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도에서의 하룻밤 / 박현덕
앵강만이 훤히 보인
가게에서 낮술한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서포처럼 우는 바다
뭍으로
갈 수 없는 몸,
파도를 내리친다
하늘 쩍쩍 갈라져
쏟아지는 장대비
몇 점 외등 켜지고
마을은 조용하다
한밤중
삿갓 쓴 사내가
나를 향해 걸어온다
[심사평]
시, 시조부문 심사를 맡은 세 명 심사위원이 원고를 돌려 읽고 수상작이 될만한 작품을 각각 한두 명씩 낙점하기로 했다. 몇 차례의 윤독과 토론을 거쳐 네 명의 작품이 가려졌고 그 중 큰 이견 없이 <노도에서의 하룻밤> 외 59편과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김만중의 편지 1> 외 8편이 최종까지 남았다. 두 응모작의 공통점은 김만중과 그의 시대를 모티브로 시집 분량에 가까운 신작시를 보내왔다는 점이었다. 그런 양적 결실 못지않게 시의 맛과 멋을 유지한 균질의 밀도도 갖추고 있어 반가웠다. 시의 독자는 줄었으나 시인과 시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그런 풍요가 나태와 방만의 언어를 양산하고 있기도 하다. 이대로 간다면 시는 결국 결여가 아닌 풍요로 망하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도 가능하다. 그런 생각으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조 <노도에서의 하룻밤> 외 59편을 앞자리에 놓게 되었다. 시조가 가진 절제미가 오늘의 시단에 던지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그의 시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다 말하지 않고도 더 말하는 시조의 미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잣대로 본다면 서간체와 독백체가 교차하는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김만중의 편지> 연작은 다소 장황한 편이었다. 자유롭기는 하나 상대적으로 동어반복과 감정의 과잉 노출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우열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시를 위한 지금 당장의 처방과 관련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심사가 종료되고 심사평을 쓰며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두 분 수상자 모두 지금 우리 시단에서 활동 중인 중견시인들이었다. 이 두 시인들은 이번 응모작을 쓰기 위해 잠시 초심으로 돌아갔을 테지만 사실 좋은 시인은 늘 그렇게 처음 자리에 자신을 데려다놓을 줄 안다. 늘 그렇게, 처음 자리에서 시작하는 시를 우리는 기다린다.
- 심사위원 이우걸, 정호승, 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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