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펄은 천민이다 / 서상규
그녀는 불가촉천민이다
육지에서 흘러온 것들을 곱게 삭혀
온몸을 차진 자궁으로 펼쳤다
사리와 조금에 들고 나는 순리로
펄의 기운을 받아 생명들이 윤회한다
바다가 산도(産道)를 여는
썰물로 진흙 펄이 드러나는 때
수억 구멍에서 탄생의 율동이 일어난다
이때 별빛들도 맑은 눈을 떠
갯것들과 동성동본으로 빛살을 반짝인다
만삭으로 차오른 달의 인력에 따라
다산으로 열고 닫히는 개펄
어느 날 심장과 심장을 맞댄
육지와 개펄 사이 방파제가 쌓이고
대대로 없던 이름이 새겨진다
뭍에서 흘러드는 유기물이 없으므로
펄이 질펀한 생리혈이 막혀
배란 없는 불임이 깊어진다
바다가 썰물로 옷고름을 풀어도
그녀의 가슴은 열리지 않는다
빈 자궁 속에서 게가 게거품을 물고
조개가 입을 딱 벌리고 아사한다
바다도 산란의 보금자리를 잃어
물고기들을 품고 오지 않는다
하늘에 족보를 둔 신분 낮은 혈통으로
천민(天民)이며 천민(賤民)일 때
그녀는 살아 있었다.
[심사평] “생명 순환의 상호작용을 직시한 관찰과 배려”
인간은 왜 끊임없이 자연생태계 생명 순환의 질서를 무너뜨리는가? 물과 공기 작은 생명들의 연결 순환을 방해하면 언젠가는 공멸의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이에 인간은 공멸보다는 공존을 위하여 모든 자연생태계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시대적 사명감으로 시작한 『평택 생태시 문학상』이 벌써 제3회를 맞이하였다. 전국규모의 이 공모전에 응모한 사람들은 총325명으로 작 품수는 모두1075편이다. 응모자격을 두지 않고 기성 신인 모두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작금의 생태계를 함께 고민해보기로 하였으므로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여섯 명의 심사위원들은 예심과 본심의 과정을 거쳐 최종본심에 오른 여섯 명의 작품을 두고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여 당선작으로 서상규 시인의 ‘개펄은 천민이다’를 낙점했다.
당선작품의 기준으로는 평택 생태시가 지향하는 심사기준에 부합한 인간에 의한 자연생태 파괴, 환경파괴, 생명 순환질서 파괴, 인간 존엄성 상실 상황에서 재생태계 질서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생공존을 염려하는 시인들의 외침이 불꽃처럼 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두 번의 ‘평택 생태시 문학상’에서는 3명의 입선자를 뽑았으나 제3회부터는 당선자 1명으로 압축하였다. 이는 평택 생태시 문학상 당선작품에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당선작품 서상규 시인의 ‘개펄은 천민이다’를 살펴보면 생명 순환 이미지의 흐름이 유려하게 흘러가고 있다. 개펄을 불가촉천민의 천민으로 은유한 발상은 신선하다. 육지에서 흘러온 더러운 것들까지 받아들이고 삭혀내어 펄의 기운으로 새 생명을 잉태한 개펄, 자궁과 산도(産道)를 가진 여인에 비유하고 진행시키는, 어쩌면 낯익은 이야기일수도 있는 이야기를 낯선 표현으로 압도하고 있다. 질펀한 생리 혈이 막혀 배란 없는 불임이 깊어가는 개펄, 바다가 썰물로 옷고름을 풀어도 열리지 않는 시커먼 개펄의 가슴을 예리한 시선으로 찾아내어 염려하고 있다. 개펄은 모태다. 모태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포용과 사랑이 있다. 서상규 시인은 개펄 속에 굼틀거리는 생명의 메시지를 읽어내고 전달한다. 절실함과 애정이 깃들어 있다.
종종 회자되기도 하는 개펄이지만 서상규 시인의 개펄은 신선한 충격을 첨가한다. 이는 시인만의 독특하고 고고한 시적인식론을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하늘아래 모든 생명들은 모두 천민(天民)이며 천민(賤民)이라는 형이상학적 사유가 시 읽는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함께 보내온 ‘녹조에 물든 강’ ‘산은 다상성이다’ 역시 생태계 생명 순환의 중요성을 유려한 필치로 발려내고 있다. 세편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심사위원들의 낙점을 받아냈다.
최종 본심까지 올라온 작품은 ‘재활용 근처에서의 문답’ ‘어떤 싸움에 대한 기록’ ‘바다의 밥상’ ‘두더지 반 지하 신혼 방’ ‘생쌀 씹기’다. 모두 만만찮은 기량을 보여주었다.
제3회 『평택 생태시 문학상』에 응모한 모든 응모자들에게 감사드리며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위로를 보낸다.
- 심사위원: 권혁찬. 김영자. 배두순. 이귀선. 유병만. 진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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