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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내 무릎 좀 고쳐다오 / 심승혁

 

 

나의 어린 시절을 업었던 무릎이 휘었다

 

숨의 무거움 따위 아무렇지도 않았기에

사는 것을 향해 부지런히 꿇었을 그,

 

이마의 주름이 물결무늬로 흘러내려도

하얀 웃음으로 속여왔던 그,

 

무릎이 휘었다

 

가슴에 묻고 지낸 시간을

더 이상은 이겨낼 수 없는 그 한마디가

겨우 무릎뿐일까 싶은 말이 뒤뚱댄다

 

낮은 울음의 허기진 눈물 한 방울

오열의 열꽃으로 팽팽히 그 무릎에 피워낸다면

훌쩍 커지는 당신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를 말이 뛴다

 

칠십이라는 무게에 눌려 색 바랜 머리를 이고

하얀 침대 위에 얌전히 다리를 모으고 앉아

무엇이 그리도 미안한지

대체 뭐가 그리 죄라고

작고 동그란 눈물이 범람해 나를 무너뜨린 그 말,

 

"내 무릎 좀 고쳐다오"

 

 

 

 

 

수평을 찾느라 흠뻑 젖는 그런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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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노루발 / 이춘희

- 어머니 재봉틀 앞에서

 

 

노루가 뛰어다니던 방에서 자랐다

 

엄마는 늘 뒷모습으로 기억되는데, 들들들 노루발 소리가 자연 숙제의 정답 칸에 자주 뛰어다녔다 방안은 음지였지만 노루발 근처는 언제나 환했다 온갖 천이 노루발 속으로 밀려들어가는 아침이면 집 부근에는 흰 눈을 박으며 간 노루발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아마도 봄은 그 자국이 끝나는 곳에 있을 것 같았다 옷 모서리가 새로운 방향을 틀 때마다 오솔길과 미끄러운 실개천을 건널 때마다 봄날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사향노루의 꽁무늬향기가 났다 눈 걸친 바람꽃이 햇살에 미행당하는 언덕배기에서 환한 구름을 날래게 내닫다 힐끔힐끔 뒤돌아본다는 노루

 

엄마는 어깨를 숙이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다 뿔을 양보한 곳에 수컷을 두고 빠른 질주력으로 끝없이 뛰는 노루발을 쫓느라 어떤 날은 계절을 깊이 역류하다가 낯선 모퉁이에서 곤두박질을 쳤다 동굴 같은 구덩이 뚫리고 멍든 살 속에 돌멩이가 박혔다

 

온순해서 풀만 씹으며 느슨한 노루발 같던 엄마는 일생 노루를 잡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무작정 따라 나디고 싶었던 걸까 무심히 풀어 놓은 허름한 나날들을 또 달리 화사한 무늬로 지어놓곤 했지만 선명한 실밥자국 욱신거리는 앞섶들을 떠나 지금은 먼 산 속에 은둔 중인, 노루가 지나간 아침이면 눈발은 한 벌 두툼한 외투가 된다

 

지난 계절을 기운 헝클어진 날씨가

푹신한 옷으로 가지런히 개어져 있는,

 

 

 

 

 

효 사상 함양과 세계화를 위해 열리는 10회 백교문학상대상에 양승복(65·충북 청주)씨의 수필 남포등이 선정됐다.

 

강릉문화재단(이사장 김한근)과 백교효문화선양회(이사장 권혁승)가 공동주최한 이번 대회 우수상은 심승혁(49·강릉)씨의 시 내 무릎 좀 고쳐다오’,황진숙(44·충남 예산)의 수필 풀무’, 이춘희(68·대전)씨의 노루발이 각각 뽑혔다.

 

대상에 선정된 양 씨의 수필 남포등은 초등학교 교장직을 26년간 지냈고 평생 일기를 써왔던 치매환자 아버지를 돌본 딸의 애틋한 마음이 그려진 작품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회한, 그리움을 차분한 필치로 그려낸 점을 호평을 받았다. 대회 측은 맑게 닦은 등피를 씌운 남포등처럼 세상을 밝고 곧게 사신 아버지의 삶을 반추하는 딸의 시선에서 효가 무엇인지 느끼게 한다고 평했다.

 

시상식은 오는 10122018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성화 모자(母子) 봉송을 했던 강릉 경포 핸다리마을의 사모정공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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