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기둥 / 문보영
도서관에 간다. 밖에서 볼 땐 가로로 긴 직사각형이나 들어가면 첨탑이다. 높은 벽은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달았다. 너무 큰 창은 벽을 약하게 하며 창은 지나가는 것을 모두 수긍해버린다는 나의 생각이 틀렸다고, 도서관 사서인 에드몽 자베스는 말한다.
에드몽이 쓴 글라스의 왼쪽 알에 달린 얇은 줄은 어깨까지 드리운다. 이곳은 천장이 아주 높다, 생각하자 책을 높이 쌓아야 하니까, 에드몽이 대답한다 그는 램프의 뚜껑을 열어 기름을 채운 뒤 촛불을 켠다.
서가에는 책만이 있다 책들은 기둥 모양으로 쌓여 있다. 그 주변을 난쟁이들이 서성인다. 난쟁이들은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가로로 비틀어 책의 제목을 살핀다. 책기둥의 가장 아래쪽을 살핀다. 읽고 싶은 책은 늘 기둥의 가장 아래쪽에 있다 나는 읽고 싶은 책을 머릿속으로 떠올린다. 그러자 그 책은 기둥의 가장 아래 위치한다.
책기둥들은 어디론가 기울었다. 나는 기울어진 건물을 떠올린다. 피사의 사탑과 같이 똑바로 서지 못한 것들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것이 주는 감동은 책기둥이 주는 그것과 유사하다. 기우는 것은 어디론가 편향되니까 겉은 꼿꼿하나 안은 어디론가 치우친 인간의 몸을 떠올린다. 심장은 왼쪽으로, 간은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으므로 사람은 똑바로 걷는다. 기울어진 건물은 내부에 벽으로 치우쳐 자는 사람을 기른다, 는 내 생각을 읽은 에드몽이 나 대신 내 생각을 말한다.
그는 지팡이로 바닥에 널브러진 장서들을 옆으로 치우며 길을 만든다. 이따금 난쟁이들의 숱 없는 작은 머리를 지팡이로 내려친다. 난쟁이들이 독서에 집중하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그는, 책기둥에 등을 대고 앉아 책에 푹 빠진 난쟁이들만을 골라 때린다.
난쟁이들이 책기둥을 무너뜨리고 원하는 책을 얻는다. 다시 기둥을 쌓는다. 난쟁이들은 책을 때리고 책을 향해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붓는다. 그럴 만도 하다, 고 나는 생각한다. 책은 무례하니까. 책은 사랑을 앗아 가며 어디론가 사람을 치우치게 하니까. 벽만 바라봐서 벽을 약하게 만드니까. 벽에 창문을 뚫고 기어이 바깥을 넘보게 만드니까.
난쟁이들은 맨 아래 깔린 책을 얻기 위해 기둥을 무너뜨린다. 책은 쌓여 기둥이 된다. 기운다. 치우친다. 쏟아진다. 다시 쌓인다. 맨 아래 깔린 책을 읽으면 그 위에 쌓인 모든 책을 다 읽은 거나 다름없다고, 그 한 권의 책은 그 위에 쌓인 책들을 집약한다, 는 나의 생각이 안일하다고 에드몽은 꾸짖는다. 햇살이, 몇 가닥 되지 않는 얇고 구불구불한 난쟁이들의 머리칼에서 반짝인다. 빛이 그들의 오래된 생각을 때린다. 난쟁이들은 이제 지친 게 아니겠냐고 생각하는 나는 아직 책을 덜 읽었다, 고 에드몽이 말한다.
제36회 김수영문학상에 신예 시인 문보영(25)이 선정됐다.
30일 김수영 문학상을 주관하는 민음사는 "총 178명의 시인이 50편 이상의 시집 원고를 투고한 2017년 '김수영 문학상'에서 수상의 영예는 신예 시인 문보영이 가져갔다"고 밝혔다.
수상작은 '책 기둥' 외 52편이다. 고려대 교육학과 출신의 문 시인은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심사위원 김나영(문학평론가)은 "문보영 시의 담백하고도 에너지 넘치는 문장 이면에는 삶과 세상을 대하는 시인의 용기와 정직한 태도가 두텁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심사위원 조강석(문학평론가)은 "아쉬움과 결여조차 또 한 번 ‘배신’당하기를 희망할 만한 작품들이라는 것이 최종 결론"이라며 "또 하나의 사건이 되기를 희망하며 문보영 시인의 수상을 축하한다"고 전했다.
문 시인은 "별 이유 없이 시를 쓴다"며 "시를 쓰는 순간만 아프지 않고, 시를 쓰지 않는 나머지 시간이 너무 지루하다. 사람들은 손잡이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문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시를 쓸 때만큼은 사람의 무릎이나 겨드랑이 아니면 허벅지에 난 점 따위에 달린 작은 손잡이가 보이며, 열릴 리 없지만 왠지 열고 싶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수상작은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 9호에서 공개되며 수상 시집 '책 기둥'으로 만날 수 있다. 수상 시인에게는 상금 1000만 원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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