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 / 손병걸
비린내 그윽한 다대포 바닷가
꼼장어 구이집 방문 앞에
각양각색의 신발들이 뒤엉켜 있다.
다른 구두에 밟힌 채 일그러진 놈
에라 모르겠다 벌러덩 드러누운 놈
물끄러미 정문만 바라보는 놈
날씬한 뾰족구두에 치근대는 놈
신발 코끝 시선들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어느새 젓가락 장단 끝이 나고
사람들 한 무더기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다대포 앞바다 썰물 빠지는 소리가
꼼장어 구이집 창 너머로 아득하다.
연방 뭐라고 중얼거리는 꼼장어 안주 삼아
슬며시 쓴 소주 몇 잔 들이켜고는
담배 한 개비 입에 문 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잠시 정박했던 배들이
저 푸른 바다로 떠난 것이었다.
그 순간, 꼼장어 구이집 안으로
환한 웃음 실은 만선(滿船)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2005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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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새 생명 하나 부여받아
베란다를 두들겨 대는 저 육중한 바람은 제 몸에 힘이 완전히 소진되어 버렸을 때 비로소,뒤를 한번 돌아본다는 그런 생각이 근래 들어 부쩍부쩍 떠오른다. 그것은 실명 전,아무 생각 없이 스치고 지나버렸던 그 아슴아슴한 사물들과 사소한 사건들이 요즈음,내 머릿속에서 다시금 환해지는 탓이리라!
사물들의 촉감,미세한 소리,그윽한 냄새,눈이 보일 때보다도 외려,요즘 더 예사롭지 않다. 시각 장애 이후,더욱 집중했던 시(詩) 창작은 사실,죽음의 유혹을 뿌리치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오늘 당선 소식은 새 생명 하나를 부여받은 셈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멀고도 험하겠지만 한참 부족한 제 시(詩)를 뽑아주신 부산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시(詩)와의 만남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보답의 길이라고 믿는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물심양면 힘 써 준 고마운 사람이 많다. 이 자리를 빌려 하해와 같은 감사를 드린다.
나는 한 점의 궁극을 딛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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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정진 가능성에 높은 점수
응모된 시들 중에서 1차로 20여편을 건져올리면서,우리 시의 현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예비 시인들의 관심이 서정시에 가 있다는 점,소재는 일상적 체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발랄하고 참신한 이미지는 내보이나 내면의 깊이가 없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응모 시의 전반에서 실험적인 요소를 찾는다는 것은 힘들었다. 이는 패기 있는 개성적인 시를 쉽게 만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 대신 잘 꾸며진 소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1차로 걸러진 20여편은 시 공부를 한 흔적이 뚜렷이 드러나는 시편들이었다. 그러나 소품이 갖는 한계를 시적 응집력을 통해 극복하고,새로운 세계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는 시적 정신을 토대로 자기만의 세계를 창출해 보려는 의욕보다는 시의 기교 습득에 너무 기울어져 있는 결과로 보였다.
이런 아쉬움 가운데서도 마지막까지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첩자''소라''항해'였다. 그런데 '첩자'는 너무 기계적인 구도와 시적 언어가,'소라'는 너무나 단정한 틀과 일상화된 이미지가,'항해'는 기성 시에 나타난 이미지의 원용이 각각 문제로 지적되었다. 힘들게 '항해'가 지닌 긍정적 세계 인식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믿어,이 작품을 가작으로 뽑았다.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이시영 최영철 남송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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