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귀가 피는 곳 / 최인숙
그래 그래 여기야 여기
신기해하고 신통해하는 것은 뜸이다
안으로 스미는 연기의 수백 개 얼굴이
아픈 곳을 알아서 나긋나긋 더듬는다
그러고 보면 뜸은 어머니의 손을 숨기고 있다
뜸과 이웃인 침을 권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침의 얼굴과 대적한 적 많아
보는 순간 심장부터 놀라 돌아서곤 한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뜸이 다 사그라지기를 기다리다 보면
어머니도 부엌에서 또 뜸을 뜨고 계셨다
아침저녁 굴뚝으로 하늘 한켠을
할머니 무덤 여기저기에
노루귀가 피었다
겨울과 봄 사이
가려워 진물 흐르는 대지에
아니 너와 나의 그곳에
누가 아련히 뜸을 뜨고 계시다
어느 세상의 기혈이 뚫렸나 하루도 환하다
[당선소감] “많이 보고 듣고…세상을 색다르게 읽어내는 시인 될 터”
안개가 짙은 날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맑은 날인데도 내 안에 무시로 찾아드는 안개의 시간. 이럴 때면 사물들은 제각기 다른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어오곤 했습니다. 그 말들에 귀 기울이고 견디다가 한없이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어떤 날은 정말 간절하게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그 간절함이 이렇게 쉽게 기쁨으로 돌아올 줄 몰랐습니다. 당선 통보 전화를 받고 이게 사실인가 아닌 가 잠시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직까지 자신감 갖지 못한 제 시를 이렇게 훌쩍 건져 올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더불어 경상일보에도 한없이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훌륭한 시인이 될 것임을 약속합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여러 분야를 천천히 보고, 듣고, 느끼며 세상을 색다르게 읽어내겠습니다.
문학의 길을 새롭게 열어주신 김영남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저할 때마다 큰 힘이 되어준 문우들, 선배님들 고맙습니다. 힘든 작업임에도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아 준 내 가족과 부모님, 그리고 저를 아는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심사평] 이질적 형상화로 작가의 시적 내공 고스란히 묻어나
응모작품들을 공들여 읽었다. 요즘의 한국시가 지나치게 난삽하면서 그 길이도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곤 하는데, 이번 응모작들도 그런 경향들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시인이 지니는 표현 의도는 최적의 언어로 구조화되고 형태화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표현 의도를 겉으로 드러내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생략과 함축으로 끌어안을 때 견고하게 정제된 시를 만날 것이다.
<노루귀가 피는 곳>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이 시의 작자는 작은 풀꽃인 ‘노루귀’에서 환기되는 정서를 한방요법의 ‘뜸’으로 풀어내고 있다. ‘뜸’은 약쑥을 비벼서 인체의 혈 위에 놓고 불을 붙이는 치료행위이다.
연기를 내면서 쑥이 타들어가고 그 기운이 혈을 자극해서 막힌 기를 소통시킨다. ‘노루귀’의 식물이미지를 한방치료 요법인 ‘뜸’으로 병치시킨 시인의 착상도 새롭지만 아침저녁 굴뚝으로 연기를 피워 올리는 어머니의 노고와 ‘뜸’이 피워 올리는 연기를 합일시킨 상상의 능력도 두드러진다.
상호 이질적인 이미저리(‘노루귀’ ‘뜸’)를 연관시킨 시인의 상상력은 이 시의 작자가 상당한 시적 내공을 쌓은 분임을 미루어 알 수 있게 해준다. 같은 시인의 투고 작품 <무지개>도 선연한 이미지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이분의 역량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최종까지 남았던 작품들은 <우포의 달 외 2편>, <할머니의 기도 외 3편>, <다리가 잘린 소녀에게 외 2편> 등이었다.
이분들도 나름대로 시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분들이다. 정제된 시에 이르는 노력들을 계속한다면 좋은 시에 이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훌륭한 시인으로 우뚝 서 주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이건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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