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선군정치 사상
1. 선군정치 사상
선군정치는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 체제의 본격적인 가동이 준비되던 1995년 초에 처음 논의되기 시작하였으며, 1998년에 북한의 핵심적 통치 기치로 정착하였다.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하며 북한사회의 발전적 추동력을 제공하는 군의 역할을 강조하는 선군정치는 군의 영향력을 정치 및 경제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북한사회의 전 영역에 투영시키고 있다. 선군정치 하에서 군은 당을 제치고 지도자와 사회주의 체제의 옹호를 위한 중심 기구로의 위상 제고를 꾀하게 되었다. 군 인사의 정치참여를 공식적으로 체계화시키는 등 군을 정치의 전면으로 대두시키는 선군정치는 북한식 군국주의 정치의 대두를 주도하고 있다.
선군정치가 제기된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김일성 사후 지속되는 경제난 속에서 김정일 정권이 생존을 위해 권력의 근간을 당보다는 군에 의존하게 된 대내적 환경이다.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은 당이 인민에게 기본적 삶의 조건을 제공하고 인민은 정권에 대한 지지 및 정통성을 부여해 왔던 사회주의적 후원주의 체제를 와해시켰다. 선군정치는 군이 가진 자원과 역량을 활용함으로써 인민경제의 회복을 꾀하는 한편, 당의 저하된 사회통제 기능을 군 조직을 통해 보완하고 또한 당의 역할까지 대체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회주의의 내적 정통성을 제공하는 당의 기능 약화에 직면하여, 군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하는 북한식 군국주의를 통해 체제적 위기를 극복하고 정권의 정통성을 만회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선군정치는 군의 확대된 역할을 통해 군을 인민의 삶 속에 직접적으로 연계시키면서 군에 대한 인민의 의존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기구가 아닌 군이 사회 내의 방대한 연결 고리를 토대로 다각적 사회통제를 시도하는 당의 기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군과 인민의 일원화를 추구한다는 기치에도 불구하고, 선군정치는 지도자와 인민 사이에 사회 외부적 조직인 거대한 군이 개입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선군정치가 당에 의한 군의 통제를 통해 인민 우위를 정립시키는 정통 사회주의의 통치 방식을 포기하고 정권 유지를 위해 북한식 군국주의로 이행한다는 비판을 회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선군정치의 또 다른 배경은 악화되는 외교적 고립으로부터 초래되는 대외적 안보위협에 대한 북한의 증대된 불안이다. 동구 사회주의권과 구소련의 붕괴 이후 북한의 외교적 고립은 가속화되어 왔고, 최근 수년 동안 부시 행정부와의 대결적 구도는 자위적 군사력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제고시켜 왔다. 오랜 기간 축적된 거대한 군 조직의 존재와 북한사회에 내재된 군국주의 성향 등은 선군정치의 발현을 후원하는 국내적 요인들이다. 이미 주도권을 상실하고 있는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보존하고 있는 군사부문에 대한 자부심과 집착 또한 북한이 선군정치를 지향하게 된 배경 요인이다.
경제적 위기 상황 속에서 정권의 정통성 결여에 직면하고 외교적 고립 속에서 자기존립에 대한 위협을 경험하는 김정일 정권에게 선군정치는 정권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선군정치는 산적한 대내외적 문제들 속에서 정권 유지에 대한 불안감을 지닌 김정일 정권이 체제 안정화를 도모하는 마지막 수단으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경제 난국과 외교 고립의 두 핵심 난제가 해소되어 체제 안정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북한은 선군정치를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선군정치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선군정치사상이 주체사상을 대체하여 김정일 시대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부상할 것인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선군정치 사상은 주체사상에 대응할 수 있는 이념체계라기보다는 김정일 정권의 통치 방식을 정당화하는 정치 슬로건 역할에 치중하고 있다. 선군정치사상이 독자성을 확보하는 통치이념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구성과 내용 등의 측면에서 현저한 진화를 필요로 하지만, 그 성공 가능성은 거의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2. 선군정치론
1995년 이후 김정일 정치의 특징으로 선전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선군정치이다. ‘선군정치’라는 용어는 1997년 12월 처음으로 등장하였으나, 군 중시의 정치방식은 김일성 사후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인민군대 강화에 최대의 힘을 넣고 인민군대의 위력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의 전반 사업을 힘 있게 밀고 나가는 특유의 정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군사선행, 군 중시’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은 “독창적인 위대한 선군정치로 인민군대를 주체혁명의 기둥으로 부강조국 건설의 주력군”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경제건설보다 중요한 것은 군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며 총대가 강하면 강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표현으로 선군정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국방공업은 나라의 부강 번영과 인민의 행복, 혁명의 승리적 전진을 담보하는 국가정치의 첫째가는 중대사”라고 함으로써 다른 어느 분야보다 국방력의 강화에 매진할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북한은 선군사상이 주체사상에 기초하였고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게 정립된 것으로 주체사상은 선군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적 지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체사상이 추구하는 국가의 자주성을 수호하는 것은 선군정치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하여 선군정치가 주체사상을 현실적으로 가장 잘 구현하는 정치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선군정치는 이른바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시기에 군의 정치·경제·사회적 선도역할을 통해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강조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선군정치는 군 중시의 정치로서 “군사를 국사중의 제일국사로 내세우고 군력강화에 나라의 총력을 기울이는 군사선행의 정치”로 규정된다.
또한 선군정치는 “인민군대를 핵심으로 하여 혁명대오를 튼튼히 꾸리고 혁명적 군인정신을 무기로 하여 사회주의 건설을 밀고 나가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북한은 이러한 군 중시 정치를 “김정일 동지의 기상이자 우리 당의 기질이고 김정일 동지식이자 우리 당의 혁명방식”이라고 하는가 하면 “군대는 곧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는 데까지 확대 해석하고 있다. 군 중시 사상을 반영한 국방위주의 정치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 선군정치론은 오늘날 김정일 체제 유지의 독창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통치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북한당국은 이와 같은 군 우선의 의지를 수시로 표현해 왔다. 1997년 신년 공동사설은“인민군대의 총창우에 사회주의의 운명과 부강조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1997년 2월 15일 김정일의 55회 생일을 축하하여 정권기관들이 보낸 축하문에는 “군대가 혁명주체의 핵심역량, 주력군을 이루며 군대는 곧 인민이고 국가”라고 강조했다. 1998년 3월 9일 노동신문은“군대를 기둥으로 하여 혁명을 완성해 나가야 하며 군대를 본보기로 온 사회와 혁명대군을 정예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군 고위간부들의 권력핵심의 인사에서도 두드러진다. 무엇보다도 김정일 자신이 1998년 9월에 이어 2003년 9월, 2009년 4월에도 국가 최고의 직책인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되었다. 2003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1차 회의에서 혁명1세대인 이을설, 백학림 등 군부
원로들이 일선에서 퇴진하였지만 2009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 회의 개최 이후에도 군부 실세인 조명록, 김영춘, 김일철, 이용무 등 핵심계층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1996년에는 4월 25일 인민군창건일과 7월 2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정전협정 체결일) 등 군관련 기념일을 공휴일이자 ‘국가명절’로 지정하였다.
선군정치의 표방으로 군부의 역할도 확대되었다. 2003년 3월 노동신문에서 “인민군대는 혁명의 주력군으로 혁명과 건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청류다리, 금릉동굴, 금강산 발전소, 문화유적지 건설 등 대부분의 중요 경제건설 사업과 각종 우상화 선전물을 군 인력으로 건설했다. 그 밖에도 군대는 무역회사와 공장, 기업소, 광산, 협동농장 등을 포함하는 방대한 ‘제2경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심지어 농사와 철도운행, 중요 치안업무 등에도 간여하고 있다.
1998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인민군대가 창조한 정신과 도덕, 문화와 생활기풍을 사업과 생활에 철저히 구현해 나가야 한다”며 사회가 군을 따라 배울 것을 독려하였다. 또한 ‘군민일치 모범군 쟁취운’, ‘우리초소 우리학교 운동’을 벌여 군과 사회의 일체화를 꾀하고, 2002년부터는 군민일치 ‧ 관병일치 ‧ 군정배합의 실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2004년 1월 이후 선군사상을 전체사회에 일색화하려는 ‘선군사상 일색화’를 주창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선군사상의 핵심인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정신을 사회 전체에 확산시킴으로써 전 인민들을 체제보위를 위한 전사로 만들고, 혁명적 군인정신을 전 사회에 보급함으로써 모든 사업을 군대식 사업방식으로 추진하여 경제회생의 추동력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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