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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해협에서 / 공광규

- 유배일기 1

 

 

갯가 푸조나무 아래서 가을단풍을 등불삼아

향교에서 빌려온 <주자어류>를 읽다가 내려놓고

통무를 넣고 끓인 물메기국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해안을 한참 걸어가 만난 곳이 지족해협이라던가

연을 날리는 아이들과

굴과 게와 조개와 멍게를 건지고

갈치와 전어와 쭈꾸미를 잡는 노인들을 만나

이곳 풍물을 묻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갈대를 엮어 올린 낮은 지붕에는

삶은 멸치들이 은하수처럼 반짝거렸는데

떼 지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용과 같더군요

아하, 이곳에서는 멸치를 미르치라 부른다는데

미르라고 부르는 용의 새끼가 미르치 아닐는지요

미르라고 부르는 은하수 또한

이곳 바다에서 올라간 미르치의 떼가 아닐는지요

참나무 말뚝을 박은 죽방렴 아래에서는

남정네들이 흙탕물에 고인 멸치를 퍼 담고 있었습니다.

흙탕물 바가지에 담긴 멸치들을 보면서

인간의 영욕이라는 것이 밀물 썰물과 다르지 않고

정쟁政爭에서 화를 당하는 것은 빠른 물살을 만나

죽방렴에 갇히는 재앙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삶기고 말라가는 지붕 위의 멸치와 다름이 없는 이 몸은

남해의 물을 다 기울여도 씻지못한 누명이거늘*

오늘 밤, 밝은 스승과 어진 벗이 그리울 뿐입니다.

 

* <사씨남정기> 구절에서 인용

 

 

 

 

담장을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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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부문에서 본심에 오른 작품은 응모자 30인에 의한 226편이었다. 김만중 문학상 첫 공모인데도 불구하고 수준은 매우 높았다. 30인의 작품 중 아무것이나 잡고 당선작으로 하고 의미를 붙이면 그대로 이해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심사위원 두 사람이 집어든 작품들은 묘하게도 지향점이 일치했다. 아무리 자별난 묘사를 하고 내면 풍경 추적에 열심이어도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점이 무엇인가, 그 말하고자 하는 점을 시인이 통제하면서 마침내 말하고자 하는 바에 이르렀는가 하는 데 초점이 주어져 있었다. 그런 쪽에서 <서포 서한>, <움직이는 달>, <옷들>, <돌이 꽃 피는 순서>, <겨울 나그네>, <지족 해협에서> 등의 작품들이 관심의 표적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은 두 편은 <겨울 나그네> <지족 해협에서>( 6편 포함)였다.

 

<겨울 나그네>는 갈앉은 차분한 음성으로 순례하는 영혼의 장면들을 장시로 풀어갔다. 떠도는 의식, 이미지, 급할 것 없는 삶의 사연이나 단편들이 시인의 언술에 엮여져 있어 머물지 않는 순례의 길, 그 도정이 밝혀지고 있었다. 이 시에서 독자는 말한다는 것은 그 말 때문에 신뢰할 수 있음을 체험해낼 수 있을 것이다.

 

<지족 해협에서> 6편을 낸 응모자는 김만중을 소재로 한 7편의 유배일기를 썼다. 그러니까 일정 의도를 놓고 시를 써나갔다는 점에서 응모자의 평소 능력이 가장 잘 드러난 시편이라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합격점을 얻은 셈이다. 이 시를 쓰기 위해 지족해협이나 다랑이논이나 이재 선생 묘소, 노도, 망운산 등지를 돌면서 취재하고 사색한 그 노력이 십분 드러나고 있는데 말하자면 발로 쓴 시로서의 현장성이 돋보이는 것이었다. 특별히 각 편 주제의 안배도 눈여겨 둘 만했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살펴본 대로 시부문 당선작으로 <겨울 나그네> <지족해협에서> 6편을 일찌감치 골라놓고, 이들 작품을 쓴 응모자가 기성인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름이 밝혀져 기성이라면 망운산 높이로 든든할 것이고, 신인이라면 노도 앞바다 물결처럼 신선할 것이라 그렇게 기대되는 것이었다.

 

심사위원 : 강희근(경상대 명예교수),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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