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수평선을 걷는 장화들 / 이병철

 

 

파랗고 맑은 냉기에도 코가 얼지 않는 우리는

언제나 싱싱한 뒤축으로 수평선을 걷는 장화들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수심(水深)이 깊어질수록 바다의 과거를 잘 기억하는

오래된 가죽장화, 유빙에다 이마를 닦아 물광을 내며

아열대의 꽃잎을 흉내 내는 크릴새우를 쫓아다닌다

우리는 발목도 없이 발가락도 없이 난류에서 한류로 행진한다

캄브리아 시절에 따뜻한 바다 위를 걸어가던 신들이

탁족(濯足)을 하려고 장화를 벗어 놓았는데

그게 그만 바다에 빠져 밍크고래들이 된 것을

나는 다 발설해버리고 말았으니,

우리는 구멍으로 물숨을 쉬는 끈 없는 장화들

옆구리에다 파도를 주먹밥으로 뭉쳐 매달고 다니면

장화를 바느질하려는 수선공들을 만나기도 한다

태양에 달군 뾰족한 쇠가 내리꽂혀도

유선형의 몸은 능글능글한 데가 있어 작살을 바다로 흘려버린다

물빛 발자국들을 한꺼번에 연안으로 몰고 가면서 우리는

가죽나팔을 길게 분다, 높고 고운 소리 너머로

깨진 유리 바다가 일어서도, 장화들은 끄떡없다는 듯이

 

 

 

 

오늘의 냄새

 

nefing.com

 

 

 

[심사평]

 

‘평택 생태시 문학상’은 평택시와 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가 자연생태계의 환경보존과 그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취지로 비롯되었다.

 

심사기준은 인간에 의한 자연생태파괴, 환경파괴, 생명 순환질서 파괴, 인간존엄성 상실 상황에서 재생태계 질서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네 번째의 ‘생태시 문학상’을 심사하며 다섯 명(이귀선, 진춘석, 배두순, 김영자, 유병만)의 심사위원들은 즐거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맙고 유쾌한 일이었다. 응모자도 많고 전체적인 수준이 높아 한 편 한 편 탐독하는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다.

 

이번 공모전에는 모두 347명이 응모하였으며 예선과 본선, 두 번의 심사를 거쳐 최종 다섯 명의 작품을 두고 치열한 점수제를 운용하여 이병철 시인의 《수평선을 걷는 장화들》을 대상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이병철 시인의 작품들을 폭 넓은 상상력과 사유의 깊이를 신선하게 표현하여 생태시의 수준을 높이고 있음을 시사했다. 응모한 세 편의 작품이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를 얻어냈다. 활달하고 톡톡 튀는 이병철 시인의 무궁한 상상력과 표현력이 생태시의 폭을 한층 더 넓혀주고, 다양한 이미지의 변형은 재미까지 더해주고 있다.

 

최종심사까지 올라와 경합을 벌인 작품으로는 ‘잇구멍의 숲’, ‘요정의 원’, ‘몽고반점을 새긴 바위’등이다. 모두 탄탄한 내공을 가진 작품들이어서 내려놓기가 아쉬웠다. ‘평택 생태시 문학상’에 응모한 모두의 열정에 감사드리며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낙선자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심사위원 배두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