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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가 있는 풍경 / 노동주  

 

 

시소는 늘 기울어 투석기처럼
한쪽 팔을 바닥에 떨구고 있다
빈둥거리는 그 사내의 엉덩이가 얼마나 무거울까
쏘아 올리기에는 시소의 두 팔이 너무 길다
곤장이라도 맞은 듯 매번 엎어져 있다

사내도 굄돌처럼 하늘을 인 듯 무겁다
햇빛 그늘진 저 받침점이란 건 뭔가? 가슴팍에
점 아닌 섬처럼 박힌 저것
누구도 그 중심에 안착해 본 적 없다
시소는 늘 중심을 빗나간 기웃거림의 형식으로
흔들리며 웃고 운다, 끽끽거린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할머니가 가볍게 시소에 앉는다
브라보콘을 흘리는 일곱 살의 오후가 번쩍 들린다
그 기울어진 시소의 경사면을 따라
문득 이삿짐 트럭이 오르고 영구차가 내려간다
눈길에 미끄러지는 출근길이 열리고
이부자리에 맨발을 모으는 저녁 냄새가 피어오르기도 한다

사내의 엉덩이도 시큰거린다
중심으로부터 몸이 무거울수록 가깝게
가벼울수록 멀리 앉는 게 균형을 맞추는 법이라지만
늘 빈손인 사내는 거구여도 뒷자리에 앉고
천근의 추를 몸에 단 흐릿한 얼굴은 맞은편에 앉았다 간다

시소는 땅 속에 처박히거나
아니면 나무처럼 직립하고 싶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곗바늘처럼 좌우로 훅훅 언젠가 돌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가 뭐래도 진짜 시소의 균형이란
때를 기다리는 것, 엉덩이 짓무르도록
방아를 찧을 때마다 꺽꺽 시소가 울고 있다

 

 

 

 

[당선소감] "문우들에 대한 고마움 잊지 않겠다"

 

경적이 울립니다. 뒤돌아보니 택시입니다. 혹시나 싶어 앞사람 등짝에 툭 던지는 소리, 그 생활의 방식을 ‘시’라 믿습니다. 굳게 뒤돌아선 사물의 뒤통수에 대고 오래 말을 걸곤 했습니다. 돌아오는 게 늘 퇴짜일지 몰랐지만, 힐끔 고개 돌린 옆모습이라도 기억했다가 그걸 받아 적는 밤은 늘 깊었습니다.

영혼의 반을 시인이 되는 길에 걸었습니다. 내 반쪽만을 통과한 사람들아, 아이들아 미안하고 고맙다. 퇴근 후 방문을 닫고 무언가 헛것만을 쓰고 있는 아들의 어깨를 보며, 아버지 어머니는 어떤 시간을 사셨을까. 오래 살아계시라. 아들의 이야기를 이제부터 들으소서.

금이 번진 벽에 새로 도배를 하던 날, 몇 번의 귀얄질로 벽지 속 국화꽃이 천장까지 피어오르던 오후가 있었습니다. 쥐가 달그락거릴 때마다 아버지가 천장을 치대던 그 밤도 생생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 삶의 실금 위로 떨어져 내려쌓인, 그 따뜻한 국화꽃잎의 기억으로.

평생을 사는 나. 시 쓰는 삶에 한 아름 꽃잎을 보태주신 종호 선배, 지웅 형, 안성덕 선생님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박성우 선생님, 정양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제 생활의 반인 가족과 친구와 진봉초 식구들에게 고마움 전합니다.

나를 시인처럼 살게 해준 하연, 사랑합니다.

문우들에 대한 고마움은 생활로써 대신 갚겠습니다. 졸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두 선생님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매번 제 시의 뼈대를 부러뜨리던 강연호 교수님, 저는 언제나 강골이 될까요. 은혜가 깊지만 갚을 수 없는 깊이이므로 갚지 않겠습니다. 더 빚을 지렵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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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 정신의 집중과 몰입 매우 뛰어나"

 

지금 시는 산업화 광속의 감각 때문에 멀미를 앓고 있다. 인쇄 언어의 앞날이 걱정이다. 그럼에도 시와 시인은 여전히 존재하고 증가하면서 진화하는 추세에 있다. 한 마디로 시대적 아이러니이다.

본심의 작품들 중 「금강」외3편(이인애),「거울을 긁다」외2편(박평숙),「즐거운 독」외4편(문화영),「장수 한우축제」외4편(이근영),「생골 아지매」 외 3편(임미성) 등은 모두 한 사람이 쓴 작품처럼 진술 형태가 비슷비슷하다. 평범한 어조에다 일상적 서정이 주조(主調)를 이루고 있다. 관객이 무용 공연장에서 춤은 사라지고 패션만 보인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마찬가지로 시는 사라지고 언어만 난무한다면 헛심이 팽길 것이다. 옥석을 가리는 작품에서 언어와 시정신은 섬광처럼 빛나야 한다.

끝까지 남은 작품으로 「나무의 관상(觀相)」(한병인)은 서정 묘사에 치중, 비교적 안정된 심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나무’에 대한 깊은 인식과 언어 구조의 층이 얇아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에는 버거워 보이는 것 같다.
「바다의 구두」(이지산)는 사람 중심의 편견에 의한 자연(바다)의 희생과 새만금 방조제와의 불협화를 풍자한 생태학적인 시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미래파적 추구 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3·5연의 청신한 진술에 비해 끝부분 8·9연은 긴장이 풀어져 어색한 상투성과 불투명하고 난삽한 언술로 되어 있다. 짱짱하고 단단하게 응축시켜 공력을 살려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작품이다.

당선작 「시소가 있는 풍경」(노동주)은 인간 사회의 중심축과 평형감각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에 천착, 치열하게 형상화된 작품이다. 언어의 함축적 의미나 비유의 정확성과 긴밀성, 그러한 심층 구조의 역동성에 의해 흡인력과 시안(詩眼) 전개의 안정감도 돋보인다. 덧붙이면 대상의 내면을 투시할 줄 아는 시정신의 집중과 몰입, 언어가 함의하고 있는 상쾌하고 투명한 미의식 등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라는 점에 심사위원 두 사람의 의견도 일치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와 더불어 초심을 잃지 말고 이제부터라는 각오로 더욱 정진하여 한국 시인들의 중심에 우뚝 서 주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박성우,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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