 삶이 무단 철거된 지 막막한 시간 계약 기간이 한참 남았어도 새들이 미련 없이 훌쩍 떠난 집엔 사람들 허세만 거미줄처럼 잔뜩 뒤엉켜 있는데

 

 

 

꿈꾸는 드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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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붉은 사슴들이 숲의 심장으로 뛰어들고 / 하수현

환상의 숲

 

 

1

 

숲속을 휘돌고 있는 파르스름한 기운에 대해 숲 아래 사람들은 잘 모른답니다 붉은 사슴들이 숲의 심장으로 소리 없이 뛰어들고 나무집 뒤 물푸레나무들 사이로 은밀한 바람이 드는 걸 그대 아시나요

 

숲속에 작은 초록빛 연못이 생긴 건 오래된 일이지요 연못 언저리에 튼실한 부들들이 초병(哨兵)처럼 항시 서 있고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피어나는 수상한 안개행렬은 스스로 백발(白髮)을 풀어 주변을 감싸준답니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알 수 없는 힘 때문에 나는 이 건강한 나무들의 세상 안에서 세상의 모든 기억을 잠시만 잊어 두기로 한답니다 잊으면 절대 안 되는 것들이라며 늘 손에 꼭 쥐고 있던 것들도 어차피 이 숲에 들면 나도 모르게 다 잊어버리고 말아요

 

그러니 한번 생각해 보세요,

 

도대체 숲속에서 무엇이

 

견고한 진리가 될 수 있겠어요

 

2

 

이 숲을 아는 사람들이 노란 수선화를 숲속에서 몰래 키우는 일과, 청춘의 나비들이 주변을 이미 점령하고 있는 걸 나는 다 알고 있지요 숲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숲이 안고 있는 어떤 신비와 비밀들에 대해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답니다

 

숲길을 걷고 있는 당신을

 

끝없는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 일도

 

그 책임은 오로지

 

처음부터 이 숲에 있답니다

 

환상의 숲이여, 안일한 내 일상을 보거든 언제든지 나를 깨워주어요 잠자고 있는 내 꿈을 보거든, 날개 접은 벌레마냥 내가 움츠린 때를 보거든 나를 무조건 흔들어 주어요 숲에서 숨 쉬고 있는 새벽이슬이여, 여름안개를 탄 채 항시 내 영혼을 주시하는, 살아 있는 숲의 눈동자여.

 

 

 

 

 

[심사평] 자연은 자연을 치유하는 공존의 생태계 원리의 핵심

 

평택 생태시 문학상에서 세운 심사기준은 인간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 인간에 의한 사회 환경 유린, 인간에 의한 인간 존엄성 상실상황에서 제생태계 질서 회복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위기의 생태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고발하고 비판하여 우리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있는 시인의 소리를 세상 사람들이 경청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그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심사요령은 사회에 문제 상황을 던지고 불평등질서에 대한 사회적 고발과 회복을 위한 노력, 제생태계 질서회복을 제시한 우수한 작품에 점수를 더 주었습니다. 모두 310분이 응모하였으며 총 작품 수는 2170편이었습니다.

 

먼저 대상을 수상한 김민철 시인의 <논을 빨래하는 시간>은 낯설기 기법을 구사하여 생태계의 문제 상황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 상황이란 자극을 통하여 자연치유로 회생(回生)되어가는 과정인데 이를 잘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할만합니다. 어린 아기로 치환된 ’, 우리의 오염된 생태환경인 ’, 논에서 벼가 건강한 생명을 가지고 생장하려면 반드시 중간자의 헌신이 필요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중간자가 바로 우렁이입니다. 우렁이의 알레고리는 자연을 치유하는 자연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본성임을 상기시키고 우리가 이와 같은 본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자연은 인간에 의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 농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허리근육이 얇은 할머니들과 갈비뼈 하나를 잃은 할아버지들입니다. 그들의 고달픈 농촌 지키기 여정은 우리 현대인들의 미래를 보여주는 시놉시스입니다. 논의 중간자인 우렁이, 사회로 말하면 중산층. 김민철 당선자는 이들의 건강성이 우리의 자연과 사회 생태계질서를 유지시키는 중핵이 됨을 은근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자연생태의 순환도 사회생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됩니다. 우수상을 수상한 김완수 시인의 <제비 떠난 뒤>도 무너져 내리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란 문제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회도 무질서와 혼돈적인 카오스에 휘말리면 붕괴되기 마련입니다.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역시 건강한 중간자들의 헌신입니다. 기득권자를 대표하는 텃새들. 그들의 횡포를 극복하는 제비부모들의 절박한 행동은 바로 우리 사회 어둑한 부분을 시놉시스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사회의 중추기능을 하고 있는 중산층들이 어느 사이 붕괴되어 경제적 궁핍한 좌표로 옮겨갔을 때 조화로운 사회, 살맛나는 사회의 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세상을 궁지에 몰아넣는 허세들만 도처에 거미줄처럼 뒤엉켜있을 것이란 끔직한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가작을 수상한 하수현의 <붉은 사슴들의 숲의 심장으로 뛰어들고-환상의 숲>은 자극을 통한 회복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붉은 사슴들과 숲은 심장>에서 심장 그 자체는 그 생명체를 존재하게 하는 중심이기 때문에 결코 무너질 수 없습니다. ‘심장이 무너지면 그 생명체는 삶을 종언하고 맙니다. 병이 들어간다는 것은 심장 그 자체가 고장이 난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기관들의 고장인 것입니다. 관상동맥 혹은 협심증 등인데, 바로 이들로 치환된 은유가 붉은 사슴들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숲의 건강성을 유지하게 하는 경락이며 혈 자리이고 생로(生路)이면서 동시에 병로(病路)입니다. 여기에 자극을 주면 다시 말해 붉은 사슴들이 건강하게 숲에서 뛰어논다면 숲의 심장은 계속하여 펌프질을 할 것이고 혈액을 각 기관 및 실핏줄까지 골고루 보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태계의 건강한 순환논리입니다. 이 순리의 주관자는 우리에게 영혼을 공급하는 살아있는 숲은 눈동자입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영원한 초월자를 은유하기도 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사회 생태환경의 구심점을 확실히 인식한다면 우리는 건강한 삶을 영위할 것이라고 시인은 희망적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 심사위원: 이귀선, 진춘석, 김영자, 배두순, 이태동, 한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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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의 파랑물 / 이병일

 

 

처음엔 나도 은빛 금빛 테를 두른 물금이었다고 한다. 나는 둥근 것들 속엔 장엄한 힘이 들어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방울방울 피는 공기방울소리로 빚어진 검은 수달이었으니, 무사의 칼만큼 화평한 해질녘의 수면을 더 좋아했다

 

파로호 전체가 꽃병으로 둥글어질 때였다. 나는 수면 위로 파문을 긋는 물갈퀴의 촉을 생각한다. 나를 깨울까 말까 하는 양수: 물비늘의 꿈을 떠올린다. 그때마다 나는 곡옥모양 물오리 발자국이 갈대숲에 드는 시간을 감지하게 되었다

 

파로호에는 발설되지 않은 수달의 사원이 있었다고 한다 버들치 꼬리에서 튀는 잔광들이 웅숭깊어진 시간, 나는 입안에 든 황복 뼈 몇 점에 목을 졸리기도 했다. 그러나 황쏘가리 눈알을 빼먹는 걸 편애한 나는, 그날그날 잠재운 물금이 넘치는 새벽에 태어났다고 한다

 

오늘도 나는 수평선이 언제 일월성신을 잠재우는지, 어느 순간 물고기가 물너울에 가슴 베이며 죽는지, 그 경계의 작은 평화에 대하여 생각한다. 나는 파로호를 지키기 위해 파랑물이 되었다. 저만치 나보다 한 뼘 웃자란 물수리가 공중에서 물속 세상의 나를 물위로 낚아 챌 때였다

 

 

 

[당선소감]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별빛에 묻어 빛나는 시월입니다. 고산지대부터 단풍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런 날에는 연필심이 저절로 시를 부릅니다. 제가 쓰는 시는 생태학 상상력으로 이뤄진 것들이 많습니다. 이 세계 속에서 같이 공존하고 살아가는 생명들은 작고 하찮은 것들이지만, 그들의 운명을 엿보고, 그들의 삶을 예감할 때, 저는 경이로움을 새삼스럽게 느끼곤 합니다. 1회 평택 생태시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받고, 저는 다시 한 번 충만한 생명의 세계를 열어 보일까 합니다.

 

오늘도 저 지평선 너머엔 어떤 생명들이 살고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예기치 않는 풍경들의 너머를 꿰뚫어보고, 생명이 약동하는 그 찰나의 시간을 움켜쥐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제 부족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고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기쁨을 꽃다발로 엮어 사랑하는 나의 아내 이소연과 아들 이서진에게 바칩니다. 고맙습니다.

 

 

 

 

옆구리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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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생태환경을 둘러싸고 있는원형직선의 투쟁사

 

이병일 시인의 세계를 향한 사유(思惟)의 흐름은 심오(深奧)하다. 화자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존재에 대한 인식의 전제는 둥근 것들 속엔 장엄한 힘이 있다이다. 둥근 것은 원형(圓形)이자 원()()이며 원()()()()이며 사계절의 순환(循環) 사이클이다. 곧 순리요 화평이며 화평은 평화다. 진정한 무사의 칼은 평화를 지키는 데 있다는 인식이다.

 

원형의 파로호 호수는 평화다. 그런데 그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수직의 직선들이다. 수직의 직선들이 평화로운 둥근 원형을 파괴하다. 원형은 둥글다. 둥근 것은 장엄한 힘이 있다. 장엄함은 비장함이다. 이는 푸른 생명성을 간직하여 온유함을 지향하며 끝없이 새로운 평화의 지평을 열어가고자 하는 열망이다. 원형 속에 꿈틀거리는 메시지는 자연의 환경이요 생산의 근원인 모태성인 것이다.

 

반면에 직선은 동적이다. 둥근 원형을 향해 돌진하여 그것을 파괴한다. 냉혹하다. 전투적이다. 이 직선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문명성을 상징한다. 생명과 평화의 기치를 숨기고 자연환경을 여지없이 공격하여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이러한 잔혹한 자연생태계질서의 파괴, 무질서, 혼란 등 그 투쟁의 현장에서 화자는 약자(弱者)이자 선()한 자의 편에서 물수리로 상징되는 강자(强者)의 공격을 온몸으로 저항하는 평화주의자, 박애주위자의 숭고한 최후를 보여줘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이병일시인은 관념적 철학적 사유와 비견할 만한 문학 사상(思想)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 생태시에 대한 한 차원 높은 고귀한 인식론적 철학적 가치를 구현시켰다고 하겠다.

 

이번에 당선된 파로호의 파랑물을 포함해 허인혜 시인의 녹조, 정미경 시인의 물소 우는 소리작품들은 인간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 인간에 의한 사회 환경 유린, 인간에 의한 인간 존엄성 상실 상황에서 제생태계 질서 회복을 제시한 탁월한 작품들이었다고 평가하며 제1평택 생태시 문학상심사평을 가름하고자 한다.

 

- 심사위원 : 김영자. 배두순. 이귀선. 이태동. 진춘석. 한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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