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향계가 있는 오후 / 남화정
아이들을 하교시킨 학교 혼자 풍향계를 돌린다 빨갛고 하얀 네 개의 숟가락이 바람을 퍼먹으며 잘도 돈다 먹성으로 치면야 담장 너머 까치들만 하리 감홍시 진즉 다 털어먹고서 양푼만한 알전구에 들러붙어 퍼벅 입이 터지는 뜨거운 밥숟가락질의 새들, 너흰 알는지 多産의 복 하나는 타고났던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굴뚝 아득히 탯줄 묻어 지킨 고향 재 되어 풀풀 흩날릴 위기를
이곳은 채소 하나, 나무 한 그루 맘대로 캘 수 없는 택지개발시범지구, 초겨울 볕을 등마다 지고 아, 모포처럼 비닐을 펴 유골을 줍던 사내들 어떻게 되었을까 풍향계 너머 기와집들 감나무들, 아직은 파헤쳐지지 않는 들녘과 학교만이 유적이 되어 떠도는, 해체된 숲속에서 붉게 살갗이 패인 산들이 피를 쏟고 있다 잘가라 새여 나무여 낼 아침도 재재거리며 교문 들어설 삼천 아우들 위해 풍향계, 바람 한 하늘 남겨두는 것 잊지 않는다
[당선소감] 눈감는 순간까지 시 경작
당선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쁨을 올려드렸다. 한낱 옹동그라지고 가시투성이 사막의 싯딤나무가 법궤가 되었듯, 그분은 파산된 내 영혼만 보수시키시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내가 되어 사는 시들을 빗고 깎고 계셨기에.
시(詩)라는 병을 앓은지 십수 년. 정말 육신에도 고치지 못할 병 하나 와서 생을 넘어뜨렸지만 절망할 수 없었다. 시가 있었기에 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병마저 고마웠던 지난가을이었다. 할머니가, 고모가, 몸 같던 벗이 한 계절 건너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갔지만 울 수 없었다. 뱃속 아득히서 끄덕끄덕 몸 뒤채는 유리뱀, 산이고 강이고 유리뱀 따라 다만 걷고 있으면 되었다.
사람을 넘어 돌밭, 나무, 풀, 벌레, 까마귀, 해, 구름...
시가 된 내 모든 벗들아, 고맙단다. 내 슬픔의 근원인 아버지, 당신이 흙을 놓지 않듯 눈 감는 순간까지 저도 제 시들을 경작하고 있겠습니다. 이른 아침 전봇대만큼 키가 큰 짐보퉁이를 이고 시장으로 향하는 어머니, 당신이 바로 시(詩)입니다. 시와 삶의 경계에서 허덕일 때, 뜨거운 채찍 아끼지 않으셨던 여러 선생님, 문우들 감사합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참아주고 견뎌준 남편과 딸, 피붙이들과 이 기쁨 함께 하며, 졸시 선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경남신문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맛깔스런 시어... 단단한 미덕 갖춰
「공단세탁소」·「삼월, 튀밥 같은」·「제비꽃」·「늦은 점심」·「풍경」·「풍향계가 있는 오후」, 모두 여섯 분의 여섯 편이 뽑는 이들 손에 마지막으로 남았다.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어도 될만했다. 시를 끌어올리는 눈길이나 다듬어낸 솜씨에서 남다른 노력의 흔적이 역력하다.
「공단세탁소」는 도시 근교의 세탁소 풍경을 빌려 고단한 삶을 위한 긴 헌사를 마련했다. 시를 끌어가는 집중력은 볼 만했으나, 발상법에서는 새로움이 덜했다. 게다가 시인의 의도가 너무 시의 앞쪽으로 드러나 버렸다.
「덕지덕지 파리똥처럼/배설된 꿈」이라는 첫머리부터 마무리까지 덕지덕지 올라붙어 있는 군더더기를 가지치기 할 수 있는 한 단계 높은 통어력이 아쉬웠다.
「삼월, 튀밥 같은」은 「삼월의 속살이/소란스럽게 터지고」 있는 아파트 담장 풍경에 대한 시인의 따뜻한 눈길이 잘 살아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 발상의 즐거움을 오롯이 읽는이의 즐거움으로 되살려주는 집중된 힘이 모자랐다.
「제비꽃」도 아쉬움이 남기는 마찬가지다. 버려진 시골집 섬돌을 안고 핀 제비꽃에 대한 상상적 긴장이 시 뒤쪽으로 가면서 풀려버렸다. 「마음은 기다림 짙은 잉크빛」과 같이 서툰 시줄들 탓이다.
이들에 견주어 「늦은 점심」·「풍경」·「풍향계가 있는 오후」는 소품에 가까운 간결함을 미덕으로 지녔다. 군더더기가 적은 만큼 시에 손쉽게 다가서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 없이 그 나름의 진지한 집중력이 돋보였다. 「풍경」이 맨 먼저 당선권에서 밀려났다. 시줄을 더 가다듬어 거듭되고 있는 꾸밈말을 잘 펴 내렸더라면 아름다운 한 편의 수작을 얻을 뻔했다.
「늦은 점심」과 「풍향계가 있는 오후」를 두고 마지막으로 고심했다. 「풍향계가 있는 오후」에 견주어 「늦은 점심」이 더 젊고 참신한 쪽이다. 「늦은 점심을 둘러앉아 먹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눈길이 집요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라는 두 낱말의 변주로 한 편의 시를 끌고 나간 솜씨는 쉬 얻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거적자리에 둘러앉은 늦은 점심은 둘러앉은 사람들을 마구 퍼먹는다」라는 마지막 시줄의 언어 전도도 맛깔스럽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말의 재미를 넘어서는 통찰력이 모자랐다. 감동이 덜할 수밖에 없다.
「풍향계가 있는 오후」는 「늦은 점심」에 견주어 낡은 옷을 입고 있는 듯 싶다. 그러나 그 속은 보다 구체적이고 단단한 미덕을 갖추었다. 「택지개발시범지구」로 대표되는 삶에 대한 눈길이 섬세하다. 오랜 시력을 무리 없이 녹여냈다. 장차 좋은 시인이 될 재목임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는 작품인 셈이다. 따라서 「풍향계가 있는 오후」를 당선작으로 민다. 부디 겉멋에 빠지지 말고 삶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을 힘껏 키워 나가기 바란다.
- 심사위원 : 박태일(시인·경남대 교수), 유재천(문학평론가·경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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