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백나무 울타리 / 송연숙
누가 아무도 없는 벌판에
측백나무 울타리 세워놓았나
안쪽도 바깥도 없는 그 울타리 드나들며
나는 안쪽에서 바깥을, 또 바깥에서
안쪽을 넘겨보거나 내다보곤 했다
또 아주 오래전 허물어진 옛집을 수습해서
울타리에 기대 놓았다
그럴 때면 앞마당과 뒤란이
저희들까지 순서를 정하곤 하였다
집을 품지 않은 울타리는 울타리가 아니어서 벌판에서 벌판으로 몇
천리 가면 기차가 떠나는 간이역이 있고 또 어느 쪽에서 몇 시간 동
안 그 기차를 타고 가면 어리둥절할 양떼들이 있다 양들에게 측백나
무 울타리에 관해 물으면 예전 자신들이 구름의 일족으로 흘러 다닐
때 언뜻 본 것도 같다는 말을 하였다
측백나무 울타리에
오래전에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운다
거미는 아침이슬로 기둥을 세우고 처마도 만드는데
머리가 먼저 이슬에 들어가 집을 짓는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둥근 배마저 이슬의 방을 하나씩 차지한다
안쪽도 바깥쪽도 없는 집
순서도 모서리도 신음도 만들지 않는 집
측백나무 울타리엔
거울 하나 둥실 매달려 있다
[당선소감] “당선소식 위로이자 충고 … 내 십자가 詩 끝까지 정진”
어제는 알레르기 쇼크로 사경을 헤매다 깨어났다. 낯선 병명을 되뇌다 보니 “아나(얘야) 필(감정) 락(즐거울) 시스(복수)”, “얘야 즐거운 감정을 많이 가지고 살아라”하는 생각이 기도의 응답처럼 딱하며 깨지는 호두알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은 적막의 시간을 먹여 키운 나의 시들이 “아나필락시스”하며 건네는 위로다. 또 예민한 시인의 눈을 가지고 정진하라는 호된 충고다. 시는 나의 십자가다.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갈 것이다. 스승님께 먼저 감사 올린다. 최돈선, 최승호 시인님, 박무웅 대표님과 시와표현 식구들, 한림대 문우님들, 강원여성 문인들, 두 딸, 심사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린다.
[심사평] 깊은 사유·상상력 풍부 … 예리한 관찰력 높이 평가
최종 논의된 작품은 이민주의 `그늘의 기원'과 전금례의 `코스모스는 코스모스만큼 흔들린다', 송연숙의 `측백나무 울타리'였다. `그늘의 기원'과 `코스모스는 코스모스만큼 흔들린다'는 함축적 시로 주지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있으나 시적 긴장감과 참신성이 결여된 것이 흠이었다. `측백나무 울타리' 외 4편의 작품은 고른 수준을 이뤘고 시적 사유의 깊이와 상상력이 풍부하며 사물을 관찰하는 시선이 예리하다. `측백나무 울타리'는 단면만 유지한 사회나 가정의 시대상을 암시한 시로도 읽힌다. 안쪽과 바깥쪽도 없는 집을 짓는 거미의 형상 같은 화자는 마치 키르케고르가 제시한 단독자의 외로움 혹은 생의 공허함을 표출해 내고 있다.
심사위원 : 이상국·이영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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