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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랫줄 저편 / 장정욱

 

 

질긴 죄목이었다

 

젖은 아이를 안고

무지개가 이어진 계단을 올랐다

 

아이의 입이 지워졌다

 

울음을 모르는 입에서

뚝뚝

 

이승의 끝과 끝이

파르르 떨렸다

 

환청의 기저귀를 채우고

빈 젖을 물리고

 

젖지 않는 오줌

아물지 않는 배꼽

 

무지개가 늘어지지 않도록

바지랑대를 세워

높이

아이를 널었다

 

 

 

 

빨랫줄 저편

 

nefing.com

 

 

 

[심사평] 절실한 상처의 기록

 

본심에 오른 서른아홉 분의 응모작들을 심의하여, 20<수주문학상>의 수상자를 가리는 것이 선자들의 소임이었다. 서정성 짙은 가편(佳篇)들이 주를 이룬 가운데 실험을 앞세운 역작들 또한 적지 않아서, 심사는 즐겁지만 고심 어린 작업이 되었다. 필요 이상으로 분량이 많아 산만해진 작품군, 묘사와 상상의 적절한 균형을 기하지 못한 경우들, 너무 낡았거나 너무 기발한 것에 관심이 치우쳐 작시(作詩)의 의의를 찾기 어려운 사례들을 검토하는 가운데 다섯 분의 작품이 마지막으로 손에 남았다. 이들을 놓고 숙의를 거듭한 끝에, <빨랫줄 저편> 4편을 응모한 장정욱 시인을 수상자로 결정하였다.

 

<서리태> 4편을 응모하신 분은 자연물을 관찰하고 거기 상념을 섞어 삶의 지혜로 바꾸어낸다. 몇몇 작품들에서 옳은 말을 익숙한 방식으로 거듭 개진하는 무난함이 느껴졌다. <나사를 위한 협주곡> 4편은 흥미진진했다. 노동이 소외를 거쳐 주체의 분열에 이르는 과정을 개성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천착하고 있다. 이 공모의 안정적이고 정격적인 심사 틀에 개의치 말았으면 한다. <망치질하는 사람> 4편에서 현실과 꿈, 사실과 비사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민한 감각과 심리의 변동을 조율하는 언어의 힘이 느껴졌다. 여러모로 매력적이었으나, 이 분에게 더 어울리는 다른 무대가 있을 것이다. <동태는 오일장으로 회귀한다> 4편은 끈기 있는 언어 세공, 섬세한 의고(擬古) 취향이 눈길을 끌었다. 기교가 승하고 미문의식이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빨랫줄 저편>4편은 시가 절실한 상처의 기록에서 출발함을 확인시켜주는 사례이다. 내면에 박힌 기억의 파편들을 섬세한 언어 감각과 적절한 비유로 정교하게 들추어낸다. <빨랫줄 저편>은 빨래 너는 행위와 초혼의식을 절제된 정념으로 응축해낸 인상적인 작품이다. 시상 전개가 번거롭지 않고 사물과 말의 선택이 빈틈없고 순조롭다. "무지개가 늘어지지 않도록/ 바지랑대를 세워/ 높이/ 아이를 널었다"는 결구는 별 기교 없이도 슬픈 전율을 선사한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에도 고된 연마의 자취가 엿보였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이영광(시인)

 

 

예심을 거쳐 올라온 시들 중에는 참신한 시각과 인식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았다. 그러한 시들이 최종적으로 선택될 수 없었던 것은, 시적 발상을 끝까지 탄력 있게 끌고 나가는 힘이 부족했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겠다.

 

<한차례>, <서리태 콩>, <울렁거리는 나선>을 쓴 응모자는 관념을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하는 데 뛰어났고, 위트도 있었다. 그러나 <한차례>의 경우, 반짝이는 1, 2, 3연에 비해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이 흐트러졌고, 그것은 시가 설명적이 되거나 상투성을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울렁거리는 나선> 은 시적 형상화가 뛰어났으나, “잘못 그린 나선의 상징이 약한 점이 아쉬웠다. <망치질하는 사람>의 응모자에게서도 여러 모로 시인의 자질을 느낄 수 있었으나, 평이한 주장이나 상투적 전개가 종종 눈에 띄었다. 이 밖에도 <처방전>, <아버지와 탁주>, <나사를 위한 협주곡> 외 다수의 응모작이 시선을 끌었으나, 전체 응모작의 완성도를 통해 평균적인 작품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당선작인 <빨랫줄 저편>을 쓴 응모자는 투고한 시들이 가장 고른 수준을 보였으며, 완성도 역시 높았다. 특히 <빨랫줄 저편>은 우리 민족에게 아물지 않을 상처로 남은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시를 쓴 사람의 개성적인 감각에 상상력이 더해져 짧지만 울림이 크다. 그러나 환청의 기저귀” “젖지 않는 오줌처럼 시의 맛을 감소시키는 표현을 덜어내거나 구체화시키지 않은 점은 아쉽다.

 

시란 온갖 욕망이 난무하는 거친 세상에서 외부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중심축을 견지하며 차분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언술 형태이다. 그처럼 가련(!)하나 당당하고 짜릿한 세계에 한 발 더 들어온 당선자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 심사위원 조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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