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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향기 / 김은아

 

 

생선뼈만 남은 개 밥그릇에

개미가 아우성이다

시간이 지나자, 삶의 살을 뼈만 남긴 채

말라가는 빈 밥그릇에서

시간을 붙잡고 보시를 하는 중이다

 

한 때

거친 바다를 헤엄쳐

푸른 꿈을 키웠을 너

어쩌자고 사람들 입 속까지 들어와

피와 살이 되고 마침내 개 입에서

생을 마감하는 너에게서

제비꽃 향기가 난다

 

햇볕이 개 밥그릇을 헤집는데

생선뼈는 온 몸으로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다

 

비워라, 그릇

 

 

 

 

 

흰바람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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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언어를 주물렀던 시간들 소중한 내 인생의 동반자   

 

집안에 들어 앉아 있어도 허허로운 바람이 칼날같이 몸에 스미던 날, 길을 나섰다가 풍성하고 화려한 눈발을 만났다. 

 

누구에게라도 환한 인사를 건네고픈 때에 마침, 하늘이 내 어깨를 다독여주듯 하얀 눈이 내려앉았고 그 하얀 미소처럼 반가운 당선 소식을 들었다.  

 

지금은 폐강이 되어버린 광주여성발전센터에서 처음 문예창작 공부를 시작했다.  

 

늘, 꿈꾸며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시들은 언제나 나를 꿈틀거리게 했다.   

 

때론, 절망의 늪에서 헤매 일 때도 있었지만 묵정밭에 묻어 두었던 풀씨들이 하나 둘 싹이 나올 때의 기쁨은 산고 끝에 얻는 축복이었다.   늦게 시작한 공부가 운명처럼 다가와 내 언어의 뼈마디를 주물렀던 시간들, 

 

구석에 던져진 글들을 보며 미처 피어나지 못한 말들이 쌓여갈 때, 벼랑 끝에 혼자 서 있는 것 마냥 두려웠던 날들…

 

이 자리에 오기까지 가족들의 가슴 따뜻한 사랑이 있었기에 진심으로 고맙고, 나의 이 감성을 키워준, 바다 건너 늘 자식들을 위해 새벽 기도를 나가시는 고향에 계신 우리 엄마께, 이 영광을 드리고 싶습니다.

 

서툰 습작에 게으름 피울 때마다 귀한 말씀 해 주신 박경자 교수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늘 마음 아끼지 않고 용기 주셨던 김양기 교수님, 박한실 교수님, 이윤진 교수님, 강경호(시와사람)교수님께 감사를 드리며, 같이 공부했던 문우들과 해솔 문학 동료들에게 고맙고,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무거운 책임감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흔들리는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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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제비꽃향기' 이미지 전개 깔끔 시적 성취도 높은 작품들 많아  

 

제22회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작이 초등학교 6학년 학생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생을 비롯하여 60대 나이에 이르기까지 무려 883편이었다. 지역적으로도 과거 광주·전남 위주였던데 비해 호남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강원도에서부터 서울, 경기, 충청,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인 분포를 보여줘 서울 중심의 신문에 뒤지지 않는 뜨거운 호응을 보여주었다.  

 

신문사 측에서 요구한 심사 규정은 우선 표절 여부와 기성 문인으로서 문단 활동을 하고 있는 응모작은 심사에서 제외해달라는 거였다. 설령 심사위원이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당선되었더라도 후에 밝혀지면 당선을 취소하겠다는 뜻을 심사위원에게 강력하게 주지시켰다. 신문사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응모자의 정성과 노고를 생각하며 긴 시간 동안 심사에 임하면서 다음과 같은 작품들은 먼저 탈락시킬 수밖에 없었다.  

 

즉,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작품, 완성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습작, 탄식과 기도문 등 감정노출이 심한 작품, 수필 같은 산문과 시적 구별을 인식하지 못한 작품, 설익은 사회현실 비판, 이미지나 표현이 신선하지 못한 작품, 응모작품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작품, 그리고 자기만의 삶과 개성이 없이 미당이나 몇몇 유명 시인들, 특히 요즘 유행하는 젊은 시인들의 흉내나 냄새가 난 작품들이 그것이었다. 아울러 시가 지켜야 할 언어에의 경배심이 없이 함부로 언어를 다룬 작품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리하여 일단 걸러진 작품은 '송이도의 당산나무' 외 2편, '하모니카 소리' 외 5편, '폐화분(廢花盆)' 외 3편, '고추잠자리 길' 외 3편, '연탄' 외 2편, '하늘' 외 5편, '감나무 그림자' 외 3편, '제비꽃 향기' 외 3편, '헌책방 주인 고영감' 외 5편, '장미와 칸나 사이' 외 9편, '바람과 바람 사이' 외 3편, '계단을 끌고 다니는 여자' 외 7편, '살아있는 장례식' 외 3편, '아버지와 바다' 외 3편, '금강 슈퍼마켓' 외 4편이었다.  

 

이 중에서 다시 최종적으로 '폐화분(廢花盆)' 외 3편, '감나무 그림자' 외 3편, '바람과 바람 사이' 외 3편, '금강 슈퍼마켓' 외 4편, '아버지와 바다' 외 3편을 골랐다. 최종심에 오른 이 작품들은 한결같이 오랜 습작을 거친, 비록 한 두편 정도가 치열성이나 언어를 다루는 힘, 이미지의 조화라는 점에서 응모작의 일괄적인 균일성을 갖고 있지 못한 흠이 발견되었을지라도 당선작으로 뽑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적 성취도가 높은 작품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그래, 바로 이 작품이야!' 하고 추켜들 수 없는, 다소 머뭇거리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소재나 이미지 전개나 묘사나 언어를 다루는 면에 이르기까지 과거 신춘문예 당선작 또는 내가 읽었던 기성 시인들의 몸짓이나 말투와 많이도 닮아 보인다는 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예컨대 소재 면에서 폐타이어나 버려진 냉장고를 떠올리게 한다거나 소시민의 등장 같은 것, 표현 면에서 산문 투의 남발이나 요즘 한창 유행하는 일부 젊은 시인들의 흉내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 마침내 '제비꽃 향기' 외 3편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결정했다. 당선작인 '제비꽃 향기'는 우선 감정의 억제를 통한 이미지의 전개가 군더더기 설명이 없이 깔끔하다. 뿐만 아니라 '개 밥그릇'과 '개미'와 '햇볕'이 하나로 어우러져 '제비꽃 향기'를 뿜어내는 우주적 통찰력 또한 돋보인다. 특히 마지막 연인 '비워라, 그릇'은 이 작품의 시안(詩眼)에 해당하는 것으로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 같은 시인의 내적 통성 같아 든든하다. 물론 함께 응모한 다른 3편의 작품들도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이 시인의 시적 역량을 믿을 수 있게 한다.  

 

아쉽게 탈락한 분들께는 격려를, 당선한 시인에게는 축하를 보내며 당선작에서 보여준 시적 긴장처럼 이제부터 험난한 시의 여정이 새로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긴장해주길 당부하고 싶다.

 

심사위원 허형만 (목포대 국문과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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