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동네 / 박광희
뿌리 같은, 오래된 골목이 줄에 걸려 바동거린다
나지막한 지붕들이 이마를 맞댄 좁다른 풍경
TV 안테나선, 전깃줄, 빨랫줄들이 하늘을 묶은
제각각의 각도를 가진 도형들로 골목은 늘 무겁다
낡은 시간을 매단 전봇대, 습한 담벼락에 숨어있던
표적들이 나타날 때마다 한 뼘씩 몸집이 커지는
외등들, 거미는 가만히 자신의 넓적다리를 숨긴 채
낮고 좁은 골목길을 얼기설기 엮어 낚아챈다
돌돌 말아 고치로 엮어내는 솜씨는 놀랍다
어쩌면, 이 골목 사람들은
한 번도 하늘을 본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 줄의 포박을 알고도 모른 척하는 지도 모른다
부글부글, 그깟 몸부림 쯤
진작 진흙 바닥에 가라앉히면 그만인 것을
바람의 입질에 걸려든 젖은 골목들의 눈 속
허공이 공허할 수 없는 건 저 줄들이 만드는 유혹 탓
코르셋처럼 집들이 꽉 끼인 것은 줄의 팽팽한 긴장 탓
낡은 모서리처럼 표지가 뜯겨져 나가
내력조차 희미해진 이곳 사람들, 뻐꾸기시계처럼
때가 되면 문을 열고 뛰쳐나가 울음 울면 그뿐
참붕어 같은 골목은 언제 줄을 벗어날 수 있을까
나지막한 허공을 저인망 줄들이 집들을 묶고 있다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진다 젖은 도형들이
허우적거린다, 골목이 환하게 열린다
일제히 미끼를 무는 붕어들의 입질
흰 와이셔츠 폐타이어, 화분, 방수천막지를 물어뜯는다
장마전선의 북상에 바삐 방적돌기를 부풀리는 거미
걸려든 집집의 내력들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다
동맥경화증에 걸린 골목, 줄에 걸려 파닥거린다
내게 주어진 소중한 길 이제 놓지 않을 것
[당선소감]
일상은 내게 호흡이었다. 시 또한 그랬다. 오래 덮고 살다가 언젠가부터 덮개를 열고 나온 그것은 차츰 내 일상을 점령해버렸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일상의 곳곳에서 불쑥불쑥 제자리를 만들고 있었던가 보다.
아직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보면서 어서 크기를 소망했다. 내 속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시에게 길을 활짝 열어주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조금씩 성장 중이지만 이제 내게로 와 덥석 안긴 시를 끌어안아야겠다.
뒤늦은 출발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조금 착잡하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이 소중한 길, 이제 놓지 않을 셈이다. 절대 급할 일 없으나 결코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 본다. 늘 그래왔듯 새로 난 이 길을 오래 꼼꼼히 새기며 걸을 것이므로 스스로에게 그 책무를 지워본다. 아침부터 눈이 부슬부슬 내리더니… 이렇듯 좋은 소식을 안겨주려고 그랬나보다.
부족한 작품을 끝까지 인내하며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이 기쁨을 전하며, 주변 친지들과도 따끈한 차 한 잔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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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 가운데 5편을 선정했다. 정정례의 `내력' 박명삼의 `빈센트 반 고흐의 귀' 강기순의 `미용실' 오영애의 `춘신 春信' 박광희의 `거미줄 동네'였다.
이 중 최종 세 편을 압축해 논의했다. `미용실에서'는 감각이 뛰어났고 일상적 삶을 노래한 것은 좋았으나 사유의 깊이가 미흡했다.
`춘신 春信'은 발상은 좋으나 주제의식이 명징하지 않았고 시적인 역동성이 약하여 평면성에 그치고 말았다. 박광희가 응모한 여섯편 모두의 수준이 고르고 특히 그중 단연 돋보인 작품은 `거미줄 동네'였다.
이 작품은 현실인식이 뛰어나고 상상력과 시를 구성해 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특히 이 시의 후반에서 보여준 “소나기가 쏟아진 다음 골목이 환하게 열리는”이라는 이미지 묘사는 시의 전반을 지배하는 삶의 고달픔과 어두움과 공허를 반전시킨 점이 이 시를 더욱 빛냈다. 매우 우수한 작품이었다.
- 심사위원 : 이승훈 한양대 명예교수, 이영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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