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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장樹木葬 / 안영선

 


꿈꾸는 후생後生이 나무 밑으로 스며들었지
푸석한 잔디가 밑동을 덮는 동안
단풍나무의 풋풋한 기억은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어
그늘을 늘이던 모난 가지는 툭툭 잘려나갔어
오래 묵은 옹이는 환부의 딱지처럼 단단해졌지
뿌리 깊은 생장점은
번식의 촉수처럼 유골의 온기를 쫓고,
촉촉하던 물관은 모세혈관을 만들겠지
나이테는 표찰에 적힌 나이를 헤아렸어
나무의 눈이 동물성으로 반짝이기 시작했지
수십 수백의 영혼이 수군거리는 저곳,
한때는 물길과 바람이 관장하는 초식의 영토였어
뿌리와 가지와 그늘로 영역을 표시하던 수목,
유골의 따뜻한 체온은
나무의 이면에서 부활을 꿈꿨지
나무는 죽음의 영역을 넓혔고
유골에 덮힌 나무는 공중에 붉은 표식을 남겼지

 

 

 

 

춘몽은 더 독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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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진정성 있는 삶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더위에 지친 오후, 낯선 전화에 넋이 나갔습니다. 전화 한 통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습니다. 순간 텅 빈 하늘을 잠시나마 훨훨 날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어깨 위에서 무거운 멍에가 온몸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의 무게이겠지요?

 

늘 멀게만 느껴졌던 시의 길. 때로는 그 끈을 슬쩍 놓기도 했었고, 다른 길을 찾아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년의 꿈을 접지 않은 것이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버거운 시의 무게가 즐거운 일상 속에서 공존 공생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언제나 부족한 제게 시안을 열어주신 김윤배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힘없이 돌아설 때마다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김종경, 박후기 시인, 등단의 꿈을 이루도록 묵묵히 기다려준 용인문학회의 사랑하는 문우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끝으로 부족한 작품을 끝까지 읽어주시고 문단의 길을 펼쳐 주신 유성호, 이경철 심사위원님과 귀한 지면을 열어주신 문학의 오늘에도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진정성 있는 삶을 담아낼 수 있는 시를 쓰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살아 있는 문학여행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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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계간 문학의 오늘 신인상 공모 시 부문에는 모두 178명의 신인 지망생들이 응모작을 보내 왔다. 문단 내외에서 가지는 이러한 커다란 관심은 계간 문학의 오늘이 가지는 매체적 위상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첫 신인상 모집에 이렇게 많이 투고해 주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투고된 작품들을 거듭 읽으면서 심사위원들은 개성적 어법과 향상 그리고 주제 의식에서 남다른 성취를 보인 시편들에 깊이 주목하였고, 더불어 작품의 완결성과 주제의 진정성을 주요한 기준으로 삼아 안영선 씨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안영선 씨의 작품들은 감각의 구체성과 진정성이 남다른 밀도와 언어를 동반하며 펼쳐진 가편들이었다. 가령 수목장의 경우, 후생의 꿈과 지상의 기억이 나무를 둘러싸고 결속하면서 펼쳐내는 표식이 매우 구체적인 상상력의 그물을 보여주었다고 판단하였다. 갯벌의 경우에는 생태적 사유와 인생론적 고백을 선명한 바다 심상으로 구체화하였고, 더덕북어 」 「벽을 오르다」 「만월 등에서도 삶의 신산함과 자연 사물들이 겪어내는 시간들에 대한 치밀하고도 개성적인 관찰과 유비를 보여주었다고 판단된다. 안영선 씨의 강점은 지나온 시간의 진정성을 일방적인 회감의 시법에 싣지 않고, 사물의 구체성과 감각의 다층성으로 우회하고 간접화하는 형상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심사위원들은 배귀선 씨의 작품들을 우수상으로 뽑기로 합의하였다. 대상에 오르지는 않았으나 개성적인 사유와 감각이 우수상으로서 가지는 격려의 몫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특별히 종이 십자가에 나타난 공동체적 감각과 시간의 흐름에 대한 사유는 만만찮은 시간 동안의 관찰과 적실한 유비, 그리고 낱낱 어휘의 적절성을 두루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른 작품에서도 방언을 비롯한 말의 구체적 활용 가능성에 대한 역량 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이분들의 시편은 저마다 고유한 경험을 자산으로 삼으면서, 오랜 습작의 시간을 깊숙이 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특정 유행 담론을 추구하지 않고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들이고 있어 매우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거듭 대상과 우수상 결정을 축하드리며, 신인다운 개성과 시인으로서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준 안영선 씨와 배귀선 씨의 시편이 더욱 깊은 진경으로 나아가기를 크게 기대해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 이경철(시인, 문학평론가), 유성호(문학평론가, 대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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