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인주 묻은 태양의 행방 / 김종태

 

 

뉴타운 소문을 태우고 마을버스가 들어왔다

 

미숫가루처럼 흙먼지만 내려놓고 폐교를 한 바퀴 돌더니

 

제비처럼 고샅길을 빠져나갔다

 

언젠가부터 절개지 묵정밭엔 어린 의혹들이 심겨지기 시작했다 깨진 항아리 속에 갇혀있던 뻐꾸기 소리에 둔덕 까마중 몇, 복부인 같은 선글라스를 끼고 귀고리를 흔든다 전과자인양 담장 안을 기웃거리던 햇살, 굴다리 밑으로 잠입하고 배 밭으로 달려간 그림자 하나가 이른 아침부터 풍선 불 듯 바람의 평수를 후후- 부풀린다

 

두부장수 확성기에 귀를 열던 도토리들 일제히 상수리나무를 버린다 선거벽보 어지럽게 붙어있는 축대 아래, 사방치기 놀이를 하던 아이들 오후가 오랜만에 찾아온 밀짚모자 주위로 몰려든다

 

뻥튀기 소리에 놀란 해바라기, 발밑에 검은 태양들을 투투둑- 파종하고 늦게 외출한 채송화는 발뒤꿈치를 높이 꺼내 분꽃의 망설임을 흔든다 태양이 시작되면 빨간 인주통이 열렸다 몇 평 봄이 처분되는 계약서 그 끝, 마을경로당에선 코스모스와 금잔화가 형광빛 포스트잇처럼 끝도 없이 유예되고 있었다

 

이장 집 옆 모과나무가 늙은 귀띔이라도 들은 걸까 오래된 우물 속에다 노란 주먹을 툭툭 박았다 내가 헐값에 처분했던 그 시절 변두리 네온사인과 외딴집에 세를 든 귀뚜라미의 지하 방엔 오래도록 해가 들지 않았다 지난밤 거처를 잃은 두견새와 갑작스레 약수터에서 쫓겨난 달빛은 창문 틈에 허리가 끼어 아침까지 웅웅거렸다

 

누가 분실한 것일까

 

공사 중인 안테나처럼 힘껏 꼬리를 세운 고양이 한 마리

 

방금 눌러 찍은 붉은 태양이 채 마르지도 않은 부동산 계약서를 입에 물고서

 

인적 드문 논밭을 검은 천 조각처럼 가로질러 어디론가 재빨리 구겨지고 있다

 

 

 

 

 

[당선소감] “앞으로는 내가 세상을 로 위로할 차례

 

패딩점퍼처럼 눈을 껴입은 세상이 고딕체로 서 있었다. 애타게 기다리던 삶의 목록들이 연착되고 있었다. 측은지심의 영혼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시 쓰기. 내 가냘픈 노래는 원고지 속에서 자주 익사했다. 악보의 실루엣이 보이면 음정이 삐걱거렸다. 부러지고 흔들리는 것들이 시가 된다고 믿었기에 앞만 보고 계속 노를 저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몇 년 전의 내가 나에게 웃으며 손을 내민다. 살고 싶어서 시의 소맷자락을 간절히 붙들었다. 시는 나를 살려주시려고 보내준 그분의 언약궤였다. 이제는 내가 세상을 위로할 차례이다.

 

한 시도 의 램프를 끄지 않는 시시각각(詩視刻各) 스승님과 따뜻하고 치열했던 나의 도반들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치지 않도록 응원해준 아내와 두원, 예은 고맙고 사랑합니다. 지난해 하늘로 가신 어머니, 늘 막내아들을 자랑스럽게 믿어주셨는데, 하늘 향해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벼랑 끝에 선 제 시의 손을 기꺼이 잡아주신 전북문인협회장 김영 시인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마음이 춥고 외로운 이들에게 손난로가 되어줄 그런 시로 보답하겠습니다.

 

 

 

 

11번가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2022 전북도민일보의 신춘문예 응모작을 읽는 시간은 어떻게 시를 써야 울림이 깊은가에 대해 다시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천 편이 넘는 응모작에는 막 시를 쓰기 시작한 듯한 사람의 작품도 있었고, 시적 완성도와 문장의 긴밀도가 만만치 않은 작품도 있었다.

 

각주와 외래어가 난무하는 작품과 언어의 유기적인 연결이 아쉬운 작품도 많았다. 패기나 참신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적었고, 그만그만한 내용이나 익숙한 수사가 버무려진 작품도 많았다.

 

주제 면에서는 개인의 서정을 노래한 작품부터 시대의 불합리에 대한 작품까지 스펙트럼이 넓었다. 시국의 영향인지 사회의 어두운 면과 개인의 어두운 시간을 직조한 작품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최종까지 남은 작품으로 김선호 님의 빙하의 숲을 걷다’, 조희 님의 파울라가 있는 풍경과 김종태 님의 인주 묻은 태양의 행방’, 장성희 님의 폭우’, 김수형의 포스트잇이었다.

 

모두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었으나, 제목이 내용을 끌고 가지 못하거나 내용이 제목을 받쳐주지 못하기도 했다. 시상을 직조하는 솜씨가 매끄럽지 못하기도 하고 제출 작품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조희 님의 파울라가 있는 풍경이었다. 시상을 전개하는 힘이나 주제를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이 좋았으나 아쉽게 되었다. 조금 더 힘을 내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김종태 님의 인주 묻은 태양의 행방은 자신만의 언어로 시대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수준급이다. 삶의 현실에서 시의 뿌리가 발아했으나 주관에 휩쓸리지 않고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는 솜씨가 시의 밭을 오래 가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도 고른 수준을 보인 점과 앞으로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심사위원 김영(시인, 전북문학관장)

 
 
728x90

 

 

책등의 내재율 /  엄세원 

 

 

까치발로 서서 책 빼내다가

몇 권이 기우뚱 쏟아졌다

중력도 소통이라고 엎어진 책등이

시선을 붙들고 있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햇살이

배슥이 꽂혀와 반짝인다 정적을 가늠하며

되비추는 만화경 같은 긴 여운,

나는 잠시 일긋일긋 흔들린다 

 

벽장에 가득 꽂힌 책제목 어딘가에

나의 감정도 배정되었을까

곁눈질하다 빠져들었던 문장을 생각한다 

 

감각이거나 쾌락이거나 그날 기분에 따라

수십 번 읽어도 알 수 없는

나라는 책 한 권,

이 오후에 봉인된 것인지

추스르는 페이지마다 깊숙이 서려 있다 

 

벽 이면을 온통 차지한 책등

그들만의 숨소리를 듣는다

어둠을 즐기는 안쪽 서늘한 밀착, 이즈음은 

 

표지가 서로의 경계에서 샐기죽 기울 때

몸 안의 단어들이 압사되는 상상,

책갈피 속 한 송이 압화 같은 나는

허름하고 시린 과거이거나 목록이다 

 

나는 쏟아진 책을 주워 천천히 넘겨본다

벽은 참 출출한 비결(祕訣)이다

 

 

 

[당선소감] 

당선 소식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기쁘다. 올해의 기념으로 소양강이 내 품에 안기는 듯 했다. 카메라 속 한 컷이 마치 내 안을 담아낸 것 같아서 손끝이 아렸다. 하늘은 가만히 제 갈 길을 가는데, 나 혼자 별이었다가 구름이었다가 눈비가 되었던 적 있었다. 강이 품을 만큼만 여울을 남기듯, 이제 나는 물속에 잠긴 나무에서 수심을 덜어내야 한다. 얼마 전 다친 아들의 손을 이슥하도록 잡아주어야 한다. 푸른 건물 유리창 너머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그가 강물에 비친다. 당선의 기쁨이 아들과 나의 아픔을 천천히 거두어가고 있다고. 

초석잠 자는 저를 밖으로 끌어주신 이영춘 선생님, 덤벙주초에 맞춰 詩살이 하는 저를 격려해주시는 중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교수님들 문우님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윤성택 마경덕 이종섶 선생님께도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시클 감사드리고, 같이 공부하는 문우님들, 중대포엣 식구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묵묵히 뒤에서 글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남편과 주석 주화 고맙습니다. 전북도민일보, 제 부족한 작품을 심사해주신 소재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더 정진하는 마음으로 시로써 따뜻해지겠습니다. 


 

 

 

11번가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 작품들 중에는 우수 작품이 많았다. 경향각지에서 모인 문재(文才)들의 재주가 예리하게 빛났다. 특히 「물다리기」「손말」「고수동굴에서」「멀티플렉스 상영관」「풍욕」「대장간 온도계」「코스모스」「마트료시카」등이 시의 품격을 높였다.

여러 편 중에서 「책등의 내재율」을 최종심에서 제일 좋은 작품으로 뽑고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은 발상부터가 참신했다. 그리고 구사하는 시어들이 신선했으며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적절한 알레고리를 설정한 점이 좋았다.

‘책등’은 책의 제목이 새겨진 책의 모서리 표상인데, 이를 ‘내재율’이란 어휘로 묶어 놓아 어휘 상호간 절묘한 아이러니를 품는다.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의미의 외연과 책의 안 섶에 꽂힌 섬세한 율성(律性)을 결부시키는 조합은 시의 상징화에 기여한다. 책들은 상호 연대하여 어둠을 빚고 다시 어둔 벽과 암유된 정서를 공유한다. 미명(未明)의 책 갈피갈피는 시적 자아의 생(生)으로 융합을 꾀한다. 감춰진 책 속의 비의는 자아의 잠재의식과도 연계된다. 자아의 감성과 지성의 영혼은 책 속에 압화(押花)로 묻혀 있다가 서서히 빛에게로 나아간다. 출출한 비결(秘訣)이다. 

심사위원 소재호(시인, 문학평론가)

 

 

 

 

728x90

 

 

인디고* / 박은영-

 

 

빈티지 구제옷가게,

물 빠진 청바지들이 행거에 걸려 있다

목숨보다 질긴 허물들

한때, 저 하의 속에는 살 연한 애벌레가 살았다

세상 모든 얼룩은 블루보다 옅은 색

짙푸른 배경을 가진 외침은 닳지 않았다

통 좁은 골목에서 걷어차이고 뒹굴고 밟힐 때면

멍드는 건 속살이었다

사랑과 명예와 이름을 잃고 돌아서던 밤과

태양을 좇아도 밝아오지 않던 정의와

기장이 길어 끌려가던

울분의 새벽을 블루 안쪽으로 감추고

질기게 버텨낸 것이다

인디고는

인내와 견디고의 합성어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

애벌레들은 청춘의 옷을 벗어야 한다

질긴 허물을 찢고 맨살을 드러내는

각선의 방식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대생들이

세상을 물들이며 흘러가는 저녁의 밑단

빈티지가게는

어둠을 늘려 찢어진 역사를 수선하고

물 빠진 허물,

그 속에 살았던 푸른 몸은 에덴의 동쪽으로 가고 있을까

청바지 무릎이 주먹모양으로 튀어나와 있다

한 시대를 개척한 흔적이다

 

*인디고: 청색염료.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nefing.com

 

 

[당선소감]

 

일흔다섯을 바라보는 아버지, 뒤꼍에서 톱질을 하고 계신다. 이 산 저 산에서 모은 고사목의 곁가지를 잘라내고 같은 크기로 토막을 내는 동안 목장갑 낀 손으로 허리를 두드리고 이내 가쁜 숨을 돌리고……돌이켜보니, 아버지의 그 넓던 어깨가 오그라들도록 나는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불효막심하게 시만 썼구나. 내 시가 화목보일러 숯불보다 뜨겁기를 바라며 누군가의 가슴을 덥혀 주리라 고집하며, 아궁이에 들어가면 흔적도 없이 타버릴 종이를 끌어안고 말이다. 겨울이 돌아올 때마다 방은 춥지 않느냐는 말로 불쏘시개를 대신하던 아버지, 노송가피 같은 손등과 톱밥 묻은 눈 밑과 근심으로 얼룩진 옷소매가 이제야 보이는 것이다.

 

당선소식을 듣고, 나 대신 주변 사람들이 울어주었다. 좌골이 닳도록 기도로 밀어주신 엄마, 언제나 소녀 같은 언니,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 오빠, 사랑하는 조카들, 함께 동행해준 기독교시동인님들, 나주안디옥교회 일당백의 성도님들……그리고 나의 아들아! 네가 내 속에서 나와 세상 앞에 굴하지 않고 멋지게 헤쳐 나가는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힘들 땐 하늘을 바라보라는 약속, 잊지 말자.

 

문을 두드린 지 열두 해다. 소재호 석정문학회 회장님께서 감사하게도 문을 열어주셨다. 앞으로 겨우살이 땔감을 준비하는 노부의 마음으로 시를 써야겠다. 하지만 결코, 추운 이들의 가슴에 군불을 지필 수 없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테를 가졌다는 것이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 한 장의 시간보다 길게 불꽃을 피워 올려 언 손이라도 녹여줄 시집 한 권을 남겨보리라 다짐해본다. 재능보다 인내를 주신, 가장 낮고 작고 천한 자의 주인인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린다.

 

 

 

 

[심사평]

 

금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는 170여명에 500여 작품이 응모되어 팽팽한 경쟁을 보였다. 신춘문예에 응모되는 작품들은 대개가 작가들의 무한한 문학적 체험과 연마를 거쳐 정제된 산물이어서 이미 시의 품격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이번 응모된 작품들 중에서는 시제 인디고’‘그림자는 저체온증’‘지렁이 다비식’‘필사의 밤’‘ 주홍날개꽃개미’‘북해의 공작시간등에 시선이 매우 끌렸다. 모두 시적 체제는 잘 갖추어져 있었다.그러니까 이 작품들이 최종심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약간씩의 아쉬운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인디고는 수준이 매우 높아서 당선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인디고는 쪽에서 나온 남색이라 했다.색깔을 시 제목으로 내거는 자체부터가 이미 범상함을 벗는다.이 시는 역사적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절제된 감성으로 주조된 서정성을 바탕으로 어둔시대를 견인하는 서사적 정경이 오버랩된다.블루의 색소가 인상적으로 내비치며 인상파 그림의 구도와 명암이 쉬르리얼리즘의 경역도 넘나든다. 제재들은 자꾸 대칭하며 조화해 가는,아이러니와 패러독스가 시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청춘이 선호하는 낡은 청바지...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그리고 얼마나 심대한 이미지의 부딪침인가.

 

현대의 세대가 옛 세대를 끌고 와서 한 시공에 두어 충돌과 융합을 자아낸다. 결기 높은 시이다. 청바지는 낡아서 무릎이 나와야 한다. 이 청바지는 그대로 상징성의 총화이다.

 

동서양의 만남이며 이는 또한 시공을 달리한 문화의 충돌이자 혼융이다. 이 때 하의 속 애벌레가 절묘한 시점에 등장한다. 애벌레는 장차 성충이 될 터이다.매미처럼 어둠을 털고 일어나 허물을 벗고 마침내 푸른 미래의 하늘을 날 것이다.

 

어둠을 늘려 찢어진 역사를 수선하고...한 시대를 개척한 흔적의 시구가 청바지에 얼마나 적확하게 부합하는가.

 

심사위원 소재호 시인·문학평론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