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공 / 조우리
자기부인을 위하여
부드러운 공을 매만진다
십자수처럼 정성들여 밀어내는 공의 몸짓
삶은 함부로 지면에 튀길 수 없으므로
나는 공을 주고받는 일에 아직 서툴다
안방에서 공을 꺼내 욕실과 베란다를 통과시켜
방문을 닫고 물방울을 주고받는다
이야기를 채집하고 있는 새들이
제 목구멍에 걸린 공을 생각하며 울고 있었다
완전히 깨져버리리라 찬란하게
다이너마이트처럼 바닥을 격렬히 치는
공의 헐벗음이 나의 뱁처럼 감정이입한다
패배를 인정하며 흰 수건을 던질 때
공은 비참하게 놓인 자신의 모습을
하수구에 마구 쏟아 붓는다
휘발유를 두르고 마치 불의 화신처럼
공중을 위협하며 날뛰고만 한다
그러니까 공은 친밀한 칼과 같았다
안과 밖이 경사진 모래시계
벽걸이 시계처럼 시간의 십자가 위에서
나의 육신이 공을 처형시켰다
공의 부락들, 공의 대, 공의 가치
그 바닥들이 만들어낸 공의 기본기
공은 죽음을 끌어안고 생명을 헐떡인다
누가 이 부풀어 오른 간을 피력했었나
용기는 공을 차분하게 만들고
나는 입을 다문 채 자존심만 채운다
주고 받는 것
주문에 억양을 흘리는 것
심장을 꺼내 보라를 놀래키는 것
공은 살아있고 공의 기저에 바다가 깔려 있었다
모든 공은 땅을 데리고 하늘로 날아간다
바다표범 한 마리 갯바위에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
죽음을 끌어안고 생명을 헐떡이는 공의 의미
[심사평]
평택문인협회가 생태시문학상을 창설하고 자연생태계의 가치와 보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사업에 앞장선 일이 벌써 6회째다. 회를 거듭할수록 응모자들이 늘어나고 작품 수준 또한 골고루 상승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개성이 뚜렷한 작품들을 내려놓을 때의 아쉬움도 컸다. 이는 단 한 편만을 뽑아야 하는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서 발생하는 아쉬움이다. 생태시문학상 심사는 철저한 점수제를 적용하고 수합하여 최종 고위점수로 당선자를 뽑는다. 실력과 투명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평택문인협회회원들은 응모할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최종 3명의 작품으로 경합을 벌였다. ‘부드러운 공’외 2편, ‘요정의 원’외 2편, ‘비오는 날’ 외 4편이었다.
그중에서도 조우리의 ‘부드러운 공’의 높은 점수가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부드러운 공’은 상상력을 형상화하는 기본기에 충실한 작품이다. 부드러운 공의 탄생과 공의 기저에 깔려 있는 바다와 바다표범을 끌어내는 솜씨가 장시(長詩)를 단숨에 읽어내게 하는 마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린 바다표범이 몽둥이 사냥을 당하고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상황을 차마 발설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시의 배후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인류가 오래전에 발명한 기술 중의 하나가 ‘공’이다. 그 ‘공’이 죽음을 끌어안고 생명을 헐떡이는 현실을 우리는 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제6회 평택 생태시문학상에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낙선자에게는 재도전의 용기를 선사합니다.
- 심사위원: 배두순. 이정희. 이귀선. 진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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