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법 / 홍윤숙
일찍이 낙법을 배워둘 것을
젊은 날 섣부른 혈기 하나로
오르는 일에만 골몰하느라
내려가는 길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어느덧 전방엔 '더는 갈 수 없음'의
붉은 표시판
석양을 등지고 돌아선 너의
한쪽 어깨 이미 어둠에 묻힌
발밑에 돌무더기 시시로 무너져내리는
아슬한 벼랑 끝에 외발로 섰다
세상에 진 빚과 죄로
몸보다 무거운 영혼의 무게
추스려 이마에 얹고
남은 한 발 허공에 건다
아득하여라
해 아래 떨어지는 모과의 향기
바람에 섞이듯 그렇게
사라지는 소멸의 착지 그
아름다운 낙하를
[심사평] 40여 년 쓴 작품서 묵은 포도주 향기나 수상작 「낙법…」뛰어난 상상력 발휘
시인 홍윤숙이 우리 시단에 등장한 것은 1950년대 중반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이 시인의 시력은 줄잡아도 40년이 넘는다.
한 시인이 오랜 세월 시작 활동을 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긍정적인 각도에서 볼 때 그의 시는 오래 묵은 포도주처럼 좋은 방향을 가질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끼어들 수 있는 부작용도 생각될 수 있다. 자칫 그의 시가 안이해질지도 모른다는 부정적 그림자가 그것이다.
시인 홍윤숙은 후자와 같은 우리 생각을 문자 그대로 기우에 그치게 하는 경우다. 오랜 시력에도 불구하고 사물을 포착하는 그의 눈길은 여전히 매섭고 맵짜다. 또한 그것을 도마 위에 올려 요리하는 손길 역시 날래고 훌륭하다.
뿐만아니라 이번에 수상작으로 추거된 「낙법놀이」에는 한국 시단이 가져야 할 좋은 시의 또 하나 자격요건이 내포되어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현대에 와서 시는 서정시를 가리킨다. 그런데 서정시는 그 속성이 사적인 세계를 노래하는 것과 함께 형태가 축약적인데 있다. 이런 속성 때문에 서정시는 자칫 편향된 노래가 되기 쉽고 소수 호사가들의 애장품으로 떨어질 공산도 크다.
그런데 시인 홍윤숙은 그런 부정적 가능성을 정서의 보편성 확보로 극복했다. 또한 신선한 시상 제시로 그의 시가 많은 사람에게 애송될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낙법놀이·33」에서 시인 홍윤숙은 모과 향기의 「낙하」를 우리 자신의 한계 의식과 일체화시키기에 성공했다. 이 기법,상상력에 박수를 보내면서 이번 수상을 축하한다.
- 심사위원 김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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