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제사 / 박지웅
향이 반쯤 꺾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
열린 시간 위에 우리들 一家는 선다
음력 구월 모일, 어느 땅 밑을 드나들던 바람
조금 열어둔 문으로 아버지 들어서신다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어머니, 메 곁에 저분 매만지다 밀린 듯 일어나
탕을 갈아 오신다 촛불이 휜다 툭, 툭 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모은다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니는
아이들 말석에 세운다. 유리창에 코 박고 들어가자
있다가자 들리는 선친의 순한 이웃들
한쪽 무릎 세우고 편히 앉아 계시나 멀리 山도 편하다
향이 반쯤 꺾이면 우리들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엎드려 눈감으면 몸에 꼭 맞는 이 낮고 포근한,
곁
[당선소감] ‘詩의 길’ 목숨걸고 달릴 것
‘페르시아왕자’라는 게임이 있었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도저히 건너뛸 수 없는 벼랑이 나타난다.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 그 벼랑을 건너는 길은 어이없게도 그냥 달리는 것이었다. 달리면 그 허방에 길이 생기는 것이었다. 목숨을 걸 때 비로소 길은 몸을 내어주는, 시 앞에는 이런 투명한 길이 있고 그 의심을 견디게 해준 것은 시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러나 믿음이 월등히 강한 것만은 아니어서 나는 자주 추락하였다. 그때마다 나를 일으키고 부축해준 것은 노부모의 지성과 병고와 땅에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나를 일으킨 것은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 아니라 작고 초라한 사람들, 나는 병들고 지친 것을 먹고 일어났으니 우선 그들에게 백배사죄하고 그 발에 입맞추어야 한다.
아무리 나누어도 줄지 않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든 광주리를 받은 듯 든든한 한나절을 보내며 감사드려야할 선생님을 떠올리니 한두 분이 아니고 한두 군데가 아니다. 사방을 향해 절하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다만, 마음 둘 곳 없던 내게 서슴없이 책상자리를 내주었던 은영, 재훈, 추계문우, 내게 언제나 기쁨인 황금펜시문학회원들은 따로 적는다. 끝으로, 자발적 수난자를 응원해주신 문화일보와 난사뿐인 내 시의 가능성에 이름을 걸어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심사평] 감칠맛 나는 문장 묘한 울림
예심을 통과한 열다섯 명의 작품이 심사의 대상이 되었다.
예년과 비교해 볼 때 응모량이 크게 늘어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내용면에서는 전체적으로 삶의 궁핍과 고단함의 구체적 경험을 다룬 시가 의외로 많았다. 형식은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경향보다는 무난한 스타일이 대부분이었다.
신인다운 패기와 독특한 개성이 느껴지는 작품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아쉬운 일이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것은 박지웅과 노양식씨의 작품이었다. 노양식씨의 ‘푸른, 복어의 집’ 외 2편은 시적 형상화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에서는 주목을 받았으나 의미의 귀결이 단조로운 것이 흠이었다. 한 편의 시에 담겨야 하는 것은 분명한 결론이 아니라 음미할 만한 어떤 것이다. 이미지와 리듬, 사유 혹은 심리의 전개 과정, 그리고 말을 넘어서는 침묵과 여백까지, 그 모든 것이 언어예술로서의 시에서는 음미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박지웅씨의 ‘즐거운 제사 ’외 6편은 섬세하면서도 격조있는 언어감각으로 눈길을 끌었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삼색나물처럼 붙어다니는 아이들’ (즐거운 제사)에서 보듯 감칠맛이 나는 문장, 마음이 스며 있는 언어, 한 편의 묘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솜씨는 보기 드문 것이다.
다른 시 ‘대관령옛길’도 언어에 대한 빼어난 감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제 짝 앞에 찰랑거리는 곤줄박이의 저 맑은, 흥분/…/명자나무의 몹시 아름다운 한때’. 이견 없이 박지웅씨의 ‘즐거운 제사’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황동규 최승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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