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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길 / 문귀숙

 


허풍빌라에서 내린,
수백억 상속녀가 떨어뜨리고 간
셀 수 없는 동그라미의 말들
깔깔 거리다 휘청거리며 사라졌다
꽃뱀의 뱃속 같은 골목을 후진으로
나오는 오늘 일진은 구부러진 끗발이다
금요일을 발광하는 네온사인을 비켜선
흐린 그림자 하나, 번쩍 손을 들었다
뒷자리에 앉자마자 웅얼거리는 목소리
백미러로 읽어야 하는 목적지가
번져 읽을 수 없다
붉은 신호등 하나를 넘으며 자정의 경계를 넘었다
어떤 넋두리도 용납되는 할증의 시간
갈림길 마다 좌회전을 외치며 더 흐려진 그림자
젖은 넋두리에 수몰된 길을
재탐색하라고 내비*가 얼굴을 붉힌다
붉은 기운이 부족한 사납금만큼 미터를 올리고
대낮처럼 환한 불면의 광장을 지나고
늙은 벚꽃나무가 떨어뜨리는 흐린 시간을
지나 돌고 돌아도 이어지는 길
더 이상 택시로는 갈 수 없는 길
내비가 멈췄다
그림자의 손가락 끝에 만월이 걸렸다.
 
*내비게이션

 

 

 

 

둥근 길

 

nefing.com

 

 

 

[당선소감] "나의 시 쓰기는 사람과 풍경을 알아가는 과정" 


세상과의 교감은 열린 정신에서만 가능하다. 많은 삶들이 길을 찾아 떠돌다 돌아오곤 한다. 나의 시 쓰기는 사람과 그 사람의 풍경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시를 왜 쓰는지 진지하게 자신에게 물은 적이 없다.

 

누군가를 왜 좋아하냐고 물을 때 난감하듯 시를 쓰는 것도 그렇다. 무엇인가 내게 다가오고 그것을 언어의 형식을 빌려 드러내면 서툴지만 시가 된다. 그렇게 십년을 쓰고 지웠다.

 

스무 살의 나는 빨리 늙고 싶었다. 어른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괜찮다는 일에 상처받기 일쑤였다. 어른이 되면 세상이 초연하게, 바라보듯 살아지는 줄 알았다. 현실은 여전히 나를 허둥대게 한다.

 

하지만 이 서툰 삶이 덮어주고 안아주는 주위 사람들 덕분에 나쁘지 않다.

 

땅에 발 딛고 선 사람들의 구체적인 사회현실을 시의 세계로 옮겨보는 작업, 내가 그들은 안는 방법이다.

 

시 쓰기에 주춤대는 내 손을 잡아주는 전화를 받았다. 크리스마스에 근무라 김치찌개를 넉넉하게 끓이고 있었다. 들 뜬 목소리의 통화가 끝나자 딸아이가 다가와 가만히 안아주었다. 늘 지켜 봐주는 가족들에게 '나 좀 멋지지 않아?' 라고 자랑하며 이 좋은 기운을 나누어 주고 싶다.

 

일곡시회를 이끌어주시는 고재종 선생님, 광주대학 신덕룡 이은봉 선생님께 이제라도 배움에 보답을 하게 되어 기쁘다.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광남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좋은 글을 쓸 것을 스스로에게 약속해 본다.
 

 

 


[심사평] "당선작, 詩를 밀고가는 힘 좋았다" 


좋은 시는 어떤 것인가. 동서고금을 통해서 변치 않는 것은 좋은 시는 음악성(가락ㆍ리듬)과 회화성(그림ㆍ이미지)을 잘 갖추되 삶을 이끌어 올리는 힘이 엿보여야 한다는 데 있다. 여기에다 모든 사람들이 다 보고는 있지만 보지 못하는 그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데 시의 운명과 책무가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시인이 되려고 하는 자는 현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물론 과거와 미래까지도 동시에 담아내는 숨쉬는 그것들과 끊임없이 접신(엑스터시)하고 밀교해야 한다는 데에 시와 시인의 운명이 요구하는 그것일 터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광남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시작품을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다. 온라인시대인지라 응모자들이 가히 전국적이었다. 서울, 경기, 강원, 경상, 충청, 전북을 비롯하여 광주전남에서 의욕적인 시작품이 들어왔다. 그런데 '시는 짧고 소설은 길다'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모르고 지나치게 지루한, 마치 콩트나 단편소설의 한 대목을 잘라다 놓은 것 같은 작품들이 많아 작금의 한국시의 병폐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최종에 오른 세 사람의 작품은 믿을 수 있는 대목이 많았다. 먼저 '탑의 형식' '장수하늘소의 꿈' 등의 응모자는 현대시의 특징 중의 하나인 판타지의 기법이 너무 지나치게 드러나서 시적 리얼리티 즉 감동이 따라갈 수 없었다.

 

다음으로 '동행' '저녁의 합석' '천년웃음' 등의 응모자는 시 속에 서정성과 서사성을 잘 교직하는 저력은 엿보였으나 삶을 눈뜨게 만드는 '아픔의 힘(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성 혹은 카타르시스의 힘이라고 말했다)'이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둥근 길' '플라잉 가이' '장구' 등 3편을 응모한 문귀숙 씨는 전체적으로 작품의 구성이 탄탄하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시적 능력을 잘 보여주었다. 시를 밀어 올리는, 끌고 가는 힘(에너지) 그리고 시적 의지가 좋았다. 음악성과 회화성 그리고 민요정신(Ballad Esprit)을 두루 갖춘 점이 크게 사줄만했다.

 

다만 모더니티와 언어의 나이브한 참신성, 리리시즘의 부족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우리시대를 깊이있게 통과하는 담론을 현미경과 망원경으로 동시에 보여주면서 정진하기를 기대해본다. 새해를 맞아 당선시 '둥근 길'로 출발하는 문귀숙 씨가 나름대로 꽉 찬 '만월'을 보여주고 있어 독자들을 기쁘게 할 것으로 믿는다. 축하한다.

 

심사위원 김준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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