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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가을 / 노향림

 

 

가난한 새들은 더 추운 겨울로 가기 위해

배고픔을 먼저 새끼들에게 가르친다.

제 품 속에 품고 날마다

물어다 주던 먹이를 끊고

대신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킨다.

누렇게 풀들이 마른 고수부지엔 연습에 지친

새떼 군단들이 오종종 모여들고 머뭇대며

어미를 찾는 새끼들의 행렬 속엔

어미새들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음울한 울음소리가

높은 빌딩 유리창에 몸 부딪쳐서 아찔하게

떨어지는 그 소리만이 가득하다.

행여 무리를 빠져나온 모질이들 방향 없이

빈 터에서라도 낙오되어 길 잃을까

아파트 단지에는 드문드문

따듯한 입김어린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그 지시등 따라 창 밑까지 선회하다가

있는 힘 다해 지상에서 가장 멀리 치솟아 뜬

허공에 무수히 박힌 까만 충치자국 같은 비행체들

캄캄한 하늘을 날며 멀리로 이사 가는

철새들이 보이는 가을날의 연속이다.

 

 

 

푸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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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젊은 날엔 제 시선이 머무는 모든 게 다 시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적 소재로서의 사물, 특히 자연과의 교감은 그 무엇보다 감동과 소통이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때쯤 제 육신의 나이가 어느 덧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철들자 망령인가요? 끝없이 새로움을 요구하는 것이 시라는 걸 알기에 저는 끝없이 철들고 싶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시는 시일 뿐이라는 걸 잘 압니다. 저는 아직도 살아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지금껏 나름 해 온 대로 시에게 감정의 분출을 억제하며 언어에 대한 자의식을 끝까지 지키도록 하고 싶습니다.

 

이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님들 그리고 박두진문학상 관계자 여러분들께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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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제11회 박두진문학상 심사는, 예심에서 추천된 본상 후보 다섯 분과 젊은시인상 후보 다섯 분을 대상으로, 그분들이 최근 발표한 시편들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면서 진행되었다. 이분들은 모두 우리 시단에서 남다른 위상을 점하고 있는 시인들이기 때문에, 그 성취의 높고 낮음에 차이를 두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매우 깊이 있고 탄탄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시인들을 만나보게 된 것이다. 오랜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노향림 시인의 최근 시적 성취가 괄목할 만한 것이며, 박두진문학상의 여러 기율들을 충족하고 있다고 합의를 이루었다. 곧 그의 시편들이 자연에 대한 강한 친화력과 함께 보편적인 인간 본질에 관한 사유를 두루 결합하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젊은 시인 가운데는 김이강 시인의 개성적 시편들이 수상의 영예를 얻었다.

 

노향림 시인은 그동안 삶의 고통과 비애를 정갈하고도 선명한 이미지로 잡아 그것을 슬픔의 정조로 노래해왔다. 풍경의 세부를 가득 품고 근원적인 것들의 소리를 예민하게 들으면서, 세상이 밑바닥을 투시해온 우리 시단의 대표적인 여성시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최근 시집인 『바다가 처음 번역된 문장』(2012)에서, 시를 풍경의 경지에 근접하게 끌어올리는 성취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번 수상작들은 세계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일견 사실적이고 일견 환상적인 풍경을 창조해내고 있다. ‘너머(beyond)’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궁극적 시선과, 세상에 대해 차분하게 관조하는 시인의 개성적 시선이 결합된 가작들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애잔하고 절실하게 다가오는 미학적 저항을 통해, ‘시인’의 형상 자체를 탐구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노향림 시편은 지상의 세계에 개입하여 그것을 넘어서려는 지향을 줄곧 보여주었고, 거기에 실존적 고백을 얹기도 한 심미적 풍경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수상이 오랜 시력에 상응하는 큰 격려가 되기를 희망한다.

 

김이강 시인은 경험적 일상을 기록하기보다 일상의 어떤 단면들을 통해 현실 너머에 있는 시적 환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의 시적 특성은 자명한 동일성의 순간을 한없이 지체하면서 비동일성을 통해 파상적 원심을 그려나가는 점에 있을 것이다. 서정의 구심적 속성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새로운 감각과 사유의 지형을 단속적으로 구축해가는 기율과 언어가 거기에는 있다. 하지만 그의 시편은 우리가 과잉 대면했던 난삽의 그로테스크, 비문법의 카니발, 산문성의 자의식 등으로 표상되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특별히 이번 수상작들은 기억과 현실의 접면(interface)을 형성하면서, 특정 담론으로의 귀속이나 환원을 한사코 거부하면서, 서정적 불투명성을 심미적으로 구축해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시선과 방법을 통해 한 시대를 건너가고 있는 이행기의 한 젊은 시인을 만나보게 된다. 그리고 그의 시에 의해 우리 시의 ‘또 다른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게 되는 것이다. 시적 이력에서의 첫 수상을 축하드린다.

 

거듭 두 분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면서, 두 분 수상자의 고유한 시적 연금술이 지속적인 진경으로 나타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유종호(위원장, 문학평론가, 전 연세대학교 석좌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김용직(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허영자(시인,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

조남철(문학평론가, 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 혜산 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장)

박라연(시인, 제5회 박두진문학상 수상자)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교수)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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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산 박두진문학제운영위원회와 한국문인협회 경기 안성지부는 박두진 시인 탄생 100주년인 올해 '제11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노향림 시인(사진)을 선정했다고 16일 밝혔다. 또 '제2회 혜산 박두진 젊은 시인상'에는 김이강 시인이 선정됐다.


혜산 박두진 문학상은 혜산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시인의 고향인 안성시의 후원으로 2006년 제정됐다.

 

수상자 선정은 발간된 시집 중에서 우수한 시적 성취와 활동을 보여준 문단의 시인 중 혜산의 시 정신과 시 세계를 반영해 예심과 본심을 거쳐 진행됐다.

노향림 시인은 수상작으로 뽑힌 '가난한 가을' 등 다양한 작품들에서 삶의 고통과 비애를 정갈하고도 선명한 이미지로 잡아 슬픔의 정조로 노래해 왔다. 풍경의 세부를 가득 품고 근원적인 것들의 소리를 예민하게 들으면서, 세상의 밑바닥을 투시해온 우리 시단의 대표적인 여성시인이기도 하다. 최근 시집인 '바다가 처음 번역된 문장'에서 시를 풍경의 경지에 근접하게 끌어올리는 성취를 보여주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은 "세계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일견 사실적이고 일견 환상적인 풍경을 창조해내고 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와 함께 '제2회 혜산 박두진 젊은 시인상'에는 경험적 일상을 기록하기보다 일상의 어떤 단면들을 통해 현실 너머에 있는 시적 환상을 형상화한 김이강 시인이 선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22일 안성문예회관에서 열린다. 이날 박두진 시인 생전 활동 사진전, 안성문인협회 회원 시화전, 안성을 빛낸 시인들의 걸개 시화전 등 시인의 업적을 기리는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함께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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